교육철학의 빈곤
“옥스퍼드, 스탠퍼드에 합격했지만 하버드에 합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마는 울며 방을 나갔다.“(권 아무개 전 테라 대표가 판사에게 선처를 호소하며 쓴 편지 중)라는 대목에서 D일보의 뉴욕 특파원 칼럼 읽기를 멈추고 깊은 사색에 빠지고 말았다.
최근 국가적 재앙을 불러일으킨 쿠팡의 대량정보유출사태의 진행경과를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개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그 김 아무개 대표의 스펙과 그의 행태를 지켜보면서, 누가 그의 삶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겠는가.
만약, 그의 삶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평가하고, 규정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뉴스에 보도된 것처럼 쿠팡 시급노동자가 사망하자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메모가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해!!”라며 사건은폐를 지시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가히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관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았지만 이제 정말 다시 한번 우리의 교육관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
다행히 지금 대치동학원가의 열기도 조금씩 식어간다고 하니 자녀교육보다 부모들의 교육관에 대해 다시 점검할 때이다. 물론 AI가 급속성장함에 따라 앞으로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투자한 인풋에 비해 그 아웃풋은 매우 초라 해질 것을 예상했기 때문 일 것이다. 무작정 공부만 시키는 것보다는 자식들의 소질과 재능에 따른 자기 학습이 더 중요하다는 각성에서 대치동 열기가 식어가는 것이라면 좋은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권 아무개가 판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나는 비교적 독특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며 "여덟 살 때 아버지가 해리포터를 읽어 주면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해서 스스로 영어를 배웠고, 어머니는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될 운명이라고 믿어 TV부터 컴퓨터까지 방해가 될 만한 모든 걸 제거했다"라고 적었다.
그는 또 "또래 아이들이 가요를 들을 때 나는 고전 오디오 북과 알렉산더, 나폴레옹의 전기를 읽었다"며 "친구들이 보드게임을 할 때 난 영재를 위한 퍼즐을 받았는데 어머니가 대체 그런 걸 어디서 구했는지는 신만이 알 것"이라고 자조했다. “라고 말했다.
소위, 그 두 사람의 인생이 성공이라는 섣부른 세상의 저렴한 평가와 함께 모든 언론이 앞다투어 그들의 기사로 도배될 때, 그들이 쌓아 올린 성공의 피라미드 밑에 깔려서 노동자들이 과로사하거나, 테라루나사태에 전재산을 날리고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이 있었다
.
그 권 아무개는 해외를 떠돌며 도피행각을 벌였고, 또 김 아무개는 그 사고 후 한국엔 나타나지도 않았을뿐더러, 사과 한마디조차 없었다. 결국 한국의 4대 종교가 엄동설한에 길거리에 나섰고, 뒤늦은 서면 사과를 했다. 져본 적이 없는 사람은 남의 마음을 잘 모르니까.
세상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좋은 게 좋은 게 아닐 때가 있다. 그땐 반드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계속 호의를 베풀면 호구되기 십상일뿐더러, 꼭 선을 넘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그 선을 넘으면 무엇이든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고픈 건 참아도 무시당하는 건 못 참는 법이다. 그냥 잘못을 깨끗이 사과하고 잘 수습했으면 될 일을 너무 키웠다. 혹시 미국법 잠시 피해 가고, 한국에서 좀 얻어맞더라도 할인쿠폰 풀고 조금 노력하면 금방 회복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길 바란다.
새벽배송, 로켓배송도 마찬가지다. 누구 말처럼, 카페 테이블 위에 휴대폰만 올려놓거나, 가게 바깥에 상품을 진열하거나, 집 밖에 택배물건을 놔둬도 괜찮은 우리 한국의 문화는 한국인들 스스로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 올린 것이지, 쿠팡이 만든 게 아니다.
문득, 영화 ‘베테랑’의 대사 중 ”니들 돈으로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 것 같냐? 그냥 죄송합니다,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황정민)라는 말이 기억났다. 쿠팡이 망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대량정보유출 사태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길 바랄 뿐이다.
무엇이 성공인가. 언젠가 읽었던 인권변호사 조영래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아빠가 어렸을 때는 이 건물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아빠는 네가 이 건물처럼 높아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이 되거나 제일 유명한 사람,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작으면서도 아름답고,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건물이 얼마든지 있듯이… 인생도 그런 것이다. 건강하게, 성실하게, 즐겁게, 하루하루 기쁨을 느끼고 또 남에게도 기쁨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실은 그것이야말로 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처럼 높은 소망인지도 모르겠지만…."
돌이켜 보면 나 역시도 그랬다. 내 부모님이 나를 키웠듯, 나 또한 아이들이 큰 걱정거리 없이 화목한 가정에서 평화롭게 자라기를 원했고 그리 행동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싫어하는 일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바른 어른, 유쾌한 어른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길 기도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 마법 같은 편리함 뒤에 가려져있는 비인격적 노동에 노출된 우리 주변의 배송 관련 노동자들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