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PD 시험후기 1편
ㅡ 자기소개해 보세요
ㅡ 안녕하세요, 1025번 지원자 담담입니다. 소리는 하늘에서 빛으로 바뀌어 제게 닿았습니다. 그 빛은 울림이 되었고 꿈이 되었고 어느덧 숙원이 되었습니다. SBC는 대한민국 라디오의 자부심이자 클래식입니다. 이곳에서 드디어 기회를 얻었습니다. 꼭 잡아내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그저 또래와 달라 보이고 싶어 라디오를 들었던 것뿐인데. 엄마를 졸라 안테나를 길게 뽑아야 전파가 잡히는 싸구려 라디오를 얻었을 때의 그 기쁨이란.
엄청 오래된, 역사 속의 프로그램 같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들었던 라디오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였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게스트로 갓 데뷔한 H.O.T.가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경악할 질문이었는데, 이문세는 이수만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너네가 핫이지?
라 물었고, 대선배의 공격적인 질문에 '우리는 H.O.T.예요'라고 말도 못 하고 그렇다고 했던 문희준의 어색한 답변이 떠오른다. 무튼, 이문세는 얼마 지나지 않아 12년 간의 DJ 생활을 그만뒀고, 사실 나를 라디오로 끌어당긴 것은 이문세의 후임이었던 이적이었다. 별밤 3부 시작 전에 흘러나온 그 로고송
눈을 감아요 마음을 열어요
하나둘 떠오르는 별들을 세어봐요
우리 맘 속에 수많은 별이
잊혀진 어릴 적에 당신을 기다려요
그걸 찾아요
다시 한번 별빛을 노래해요
꿈을 꿔봐요
이적의 별이 빛나는 밤에
얘기가 옆길로 샜네. 아무튼 이적을 필두로 이휘재까지 별밤을 듣다가 이웃 채널의 박수홍, 박경림 콤비의 만담쇼에 빠졌다가 이소라의 <FM 음악도시>에 정착하며 라디오키즈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라디오에는 내가 사랑하는 음악과 이야기가 있었고, 20대 형, 누나들의 연애 사연에 잠못 이루며 나 역시 꼭 대학교를 가면 여자친구를 만들어 그녀만을 위한 사연을 보내봐야지 마음먹기도 했다. (물론 그 사연을 보낼 순 없었다. 인터넷이 안 됐던 건 아니고, 안 생겼다)
급기야 나는 라디오PD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라디오PD가 되면 이소라를 누나라고 부를 수 있고, 유희열을 형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성시경이랑 방송 끝나고 뼈해장국도 먹으러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신입PD 시절에는 새벽 방송을 맡아 야심한 시각에 미모의 여성 아나운서와 단둘이 있는 부스에서 로맨스를 싹 틔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메타인지 곱게 빻은 망상도 해보았다. (새벽 방송은 대개 라이브는 없고, 햇빛 짱짱할 오후에 녹음해 둔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공부를 잘해서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되기만을 바랐던 엄마에게도 방송국 PD라면 납득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렇게 나는 대학 전공도 신문방송학으로 정했다. 군대를 다녀와서는 더욱 라디오PD 시험 준비에 매진했다. 라디오PD 시험 준비는 사실 뭐 딱히 대단한 것은 없다. 언론고시라고는 해도 어디 행정고시, 사법고시, 외무고시에 비할 바 있으랴. 심지어 CPA(공인회계사)보다도 전문성이 떨어지는 시험이지만, 그래도 후회를 남길 순 없어 나름 빡세게 준비했다.
PD 시험은 방송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으로 '작문' 시험을 치른다. 내가 언론고시를 고시로 안 치는 이유도 바로 작문에 있다. 작문은 참 어렵다. 뭐가 어렵냐면 정답이 있는 시험이 아니라는 거다. 가장 유사한 형식의 시험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떠올리면 맞다. 주제를 주고, 자유로운 형식과 서사로 주어진 시간 안에 글을 한 편 쓰면 되는 것인데, 주어진 시간은 보통 100분을 넘지 않았고 수기로 써야 했다.
