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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운 날에 에어컨을 꺼달라고?!

존엄에 대하여

by 담담댄스

휴가라 글도 쉬려고 했는데 참다참다 못 참겠어서 하소연.


전 세계 이상기후인지 진짜 유례없었던 폭염에 기본 상태값이 짜증 그 잡채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누구 하나 잘못 걸리면 시비 털릴 거 같아서(15층 인성파탄자로 블라인드 올라갈까 봐) 접촉은 최대한 피하고, 눈에 안 띄게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일상이다.


유일하게 바빠 보일 때는 바로 퇴근할 때. 1분이라도 지체하기 싫어 서둘러 짐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더니 옆팀 팀장님이


담담댄스님 요즘 바쁜가 봐


라길래, 괜히 말 섞으면 길어질까 봐 걍 “네~”하고 말았다.


무튼 이래저래 여차저차 퇴근하고 지하철에 딱 올랐는데, 내 기댓값은


아이 추워, 겨울인가


였지만,


상태값은


뭐야, 더 더워?


뭐 이런 게 다 있지? 싶어 기관사님께 문자를 보내볼까 했지만 ‘참지 않긔’ K-아줌마의 행동력을 내가 이길 순 없다. 바로 비상통화 눌러버리는 여사님의 행동을 조용히 응원하는 수밖에. 근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메시지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 어떤 분이 너무 춥다고 에어컨을 꺼달라고 해서요


우와이씨, 뚜껑 열리네. 무보수 피처링 참여하려고 달려들었는데(실제로 그 칸에 타고 있는 누군가 보낸 것일 테니 들으라는 마음도 있었다) 역시 K-아줌마 참지 않고 디스랩을 박아버린다.


아니, 이 날씨에 어떤 미친 XX가 지하철 에어컨을 꺼달래.
상식적으로 그런 민원 들어온다고 끄는 게 맞아요?


아, 내맘 여사님맘 내말 여사님말. 기관사님의 마음도 모르는 바가 아니니 안타깝긴 한데…… 괜히 민원 안 들어줬다가 이상한 민원 꽂힐까 봐 겁나신 것일 테니. 그래 이 공감능력 없이 자기만 생각하는 개인의 일탈 탓이다.


지하철은 불특정다수가 이용하는 대중교통이다. 취향에 맞는 온도와 습도로 쾌적하게 가고 싶다면 자차나 택시를 이용하면 될 일. 그래 여름에도 에어컨 세게 틀면 추울 수 있지. 체질상 추위를 잘 타는 사람이라면 여름에 카디건을 들고 다니고, 더위를 잘 타는 사람이라면 겨울에도 외투 안에 반팔을 입는 게 맞지 않을까.


불편러가 세상을 바꾸는 거? 맞지. 근데 선행돼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공감이다. 나의 불편이 더 많은 이들의 불편으로 해결돼야 하는 것이라면 참으라고 배웠다.


고등학교 일반 사회 시간에 배운 일화가 떠오른다. 식인 부족의 관습도 문화적 상대주의에 따라 인정해 줘야 되냐고. 인간의 존엄성이 앞서는 가치라고 배웠다.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날씨에 자기존엄만 최고존엄이라 여기는 누군가를 하게 꾸짖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든 퇴근길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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