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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일타강사 납시오*

by 담담댄스
이 글을 다시 올리려니, 배대웅 작가님과의 댓글 열전이 떠오른다. 작가님의 혼신을 다한 댓글들이 사라져 버려 지금도 못내 죄송한 마음뿐이다 ㅠㅠ



나는 자만추를 잘 못하는 사람이다. 상대가 아무리 호감형이어도 자연스럽게 만나서 친해지면 그냥 친구가 될 뿐이다. 만남의 목적부터 '연애'여야만 연애를 할 수 있게 코딩돼 버린 나의 선택은 대체로 소개팅이었다. 소개팅은 연애를 하기 위해 이성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간혹 소개팅에 친구를 만들러 나왔다고 하는 상대방이 있다. 그럴 땐 이렇게 해석하면 된다.


그냥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하지, 굳이 안 해도 되는 얘기를 ㅉㅉ


물론, 꽃미남은 고사하고 호감형 외모도 아닌 내게 선택권이 주어진 적은 별로 없었다. 친구들과 자주 쓰는 표현으로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다. 정확히는 우리 같이 '못 생긴' 사람들이다. 빅데이터라 하기 민망하지만, 우리의 기준에 따르면 대개 상호 마음에 안 들 확률이 85% 정도 되는 것 같다. 나머지 10% 정도는 남자 혼자 마음에 들었을 경우, 남은 4%가 여자 혼자 마음에 들었을 경우, 결국 1% 정도의 확률로 소개팅에서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무슨 만나는 상대마다 다 자기 좋다고 쫓아다닐 줄 안다면 정말이지 큰 오산이다. 다만, 이 글을 읽는 싱글 분들이 있다면 절망할 필요는 없다. 1%의 확률은 100명을 만나면 무조건 1명은 사귈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 1%의 확률에는 운이 좋다면 100명을 채우지 않아도 1명을 만날 수도 있다는 의미도 있다.


나의 99% 실패담에서 얻은 교훈을 얘기해 보련다. 남자 입장에 치우쳤다, 소개팅해 본 지 10년 가까이 된 사람이 요즘 트렌드를 뭘 알겠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건 양해를 부탁한다) 그저 소개팅에서 잘 되는 방법은 모르지만 최소한 망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도로 생각해 주면 고맙겠다. 왜 소개팅을 망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냐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주선자와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1. 만남 전에 너무 연락을 자주 하지 말자


소개팅 시장에서 철수한 지 어언 7년이 지난 지금의 트렌드는 솔직히 모르겠다. 내 경우 만남 전 약속 장소와 메뉴를 정하기 위한 연락은 최대한 문자메시지를 이용했다만 요즘은 문자로 약속 잡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실제로 싱글 후배들에게 물어보니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것이 좀 더 개인적인 영역이라 카톡 아이디만 전달해서 카톡으로 얘기하면서 서로의 취향을 보라고 인스타 계정만 눈팅용으로 알려주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사람한테는 주먹으로 모래를 쥐듯이 다가가야 돼


내 친구가 남긴 저 한 마디를 평생의 진리라 생각하며 살았다. 모래는 꽉 움켜쥘수록 새어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첫 만남 전까지 연락의 빈도도 굳이 잦을 필요 없다고 본다. 개인적인 추천은 카톡 프로필 받고 그날 저녁이나 다음날 저녁에 약속 잡는 거 한 번, 약속 전날 한 번. 이렇게 연락 두 번 정도면 깔끔하지 않나.


잦은 연락으로 만나기도 전에 설렘 지수를 잔뜩 높여놓고, 정작 만나서 짜게 식어버리는(그것도 한쪽만 그렇다면...) 간극을 메우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2. 약속 장소는 최대한 상대방이 움직이기 편한 곳으로


내가 분당에 살고, 상대방이 일산에 산다면 종로에서 만나면 될까? 누차 얘기하지만 잘생긴 사람들은 분당에서 보자고 해도 상관없을 수도 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절대 안 된다. 일산으로 가는 것이 좋다. 상대방이 너무 미안해하거나 불편해한다면 꼭 상대방의 집이나 회사 근처로 가지 않아도 된다. 이 경우엔 상대방에게 자연스레 대안을 넘기는 게 좋다.


패션은 타고난 감각의 영역에 가깝다. 옷태가 나는 몸을 가진 사람이라면 거적때기나 넝마를 걸쳐도 아방가르드라 칭송받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최대한 단정한 차림을 권장한다. 본인의 얼굴 톤이 웜톤인지 쿨톤인지 안다면 맞춰서 입고, 술톤이거나 잘 모르겠으면 무조건 원색보다 무채색이다. 바지는 단정한 슬랙스나 치노팬츠가 좋고, 신발은 로퍼나 슬립온, 단화 계열의 운동화도 좋다. 요즘 어린 친구들의 트렌드는 잘 몰라서, 트렌드에 맞춰 과하게만 입지 않으면 될 거다.