한 편의 완성도 높은 글을 쓰기엔 시간도 부족했으며, 무엇보다 당시 유명한 라피 지망생들이 모이는 다음 카페가 있었는데, 작문을 채점하는 선배 PD들이 글씨가 개발괴발이면 읽어보지도 않고 탈락시킨 '카더라'가 흉흉하게 떠돌았다. 나는 감히 천재도 아닌 것이, 악필이었기에 초등학생도 아니고 글씨쓰기 연습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작문시험의 결정적인 문제는 형식도, 구성도 자유다 보니 어떤 글을 잘 쓴 글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어떻게 써야 합격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강남역 7번출구'라는 주제에 기가 막히게 감성에세이 한 편을 써내려간 작문의 달인의 합격 수기가 라피 카페에 전설처럼 떠돌았고, 몹시 자괴감을 느껴보기도 했다. 심지어 심사위원들의 성향에 따라서 어떤 글이 대박이거나 핵구리거나 할 수 있으니 차라리 객관식, 단답형 시험을 보고 뽑았으면 싶기도 했다.
어쨌든 최대한 많은 피드백을 얻으려 작문 스터디는 2개 이상 돌렸다. 심지어 TV는 예능, 시사/교양, 드라마 이런 분야라도 있지. 라디오는 그냥 분야가 라디오다. 밤 10시 음악프로만 바라보고 들어갔다가는 새벽 6시에 하는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나 아직도 잘 모르겠는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들으면 졸음 오는 <새아침의 클래식> 중 뭘 맡게 될지 모르는 거였다. 특히, 라디오 채널이 가장 많은 KBS에서는 「일반상식」과목도 있어서 신문도 열심히 봐야 했고, 「한국어능력시험」 점수까지 본다고 하니, 3대 고시급은 아니어도 준비할 게 많긴 했던 것 같다.
T/O의 압박도 거셌다. 라디오PD는 방송 3사와 EBS, CBS, TBS(교통방송) 정도에서만 신입을 뽑기에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들 했다. 심지어 TV PD는 뉴페이스가 트렌디한 걸 할 수 있다 쳐도, 라디오PD는 2시간짜리 FM방송 기준으로 1, 2부는 사연, 3, 4부는 고정 코너로 운영되는 포맷 안에서 하던 사람이 더 잘할 수밖에 없다더라는 구조적 한계까지 있었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라디오PD는 방송국마다 1년에 많아야 2명 뽑고, TV PD는 뽑아도 라디오PD는 안 뽑는 해도 더러 있다고 했다.
한창 졸업을 앞둔 2009년, 첫 시험을 준비하던 내게 첫 번째 시련이 닥쳤다. 공영방송과 공영방송에 준하는 방송국 모두, 당시 정권과 정면충돌한 것이다. 아, 나는 라디오PD가 될 수만 있다면 4대강 사업을 강물이 마를 때까지 찬양할 수도 있었고, 광우병 시위대의 맨 앞에 서있을 수도 있을 만큼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놈의 정치가 결국 방송국 파업 사태를 일으켜 라디오PD 채용 자체를 무산시켜 버렸다.
그나마 예능PD를 뽑는다는 곳에서 요행으로 서류를 통과해 작문시험을 보기까지 했지만, 김태호, 나영석 같은 사람들이 날고 기는 곳에서 웃음에 대한 나의 재능은 너도 알고, 나도 알 만큼 형편 없었다. 결국 10년 넘는 숙원이었던 라디오PD의 꿈은 펼쳐 보지도 못한 채, 먹고사니즘의 압박으로 일반 기업에 취직하게 된다. (사실 이것도 감사한 일이지)
(2편에 계속)
(에필로그)
남들이 제 글 재미없다 해도, 제 기준에서는 나름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써오고 있는데요. 이 글은 써놓고 보니 그냥 40대 아재가 취뽀 못한 라떼 얘기라 메타인지 빡세게 돌려보면 안 재밌는 거 같은데......
그래도 제가 라디오PD 떨어진 이유를 궁금해하셨던 동료 작가님이 "무려" 두 분이나 계셨기에 써봤습니다. 근데 진짜 이렇게 꼰대가 자기 꿈 접은 이야기, 한 두번도 아니고 안물안궁 아닌가요. 반응 보고 '도대체 라피 왜 떨어진 건데? 후속편 모어모어' 이런 댓글 10명 이상 되면 2편 쓰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내가 뭐라고 여러분들과 밀당을 하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래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