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마무 도르마무
1월 1일.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기 아름다운 날짜 아닌가.
하지만 반골기질이 다분한 나로선 꼭 1월 1일에만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하는 것인지 따져 묻게 된다. 뭔갈 다짐하려 새해 카운트다운(a.k.a. 보신각 타종)이나 첫 해돋이를 보러 어딘가를 찾는 일은 영 취향이 아니다. 24시간만 지나면 자정은 돌아오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는 법.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굳이 그날, 인파에 떠밀려 기 빨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아날로그로 이어지는 시간과 계절을 편의에 따라 디지털로 딱 자르는 건 OK. 그 숫자에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건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딘가에 애를 써야 한다면,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인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익히는 일" 말고는 없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은 아무런 힘이 들지 않으니, 딱 그 정도만큼만 애를 쓰련다.
이내 다시금, '어차피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닌데 1월 1일을 맞아서 뭔가 다잡아보면 좋은 거 아닌가' 생각을 바꿔본다. 나쁠 건 없지 않나. 10월 16일에도, 3월 27일에도 뭔가 나아지기 위한 결심은 하지 않을 텐데 1월 1일에 한 번 정도는 결심해 보는 것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아, 1월 1일에 결심하는 것 갖고도 이렇게 변덕스러운 걸 보면 올해도 뭔가를 하긴 글렀다.
그렇다.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한자성어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매년 새해가 되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관행적으로 다짐을 하건만, 말 그대로 3일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사안에 따라서는 한 달 정도 가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 엄청 대단한 의지라고 자랑할 수준이 못 되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결심과 관련해, 내가 잘하는 건 있다. 바로 삼일고개에서 매번 넘어지기다. 삼년고개 우화는 다들 알 것이다. 어떤 고개에서 한 번 넘어지면 3년밖에 못 살고 죽게 되는 저주 걸린 고개 이야기. 한 노인이 삼년고개에서 넘어져 몸져눕게 되지만, 매번 넘어지면 3년씩 수명이 늘어나니 장수할 수 있다는 손자의 조언을 듣고 열 번을 굴러 30년을 더 살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맞다. 나는 작심삼일을 N번 가진다. 결심을 어떻게 매일 지킨단 말인가. 딱 3일씩 지키고 조금 쉬었다가 다시 3일을 지키고, 또 쉬었다가 3일을 지킨다. 그렇게 삼일고개에서 매번 넘어지는 덕에 생각보다 끈기 있게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근거를 얻곤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몇 가지 다짐을 해본다. 개인적인 일은 일기에 쓰기로 하고, (일기를 쓰지는 않는다) 이 다짐들을 수시로 어길 예정이다. 단 한 가지 신경을 쓴다면 결심의 주기를 느슨하게 가져가지 않는 정도? 작심삼일하고, 석 달쯤 쉬었다가 다시 작심하는 일만은 없어야겠다.
혼자 생각하면 될 걸, 이 글을 굳이 쓴 이유는 혹여나 작심삼일에 그친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하는 글벗들이 있을까 염려해서다. 나 같은 사람은 3일을 작심하는 것도 참 힘들었다. 마음을 먹고, 3일 동안 수행했다면 칭찬받아 마땅하다. 술 마신 다음날 한 번쯤은 운동을 거르고, 곡기를 끊은 이들에게는 치팅데이 하루쯤 어떠한가. 12월 32일이든, 1월 1일이든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날 최대한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다.
참, 3년 고개에 쭉 누워 있다면 어떻게 될까. 3년 후에 죽든, 장수하든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나라면 그것보다는 빨리 털고 일어나 남은 3년을 알차게 보내고 다시 넘어지러 오는 선택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