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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생일에 부쳐

부모가 된다는 것

by 담담댄스

나름 낙천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라 생각하지만, 아닌 구석도 제법 있는 듯하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들을 나열해 보자면


뭘 이렇게까지(저렇게까지, 그렇게까지) 하나...

어휴 유난도 유난도, 뭘 저리 티 내고 사는지


이런 생각이 최근 더욱 자리 잡은 것은 '육아' 때문이리라. 공포 마케팅이 가장 잘 먹히는 곳이 육아와 교육이라 했거늘, 실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엄마보다 덜 붙어있는 아빠인데도 경쟁 열위에 대한 공포심이 피부로 와닿는다.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문화센터(a.k.a. 문센)를 다니고, 정말 4살짜리 아이가 나보다 유창한 발음으로 영어로 말하는 것도 봤다. 한글, 숫자, 미술, 축구, 심지어 고급 스포츠라 생각했던 승마나 아이스하키까지...... 요즘의 부모들은 공부뿐만 아니라 예체능에까지 선행학습과 조기교육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반골기질을 가진 나는 오히려 반감만 들뿐이다. 같잖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독립된 자아로서의 주체적 선택권이 배제된 아이들을 둔 부모의 대리만족, 대리행복, 뭐 그런 게 아닐까 싶어서. 심지어 빠듯한 살림에도 자식 교육을 위해 학군지로의 이사와 복수의 사교육을 마다치 않는 부모들을 보면서 본인들의 선택이니 왈가왈부할 수 없겠다 싶으면서도 묘한 감정이 들곤 했다.


근데 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최근 이사를 하면서 복수의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할 때 들었던 부동산 사장님의 한 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저 아파트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다니는 학군지라
이왕이면 여기가 더 좋죠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한 마디였다. 당장 초등학교에 갈 것도 아니면서. 아이가 영단어 하나, 아임 파인 땡큐 수준의 쉬운 문장 하나만 말해도 글로벌 인재가 아니던가 설렜으면서, 가까이 다가온 글로벌의 기회 앞에서는 정작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까 염려했던 것이다.


때마침 아파트 주민들이 모여 있는 오픈카톡방에서는 학군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다. 눈길이 머문 건 한 부모의 얘기였다.


우리 아파트도 세대수가 많은데 영어유치원 보내는 아이 없을까요. 많지는 않지만 있죠.
우리 동네는 공부시키는 걸 유난으로 보는 분위기가 좀... 공부시키는걸 유난이라 보지 않고 전반적으로 공부하자 분위기가 되면 학군도 좋아지겠다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 공부. 공부를 열심히 시키고픈 마음이 나쁜 것인가. 이제 초등학생 고학년 정도면 억지로 시킨다고 받아들일 나이도 아닐 텐데, 부모가 아무리 시켜도 본인이 안 하면 그만인 것을. 그리고 살면서 가장 가성비 좋았던 진로/적성은 좋은 학업 성적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충분히 봐왔지 않나. 공부 좀 시켜보자는 부모들이 남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정작 유난은 내가 떨고 있었나 보다.


내년이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앞둔 시점이 된다. 한 번 물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아가, 해보고 싶은 공부 있니?
많이는 안되고 하나만;;; ㅋㅋ






얼마 전, 아이의 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이제 슬슬 한글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돼 아이에게 편지를 써 봤다. 직접 쓴 편지를 읽어주자 정말 감동을 받아 행복해하는 표정이 나온다. 그걸 보니 나는 더 큰 행복감에 사로잡힌다.


그 편지에 두 가지 바라는 점을 써주었는데 하나는 좋은 취향을 갖는 것, 다른 하나는 바른 인성을 갖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둘 다 아이 스스로 찾아 익히긴 너무 어려울 것 같다. 결국 부모가 나서야 하는 부분이다. 물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감도 안 잡힌다. 그저 내가 좋은 취향을 갖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 그걸 보고 자라기를 바랄 수밖에. (위고비 랩이나 만드는 아빠에게서 좋은 취향을 배울 수 있긴 한 건가...)


농담을 가장해, 진심을 담아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돈은 없고, 가진 게 사랑밖에 없어서
사랑은 진짜 남부럽지 않게 줄 거야


사랑한다는 말,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 책을 읽어주며 살과 살을 부비는 식의 스킨십. 이런 건 얼마든지, 아끼지 않으려 한다. 남한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니 유난 떨 일도 없다. 우리 아이가 내가 주는 모든 사랑을 남기지 않고 먹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사랑을 온전히 스스로를 사랑하는 데 썼으면 좋겠다.


XX이는 누구를 가장 사랑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류의 질문은 아니다. 아이가 가끔 엄마나 아빠라고 대답할 때마다 나는


XX이가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은 XX이 바로 너야


라고 알려준다. 내가 유일하게 하는 주입식 교육인 셈이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인생의 수많은 기로에서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올바른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나를 닮기 바라면서도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양가적인 감정, 우리 아이의 다섯 번째 생일에 부쳐 이런 생각들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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