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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좋은 걸 왜 나눠 가져요

독서의 목적

by 담담댄스
삶은 프레임 밖에 있다


SNS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SNS에 있는 나는 진짜 나일까? 가면을 쓴 나일까? 답을 내릴 순 없지만, 어쨌든 나만은 SNS에서 진짜 나와 다르지 않게 표현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래서 자주 올렸던 포스팅이 독서에 관한 것이었다. 책 표지를 사진 찍어두고 책에서 얻은 소회, 통찰을 두세 문장 정도로 함축해 적절한 해시태그를 붙여 피드에 올리는 것. 3열로 이뤄진 일상 사진 속 펼쳐진 네모의 꿈처럼, 네모 칸 안에 네모진 책이 간간이 등장할 때마다 이유 모를 뿌듯함이 생겨났다. 지적 허영이 물질적인 허영보다는 수준 높은 것이라 믿으며 수많은 이웃들과 나를 구별 짓는 마음도 있었을 테다.


그러다 3~4년 전부터 내 피드에는 어느새 책 이야기가 싹 사라졌다. 오늘은 그 심경 변화의 이유를 써보고자 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며, 여전히 물질적 허영보다는 지적 허영이 수준 높은 것이라 믿고, 또 물질적 허영을 SNS에 드러내는 것 역시 비난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





책을 읽고 SNS에 올리지 않게 된 계기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이 좋은 걸 왜 남한테 알려주지?


진짜 못난 생각이지만, 나의 경쟁력이나 지식의 레퍼런스를 굳이 남에게 보여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늘 얘기하지만 진정한 고수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닌,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상대방이 모르게 하는 사람이다. 대부분 취향에 따라 편식을 하듯, 독서에도 편향이 생기기 마련이다. 꼭 알아야 하는 것들보다 알고 싶은 것에 끌리는 것이다. 즉, 내가 읽어간 책의 리스트가 곧 내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와 관점의 중차대한 스포일러다.


누군가 나에 대해 파악하고자 한다면,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심지어 그 책을 읽고 어떻게 생각했는지만 봐도 대충 알 수 있다. 그래서 적어도 익명이 보장되지 않은 SNS 공간에서의 독서 목록과 소감 공개는 지양하려 한다. 참 속이 좁은 인간이라고 해도 별수 없다. 사람들은 나한테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대신 지적 허영심을 참아낼 도리가 없어 브런치스토리에서는 때때로 서평을 써보기도 한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좋은 책을 추천해 주는 대가들을 접할 때면 진심으로 존경해 마지않는다. 물론 그분들이 알려줘도 읽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겠지만, 삶의 강력한 노하우를 대가 없이 공개하는 대가들이야말로 진정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또 한 가지 계기는 독서의 목적에 대한 고찰에서 비롯했다.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봤다.


첫 번째는 에피소드 지향형이다. 이들은 독서를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면서, 토크의 주제를 던지고 토크에 재미를 더하고자 독서한다. 이러한 목적으로 책을 읽는다 해도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해 몹시 훌륭하다. 술자리에서 소모하고 말 에피소드보다 훨씬 통찰 넘치는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의 독서목적과는 맞지 않는다.


특히 토크 중에 책 제목과 구절을 직접 인용하는 형식은 왠지 모르게 낯뜨겁다. 좋은 남의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보다 좋은 남의 것에서 나아간 나의 것을 얘기하는 것이 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이와 같은 독서의 태도가 뒤에 얘기할 독서의 목적과 연관돼 있다.


두 번째는 경험 지향형이다. 우리가 흔히 독서의 장점으로 얘기하는 케이스가 바로 이것이다. 쉽게 말하면 세계일주를 할 수 없으니 세계일주 과정을 담은 책을 읽는 것이다. 첨예한 의사결정의 순간을 혼자 감당하기 힘드니 선배들은, 조상들은 어떤 근거와 기준으로 그 순간을 감당하고 선택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게 싸게 얻은 경험들을 삶에 녹여내는 것이 중요한 독서의 목적 중 하나가 된다.


마지막으로는 소화 지향형이다. 앞서 말한 에피소드 지향형과 대척점에 있는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남의 좋은 것을 나만의 경쟁력으로 만드는 일. 내가 요즘 책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자 목적이다. 다른 사람의 통찰은 읽었다 해도 다른 사람의 것이다. 통찰을 주는 문장을 곱씹고 되새기며 삼켜서 완벽히 소화해야 내 것이 된다. 좋은 메시지를 사고와 생활의 방식으로 삼는 순간,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요즘 나는 책을 전보다 더욱 지저분하게 읽는다. 형광펜과 메모가 가득하게, 그래서 중고서점에 팔 수 없게 읽으려 한다. 그러면 그 책은 한 명의 저자가 쓴 책에서 나와의 공저서로 탈바꿈한다. 책을 같이 짓게 되면 그 책에서 나온 이야기도 내 것이 된다. 나만의 언어로 소화됐기 때문이다. 내 언어로 나누는 이야기만큼 자연스러운 토크는 없을 것이다.






가치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독서 동호회의 존재 이유를 잘 모르겠다. 책은 혼자 읽고 깨달은 바를 삶에 녹여낼수록 가장 값어치 있다고 믿는다. 독서 동호회에서 읽는 책들은 대체로 내 취향대로 고를 수 없거니와 내가 고른 책이 다른 사람의 취향에 맞는다고 보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제한된 시간에 다급히 읽고 소회와 감상을 공유해야 한다. 동호회에서 들은 서평보다 어쩌면 그 사람의 인생사가 훨씬 재미있고 의미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책은 됐고 인맥을 넓히는 기회로, 인연을 만드는 기회로 독서 동호회를 나간다고 한다면 내게는 그 사람이 솔직해서 훨씬 매력적일 것이다.


오늘도 좋은 책을 한 권 읽었다. 이 책이 남한테도 좋은 책일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이 나를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좋은 사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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