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고마울 뿐야
나의 결혼은 남들의 오해를 살만큼(?) 빠른 타이밍에 결정되고 진행됐다.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듯, 설렘을 열정으로 전환시켜 만든 연애 에너지는 연애 초반, 무려 일주일에 5일 만남을 성사시켰다. 당시 우리집과 여자친구집 간 거리는 편도 30km에 이르렀다. 둘 다 서울에 살았지만 데이트하고 그녀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을 따지면 족히 80km는 돼 보였다.
당시 평균 귀가시각은 새벽 1:30~2시 정도였는데, 새벽에 돌아오는 올림픽대로에서 너무 졸린 나머지 정말 싸대기(따귀 수준이 아니라 이 표현을 그대로 쓴다)를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멍들 정도로 때리고, 남이 하듯 사정없이 허벅지를 꼬집었으며, 창문은 모두 열어젖혔고, 광야의 폭주족마냥 빡센 힙합음악을 최대볼륨으로 키우고 운전했다. (목숨 절대지켜!) 겨우 살아 도착한 집에서는 그마저도 아쉬워 통화까지 하고 새벽 3~4시 정도 돼서야 '끊을게' 말도 없이 잠든 적도 꽤 많았다.
그리 특별한 연애스토리는 아니다.
헤어짐이 아쉬워 '그러지 않을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는 어설픈 우회적 프러포즈를 거쳐, 지금은 명실상부 주민등록등본상의 가족이 됐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다툰다. 체감상 이스라엘과 이란이 벌이는 전쟁 그 이상이다.
역시 그리 특별한 결혼스토리는 아니다.
가끔 '헤어지지 않을 방법을 강구하지 말았어야지'라며 자조적인 후회를 남길 때가 있지만, 육아연대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최소 30년의 다른 삶이 만나, 같은 일상을 공유하게 되면 부작용이 따르는 걸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XX동 최수종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는 <동치미> 출연자들이 신나게 뒷담화하는 진상 남편에 좀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다툼의 빈도와 세기는 상승했다. 하지만 우리는 다툼으로 단단해졌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이다가도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서로를 참아냈다. 그러다 보니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이 첫눈처럼 포근히도 내렸다.
'나의 진심을 왜 몰라줄까' 싶은 서운한 감정이 들다가도, 눈에 띄지 않게 서로를 배려하고 미안함을 갚기 위한 행동들의 결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결혼 전,
다들 그러고 살아
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던 누군가의 말이 정말이었다.
티를 낼 것도, 유난 떨 것도 없다. 다들 평범한 하루를 평범하지 않게, 평범하지 않은 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결혼생활에서, 특히 육아를 하면서는 한 마디의 공수표보다 한 번의 손길과 발걸음이 훨씬 유효했다. '내가 할게' 말하기 전에 그냥 하는 것.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이에 비례해 무거워진 엉덩이를 들썩이고자 열심이다.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부부생활에서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욱 필요하고, 도움되는 말은 바로 '고마워'다. 실제상황에서 고맙다는 말이 필요할 때가 훨씬 많다. 핸드폰 보다가 아이가 넘어졌는데 사랑한다는 말이 등장할 여지가 어디에 있을까. 그런 아이를 달래는 아내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듯, 아이도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늘 미흡한 순간마다 완벽히 커버쳐주는 와이프가 있고, 아주 드물게 나도 그럴 때가 있다. 그런 순간, 아내가 '고마워'라고 말해주면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나도 고맙다는 말을 많이 쓰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사랑해'는 쓸수록 닳아 없어지는 말이고, '고마워'는 쓸수록 불어나는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