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_넷플릭스
어른 (명):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나이는 40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어른이 아닌 것만 같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리고 진정한 어른의 의미를 살펴보면 책임감이 여물지 않았던 것이다. 어른은 책임지는 사람. 도망가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어른이라 하는구나.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도망가지 않으려 했던 나는 나를 조금 토닥여도 괜찮겠다.
타이틀에 '어른'이 들어간 다큐멘터리는 큰 관심이 없더랬다. 비슷한 시기, 같은 플랫폼에 나왔던 도파민 폭발하는, 제목부터 거창했던 「나는 신이다」에 비해 슴슴해 보였던 탓일 게다.
최근 전(前) 대통령의 탄핵 선고를 내린 문형배 전(前) 헌법재판관의 참스승으로 알려지며, 백상예술대상 수상 이후 다시금 「어른 김장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40살이 넘어도 요즘 사람들이 뭘 많이 본다고 하면 그걸 안 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름 취향인간이라 믿고 살았는데, 취향이라고 할 만한 것이 남들도 더러 좋아하는 것이라면 취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몰취향도 취향이겠거니 생각하며 진득하니 「어른 김장하」 감상에 소중한 출퇴근 시간을 할애했다.
능력이 모자라, 유려한 한 편의 글로 엮어 낼 수 없겠다. 그저 단상들을 나열해 볼 테니 편하게 읽어주시기 바란다.
다큐멘터리에도 트렌드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내레이터가 있을 것인데, 내레이터로 최정상급의 영화배우나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주조연급 배우, 대세 예능인을 섭외해 다큐멘터리의 본질적인 노잼을 메운다. '어떤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누가누가 맡았다'는 사실은 주요한 마케팅/홍보 포인트로 소구되기도 한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내레이터가 없다. 대신 경남도민일보 출신의 김주완 기자의 취재기를 영상 카메라에 담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처음부터 중간중간 김주완 기자는 인터뷰를 통해 내레이터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나는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김주완 기자는 방송이 아닌 신문기자 출신으로, 썩 달변가는 못된다. 근데 그의 눌변이 김장하 선생의 성정과 잘 맞는 느낌이다.
김장하 선생은 언제나 전면에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선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참으로 현명한 처세라고도 생각하는 바. 진의는 드러나는 순간 호사가들에 의해 왜곡되기 십상이다. 김주완 기자는 김장하 선생을 만나서 많지도 않은 질문들을 이것저것 하는데, 김장하 선생은 본인 자랑이 아니다 싶은 이야기는 기꺼이 하지만, 조금이라도 본인 자랑처럼 보이는 이야기엔 침묵으로 일관한다. (희한한 웃음 포인트를 가진 나는 이 부분이 정말 웃겼다) 그러면 김주완 기자는 두 번 묻지 않는다.
가뜩이나 말수가 적은 주인공에다가 살갑지 않은 경상도 기자가 스토리를 주도해 나가니, 「어른 김장하」를 콘텐츠 관점에서 바라보면 심심하다 못해 이렇게 싱거울 수 없는 지경이다. 다만, 드러나지 않는 선행을 지향하는 김장하 선생에게 내향적이고 어눌한 지역지 출신의 기자가 파고드니 본질과 형식이 어딘지 모르게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김장하 선생과 「유퀴즈 온더블럭」. 전혀 안 어울리지 않나.
콘텐츠와 별개로 가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내가 판매사원이 된다면 전략적으로 눌변을 선택하겠다. 뭔가 매끄러운 말솜씨는 오히려 품질에 대한 불신만 키우지 않을까. 때로는 더듬고, 때로는 절어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물건의 장점을 설명하는 사람에게 왠지 모를 신뢰가 갈 것만 같다. 「어른 김장하」를 감상한 소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큐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김장하 선생은 한 통의 익명 전화를 받는다.
돈 있다고 말이야. 돈지랄하고 다녀?
진주에 얼마나 훌륭한 인물이 많은데
당신 같은 빨갱이들이 설치는 세상을 만들었어 왜?
국가에 반성문 써서 제출하세요.
「어른 김장하」는 이런 장면을 포함해 선생의 단순한 선행만을 기록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후보 시절 만남,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민족문화연구소 후원, 명신고등학교 전교조 교사 보호 등 현시점에서도 첨예한 이슈에 대해 피해 가지 않는다. 물론 이 행위에 덧붙이는 평가는 없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이 다큐에 등장한 첨예한 사안에 대해 나 역시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혀 불편하지는 않았다. 기꺼이 돈을 쓰는 김장하 선생의 기준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기부 시점'에 '부당하다 여기는 것들'에 대해, 본인의 돈이 아니면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약자들에게만' 그는 돈을 대었다.
모든 선의가 선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모든 선행이 선의로 해석되는 것도 아니다. 이 다큐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김장하 선생의 선행은 순수한 선의에서 비롯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이 다큐가 참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 장면 중 하나. 김장하 선생의 수많은 수혜자 중에 금전적인 도움을 받지 않은 이도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탈리안 식당을 오픈한 사장은 앞길이 막막해 김장하 선생을 찾았지만, 정중하게 거절당한다. 하지만 김장하 선생이 거절한 이유를 곡해하지 않고, 오히려 마중물 삼아 번듯한 자신만의 식당을 차리고 선행을 이어가고 있다. 김장하 선생의 진정한 어른미는 도움이 꼭 필요한 이들과 돈보다 용기와 격려가 필요한 이들, 그래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이들을 분간해 낼 수 있는 인품과 수준에 있다.
앞서, 진정한 '어른'은 반드시 책임감이 있다고 했다. 그 책임감은 보통 나와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에 국한한다. 김장하 선생이 위대한 까닭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도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이따금 책임을 따져 묻는 이들에게는 변명과 반박 대신, 사과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김장하 선생은 어른들의 어른이다.
보여주지 않으려 애썼으나, 터져 나와 드러나고 말았던 선행의 물줄기가 비로소 이 콘텐츠로 인해 역사의 흐름으로 남았다. 김장하 선생과 같은 삶은 언감생심, 꿈꿀 수조차 없겠지만 이 콘텐츠를 보고 나니 삶에서 맞이할 수많은 선택의 순간, 그 기준을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음'으로 설정할 수 있게 됐다.
김장하 선생의 수혜자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돼서 죄송합니다."
선생이 이렇게 답했다.
"내가 그걸 바란 건 아니었어.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
김장하 선생은 최대한 많은 이들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평범함을 후원하는 특별한 삶. 그의 여생이 바람대로 특별하게 평범하길 기원한다. 아울러 NC 다이노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나 평범한 그의 일상에 특별한 즐거움을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