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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May 29. 2024

달콤한 안무

NewJeans <How Sweet> 퍼포먼스 감상

영화 <달콤한 인생>은 누아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N차 감상의 길로 이끈 수작이다. 줄거리는 차치하고 이 영화의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이 영화의 제목이 국문으로는 <달콤한 인생>, 영문으로는 <A Bittersweet Life>인데 둘 다 좋다. 한글 제목을 영어 제목이 보완해 주는 느낌이랄까. 이 영화의 백미인 이병헌의 연기야말로 ‘달콤함 뒤에 감춰진 씁쓸함’ 그 자체다.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나의 최애 뉴진스의 신곡, 그중에서도 퍼포먼스에 대한 글이다. 뉴진스의 <How Sweet> 퍼포먼스를 보니, 우선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야 이 영화 이야기가 떠올랐다. 제목처럼 노래는 얼마나 달콤한지, 그 퍼포먼스는 어찌나 화려한지, 그 화려함이 어떻게 다시 달콤함으로 귀결되는지, 이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내가 춤을 잘 추는 사람이냐, 절대 아니다. 누군가 감히 네가 왜 춤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방송댄스 애호가로서 무지성 수준은 아니라는 어설픈 답변으로 무마시키고 싶다. 


이번 뉴진스의 안무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힙합'이다. 좀 더 알아듣게 설명하자면 '팝핀'과 '웨이브'다. 더욱 쉽게 얘기하자면, 미국에는 마이클 잭슨, 한국에는 박남정의 등장 이후로 학교나 회식에서 


야, 너 춤 잘 춘다며? 한 번 춰봐


라고 하면 대충 아래와 같은 춤을 출 것이다. 혹자는 로봇춤이라고도 했다. 부드러움과 끊어짐이 반복되는 이 춤은 마이클 잭슨의 상징과도 같은 문워크에 기반한다. 과하게 말해 요즘에도 회식하면 왕년에 좀 놀았다 자처하는, 술에 취한 부장님들이 어설프게 이런 문워크와 팝핀을 추곤 한다.


우리 회사 부장님이 이 정도의 1/10만 춘다면, 그가 시키는 일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뉴진스는 지난 앨범과 마찬가지로 이지리스닝 계열의 노래를 들고 왔다. N단 고음, N옥타브를 넘나드는 과한 바이브레이션으로 대표됐던 빡센 아이돌 노래는 더 이상 주류가 아니다. 뉴진스는 등장과 동시에 아이돌 음악의 판도를 이지리스닝으로 바꿔냈고, 이후 많은 아이돌 음악 역시 이 물줄기에 휩쓸리거나 합류했다.


이 곡 <How Sweet> 역시 전작 <Super Shy>와 마찬가지로, 음악에서 전혀 유추할 수 없는 안무를 들고 나왔다. 이번 선택은 힙합. 힙합 댄스라고 한다면 우리 세대(80년대생)는 듀스를 떠올려 보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화려함, 파워풀(Powerful), 절도, 강렬함. 뭐 이런 단어들이 아닐까. 뉴진스는 어떻게 이런 이지(Easy)한 음악과 저런 하드(Hard)한 춤을 붙일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연습과 무대 경험 덕분일 것이다. 뉴진스의 이번 안무 동작을 하나하나 구분하면 춤 좀 춘다는 사람들조차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울 것이라 장담한다. 박자를 쪼개거나 밀고 당기는 기술을 보고 있자니, 난이도는 분명 듀스 시절의 힙합 댄스에 비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감히 남성向의 춤이라 말할 수 있는 힙합을 갓 스물에 접어든 여자들이, 그것도 저렇게 쉽고 편하게 춘다고? 


유명한 운동선수들이 말하길, 진짜 어려운 게 힘 빼는 거라고 하지 않나. 우리가 수억 번 내디뎠던 걸음조차 군대에서 제식이라는 새로운 경험으로 맞닥뜨리는 순간, 같은 손과 같은 발이 올라가는 부자연스러움의 극치로 승화되기 마련이다. 


쉬운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모든 자연스러운 것들이 쉬운 것은 아니다. 어려운 것은 결국 반복이다. 반복을 반복해야 이런 경지에 이른다. 씁쓸한 눈물을 삼키며 혼신의 연습을 통해 탄생한 달콤한 퍼포먼스. 나는 이번 뉴진스의 새로운 무대에서 그걸 보고야 말았다. 그녀들은 짐작컨대, 이런 걸 목표로 삼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든지,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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