더욱 문제는 메뉴다. 가장 속 편한 경우는 상대방이 메뉴를 지정해 줄 때지만, 그런 일은 10%도 안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체로 남자들이 메뉴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선 상대방이 꺼리는 것을 반드시 물어보고 확인해야 한다. 그 메뉴를 제외하고,


1. 냄새가 심해 옷에 밸만한 메뉴 ex) 삼겹살 같은 고깃집
2. 너무 맵거나 뜨겁거나 질긴 메뉴
3. 손을 써야만 먹을 수 있는 메뉴 ex) 간장게장, 해물찜
4. 뼈, 껍질, 껍데기 등 잔해가 남는 메뉴


를 제하면 된다. 쉽게 말해 파스타를 먹으면 된다. 파스타를 싫어한다면 깔끔한 중식당이나 일식(돈가스, 소바, 초밥, 일본 가정식), 태국 음식도 좋다. 개인적으로는 한식집을 좋아하는데, 요즘엔 1인 상차림으로 깔끔하게 나오는 콘셉트의 트렌디한 한식집이 많다. 예약이 가능한 식당이면 예약도 필수, 혹시 맛집인데 예약을 안 받는다면 30분 정도 일찍 가서 미리 줄을 서놓거나 자리를 맡아두는 것도 좋다.


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고? 그럼 혼자 살아라 인마.



3. 입:귀 = 3:7


만나서는 보통 대화를 풀어나가야 하는 역할이 주어진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 무슨 얘기를 이끌어 낸단 말인가. 유퀴즈에도 엄연히 작가들이 써주는 대본과 프롬프터가 있거늘. 늘 얘기하는 바지만 '무엇을 좋아하는지' 위주로 대화를 풀어가다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고 자연스레 이야기의 접점을 늘려갈 수 있을 것이다.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은 남자의 몫이지만 중요한 것은 본인이 수다스럽게 토크점유율을 절반 이상 가져가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잘 듣고 리액션 위주로 대화를 풀어나가면 좋다. 절대 급할 것 없다. 하고 싶은 얘기는 잘 되면 실컷 할 수 있다.


보통은 밥을 먼저 먹고 2차로 카페를 가지만, 분위기가 좋게 흘러간다면 가벼운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펍(Pub)이나 바(Bar)도 좋은 대안이다. 살짝의 알코올은 설렘의 도수를 높이고, 긴장의 도수는 낮추기 마련이다. 하지만 술과 분위기에 취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가벼운 터치라도 스킨십은 절대 금물이다.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행위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나란히 걸어가다가 우연을 빙자해 살며시 팔꿈치가 스치는 정도는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


무엇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늘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상대방이 호감을 보이는 것 같아도 최대한 경계하고 경계하라. 상대방의 호감이 사실이라면 본인이 굳이 설레발치지 않아도 잘 되게 돼 있으니 말이다. 잘 돼가는 분위기일수록


아니야,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를 주문처럼 되뇌길 바란다. 명심하라, 설레발은 필패다.



4. 헤어진 후에는 솔직하게


1%의 확률로 상대방도, 나도 호감이 있다는 것이 자명할 때는 첫 만남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다음을 기약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말 그대로 1%다. 상대방이 아무리 내 마음에 들었어도 헤어진 후에 애프터를 신청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


물론 90%의 확률로 나의 일방적인 경우든, 쌍방이든 별감흥이 없을 것이다. 이럴 경우 상대방이 잘 들어갔는지 안부만 꼭 확인하고 다음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편이 깔끔하다. 요즘에는 여자가 남자를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경우에는, 1차(식사)를 보통 남자가 내면 여자가 더치하자고 하거나 나중에 반을 보내겠다고 하고, 마음에 들면 얻어먹는 거 미안해서 2차를 내겠다고 한단다. 알아서 알아들을 수밖에 없는 요즘의 소개팅도 나름 괜찮아 보인다 ㅋㅋ


애프터 신청을 하지 않았을 경우, 상대방이 주선자를 통해 나의 의사를 타진해 온다면 솔직하게 말하자. 설령 한 명의 주선자를 잃는 일이어도, 그게 낫다. 마음에도 없이 만나다가 더 큰 상처를 주면 주선자와도 영영 세이 굿바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마저도 사치다.






요즘 트렌드에 잘 맞는 얘기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아무리 저렇게 해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잘 안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쟁통에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다. 될놈될이라는 말이다. 될 사람은 마라탕을 먹고 앉은자리에서 화장실을 세 번 들락거려도 잘 되게 돼 있다.


이렇게 보니 어떻게, 나 같은 사람도 결혼을 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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