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몇 가지 낭설
사랑을 하게 돼 얻는 행복과 괴로움의 비중을 따져보자면 나는 괴로움의 손을 들어줄 것만 같다. 설렘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고, 익숙함을 지나 대부분 괴로움, 미안함, 귀찮음 등과 같은 안 좋은 결말로 향하고 만다.
평생 사랑의 증거가 결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기이자 기만이다. 결혼은 사랑만 갖고 절대 완성되지 않는다. 인스타에 XX동 최수종, OO동 션이라며 사랑꾼 면모를 보이는 남편, 그걸 자랑하는 아내들을 보면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좋은 금슬이 사실이라 해도 뭐 저리 유난인가 싶은 걸 보면 내 심사가 꼬였나 보다.
내 마지막 연애도 벌써 7년 가까이 됐다. 아내랑 지금도 연애하며 살지 않냐고? 뻘소리 그만하길 바란다.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겠다) 어디 365/24/7 쉼 없는 사랑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결혼생활 동안 사랑보다 훨씬 가치 있고 훌륭한 감정들이 생겨났고, 우리 부부는 그렇게 살고 있다.(후환이 두려울까 걱정 안 해 주셔도 됩니다. 우리 아내가 가장 공감할 겁니다)
당연하게도 (연애 기준) 사랑의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은 사람이라, 사랑에 대한 몇 가지 인사이트를 갖고 있다. 낡은 생각이라 폄하하지 말고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정서적, 이성적으로 도움이 되길 바란다.
포스트잇을 붙인다. 그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뗐다가 다시 붙인다. 그 자리도 마음에 안 들어 원래 자리에 다시 붙여본다. 이런 짓을 네다섯 번만 해도 포스트잇은 잘 안 붙는다. 아무리 붙여보려 해도 쓸모를 잃고 만다.
울며 불며, 눈물 콧물 범벅으로 이별을 통보한 연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본 적 있는가. 혹은 반대로 나라 잃은 듯 대성통곡하며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대방을 두고 쩔쩔매 본 적 있는가. 정말 어리석고, 어리석다. 떠난 마음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한번 얘기한다.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주변에 헤어졌다 다시 잘 만나서 결혼까지 한 커플이 있는데요?
그건 그냥 싸운 거다. 좀 격하게 싸운 것일 뿐, 절대 헤어질 마음이 없었던 사랑싸움이다.
어떤 점이 좋아서 끌렸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식어가면 그 어떤 점이 정말 꼴보기 싫어진다. 사실 헤어짐에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떤 점이 빌미가 되기도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본인의 그런 점을 고치면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을까, 우리가 다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헛된 희망을 품는다. 안타깝다. 그 어떤 점이 본인의 가장 큰 매력인 것을 모르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의 그 어떤 점을 무척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도 부디 당신 스스로를 그 누구보다 가장 사랑하길 바란다.
또 다른 어리석은 사람들은 상대방이 그걸 고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받아주기도 한다. 길게 봐야 일주일이다. 정확히 그 이유로 또 싸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절대 안 변하니 고치려 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그냥 안 맞는 거다.
헤어진 연인을 절대 붙잡지 않기 바란다. 새로운 포스트잇을 준비해 더 잘 붙을 수 있는 자리를 알아보자. 마음 떠난 연인을 붙잡을 그 에너지를, 상대방을 잊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방향으로 돌려내기 바란다. 아이러니하게도 닥터 스트레인지가 찾아낸 것처럼, 이것이 헤어진 연인을 되돌리는 유일한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다. 이 그릇은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라 사랑을 얼마나 줘야 상대방을 만족시킬지 모른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무조건 그릇의 크기보다 많이 주면 되겠지 싶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랑을 콸콸 쏟아붓는다. 받는 사람은 넘치는 사랑을 어찌할지 몰라 쩔쩔맨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만큼 당연한 명제다. 하지만 최선=전력질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재밌게 본 「폭싹 속았수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차라리 안 사랑하는 게 낫지. 덜 사랑하는 건 진짜 치사해
임상춘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런 걸 알게 된 걸까. 내가 바라는 사랑보다 부족하다 싶으면 서운하고, 서운함이 쌓여 이상한 감정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비단 부모-자식 간의 일뿐이랴. 연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는 사랑보다 받는 사랑이 모자라다 느끼는 순간, 끊임없는 망상과 의심병이 스스로를 괴롭힌다.
근데 문제는 양은명보다 더 사랑받는 양금명이도 나름의 병이 있었다는 거다. 부모의 기대와 그로 인한 몰빵은 금명이에게 늘 부채의식을 짊어지고 살게 했다. 아빠의 사업 실패가 둘째에겐 그저 타박거리였지만, 첫째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였던 셈이다. 덜 사랑하는 건 치사하고, 더 사랑하는 건 숨막힌다.
부모-자식은 천륜이라 헤어질 수 없지만, 연인은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 그게 너무 아픈 거다. 사랑을 모자라게 주는 것도 문제지만, 넘치게 주는 것도 문제다. 그런데 누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어떤 모양과 크기의 그릇이 있는지 알 수 있으랴.
결론이 뭐냐. 그냥 주고 싶은 만큼 주시라.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하면 조금 참아보시라. 그래도 안 되겠으면 헤어지시라. 내 사랑을 담을 수 없을 만큼 그릇이 작은 사람과 만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분명히 내 사랑을 온전히 담아낼 만한 그릇을 가진 상대방은 있다. 부디 너무 마음 쓰지 않길 바란다.
나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만큼’이라는 말을 무척 좋아한다. 연인 관계뿐만 아니라 어떤 관계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말이다. 지구가 태양과 조금만 가까워도 타 죽고, 멀어지면 얼어 죽으니 지금의 거리는 무척이나 절묘하다.
더욱 절묘한 것은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 딱 필요한 만큼의 여름과 겨울을 누릴 수 있다는 거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늘 지구와 태양 사이의 절묘한 거리를 기억하면 좋겠다. 거기에 나만의 매력으로 자전축만 살짝 기울여 사랑의 희로애락, 그 찬란한 사계를 오롯이 누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