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담댄스 May 27. 2024

그럴 수도 있는 일과 어쩔 수 없는 일*

자동사와 타동사의 삶

대화를 마무리할 때 잘 쓰지 않는 말이 있다.


힘내자, 파이팅


저렇게 말해야 할 상황이라면 상대는 이미 힘을 다 쓴 상황이라 힘이 없을 텐데, 힘을 내라면 더 힘이 들기 마련이다.


힘은 내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다. 이걸 깨달은 이후로, ‘오늘도 잘 버티자’라든지 ‘지내다 보면 잘 지나가 있을 거야’ 같은 나만의 의미를 더 넣어서 인사를 마무리한다.


<유퀴즈 온더블럭>에 황인범 선수가 출연해서 한 말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조별예선 3차전 포르투갈 전에서 그는 후반 막판이 되자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후반 46분, 기적 같은 황희찬의 골이 들어가고 갑자기 힘이 생겨나 세리머니를 하러 달려갔다고 하는 걸 보면 힘은 낸다고 나지 않고, 그저 나야 나는 것 같다.


ⓒ tvN All right reserved, 2022


어쩌면 우리는 목적어를 꼭 필요로 하는 타동사 위주의 삶을 사는 건 아닌지. ‘힘을 내야하고, 맛을 내야하고, 흥을 돋워야 하고, 기분을 맞춰야 하는’ 그런 삶 말이다. 그렇다고 목적어를 위한 삶을 폄하할 의도가 없다. 모든 노력은 존중받아야 한다. 단지 목적어가 주어가 되는 삶을 사는 것은 참으로 축복이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힘이 나고, 맛이 나며, 흥이 돋고, 기분이 맞아가는’ 그런 하루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타동사의 삶을 자동사의 삶으로 바꾸는 데만 타동사를 쓰고 싶다. 우리의 삶을 공들이지 않는 삶, 자연스럽게 되는 그대로의 삶, 무위도식의 삶으로 바꿀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만족스러운 삶이 있겠는가. 이런 삶을 살아도 때로는 '어쩔 수 없다' 여기며 신세한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부턴가 세상의 모든 일을 그럴 수도 있는 일과 어쩔 수 없는 일로 양분해 왔다. 나만의 기준이긴 한데 이렇게 하면 좀 더 편해질 수 있다. 양질의 노력이 늘 성공과 행복을 담보할 수 없기에, 나의 의도와 무관하게 벌어진 일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노력의 대가가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기대와 다를 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물론, 이 모든 일에 대해 그런 척만 할 뿐이다. 세상에 쿨한 사람은 없다. 잘 참아오다가도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따져 묻거나 ‘아무리 어쩔 수 없어도 그렇지’라는 말이 맴돈다. 결국 그럴 수도 있는 일과 어쩔 수 없는 일을 모두 빼거나 더하면 ‘그런’ 일만 남는다. 그렇다고 그런 일이 아무에게나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도록 공들인 내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이 남긴 본인 인생의 한줄평이 더욱 와닿는다.


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은 되는대로


ⓒ tvN All right reserved, 2021


작가의 이전글 글을 짓는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