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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마나한 흔한 말

by 담담댄스

#프롤로그


나한테만 유명한 뮤직 주크박스, 바로 나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 어떤 한 단어에 꽂힐 때가 있는데, 이유는 음운구조상 비슷한 단어가 들어간 노래가 생각나서다. 얼마 전에는 뙤약볕에 세차를 하고, 반짝반짝 빛나도록 왁스를 먹인 적이 있는데 너무 고돼서 나도 모르게 노동요가 튀어나와 버렸다.


왁스 맥여 왁스 왁스 맥여 맥여 왁스~♪



아무도 저 노래의 원곡이 뭔지 모를 거다. 원곡은 바로 1TYM의 <HOT 뜨거>다.




#2


나는 미장원에서 이발한다. 아주 어렸을 때 잠깐 이발소를 다녀본 적이 있지만, 의외로 이발소가 잘 없다. 그리고 내가 이사를 하거나 디자이너 선생님의 은퇴 같은 일이 아니고선 한 분에게 쭉 맡기는 편이다. 결혼 전에는 진짜 8년 정도 한 선생님에게서만 자르다 결혼하고 동네를 떠나게 되면서 내 마음에 맞게 머리를 잘라주시는 분을 찾느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지금 동네에 정착한 것은 4년째 접어든다. 4년 동안 놀랍게도 세 분의 디자이너를 거쳤다. (중간중간 바뀌는 과정에서 한두 번씩 머리를 맡겼던 분은 제외다) 내 성향을 생각하면 좀 많은 편인데, 여기에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


첫 번째 디자이너 분은 정말정말 실력이 탁월한 분이었다. 국제대회 수상 경력도 있으시고, 요즘도 계속 대회에 출전하면서 트렌드를 공부하고, 실험하는 분이었다. 커리어 관점에서 보면 존중을 넘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다.


정말 잘하는 분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애석하게도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 했다. 잠시만 쉬고 돌아온다고 하셨지만 불가피하게 몇 달의 공백을 기다려야 했고, 결국 새로운 선생님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두 번째 분은 헤어컷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엄청난 기술력을 느낄 만큼 스킬풀한 분이었다. 이 분이 제일 잘하는 것은 일명 '라인 따기'. 늘 다운펌을 하기 때문에 옆 헤어라인이 잘 정돈되면 좋은데 이 분은 정말 자를 대고 칼로 자른 듯 헤어라인을 기가 막히게 정돈한다.


'이제 정착할 수 있겠구나' 안도했지만, 만난 지 1년쯤 지났을까. 아 글쎄 멀쩡한 미장원을 내놓았다는 거다.


Why? Why? Why?


구자철 와이.gif


곧 결혼할 건데, 결혼하면 바로 아이를 가지고 싶어서요.


세상에 내가 만난 최고 기술자의 궁극적인 목표가 현모양처였다니... 얼굴은 축하, 마음은 걱정. 그 미장원은 두 명의 친구가 같이 운영하던 샵이었는데, 다른 한 분께 머리를 맡기고자 했으나 동업자 디자이너 선생님은 그냥 사무직하면서 규칙적으로 살고 싶다며 집 근처 회사에 취직했다고 한다. 그래서 샵을 내놓았다고......



#3


이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 선생님께 정착했다. 이분은 실력도 괜찮으신데 토크가 참 좋으시다. 벌써 한 1년쯤 됐나? 어제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헤어컷 & 토크가 바짝 진행 중이었다. 선생님 입담에 취기가 오르셨는지 갑자기 이러는 거다.


"제가 예전에 말실수를 해서 고객 한 분을 잃은 적이 있어요"


"네? 어떤?"


"그 분하고도 어느덧 친해져서 저도 모르게 '근데 연예인 누구 닮으신 것 같아요'라고 한 거예요."


아...... 살면서 듣는 하나마나한 이야기 중 하나가 연예인 누구 닮았다는 얘기다. 대부분 당사자보다 당연히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대면서 올려치기를 통한 칭찬 앤드 우호적인 평판 형성을 노린 것일 테지만, 경험상 안 하느니만 못하다. 너무 올려치면 맥이는 느낌이고, 애매한 연예인을 들먹이면 기분이 팍 상하기 때문에 이런 말은 정말 신중하게 하거나, 그냥 안 하는 편이 낫다.


"누구라고 하셨어요?"


"박휘순이요"


박휘순은 예전에 인터뷰를 본 적 있는데, 정말 멋지고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떡볶이 매니아인 나는 아직도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어먹는다'는 육봉달 드립을 즐겨 쓸 정도로 그의 팬이다. 그런데 박휘순의 경쟁력은 외모가 아닌 개그력이다. 이건 웃자고 한 얘기를 넘어 대상도, 당사자도 모두가 언해피한, 무례할 수도 있는 실언이었다.


그리고는 다음 예약을 안 하시더라고요...... 지금까지 못 뵀어요



(선생님, 지금은 반성 중이며 본인의 입을 몇 대 후드려 팼다고 하십니다.)



# 4


솔직빙자무례죄. 솔직한 것이 꼭 미덕은 아니다. 특히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랍시고


근데 담담댄스는 말야... 아니다...


한 순간에 사람을 을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의 단어, '아니다'. 조르고 졸라 굳이 안 좋은 이야기를 듣는 나도 변태 같지만, 꼭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저렇게 쓸데없이 밀당하는 사람도 별로다.


개인적으로 가장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너 요즘 살찐 거 같아'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덕담으로 여기는 '살 빠진 것 같아요'도 잘 안 하는 편이다. 살을 빼서 빠진 거면 축하할 일이지만, 빼기 싫은데 사정이 있어 빠진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극도로 조심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살이 찌면 어떻고 빠지면 어떤가. 본인이 행복하면 됐지. 근데 굳이 걱정돼서 하는 얘기라며 살찐 것 같다는 얘기는 뭐하러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빼라는 것도 아니다. 꼭 끝에 '보기 좋다'고 사족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더 꼴보기 싫다.


내가 생각한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했을 때 상대방의 기분이 나쁠 수 있는 이야기

어색해서 분위기 띄우려고 하는 아무말 → 모든 실언은 여기서 비롯한다

제3자가 한 말을 전하는 말 → 설령 그것이 칭찬이더라도


이거 세 가지는 진짜 굳이... 싶다. 세 번째 항목에 각주를 붙이자면, 제3자의 칭찬을 전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칭찬한 당사자의 정확한 의도까지 전할 수 없기 때문이며, 전달 과정에서 발생한 왜곡의 결과는 생각보다 참혹할지도 모른다. 멀리, 길게 갈 것도 없다. <나는 솔로>를 보면 알 수 있다.



#에필로그


미장원을 나서며,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하나마나한 흔한 말~♬ 한 번도 해보질 못해서~♪



나이 들며 뼈저리게 느낀다. 해도 되나 싶은 말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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