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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하는 이유

by 담담댄스

몇 달째 살을 빼고자 출근 전, 매일 헬스장에 가서 30~40분 간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Exhausted)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다.


어렸을 땐 아침에 운동하면 하루 내내 매가리가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아침 운동만은 피해 왔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저녁 시간을 나혼자 운동에 할애하기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살은 쪄가고, 건강검진을 통해 알게 된 내 몸 곳곳의 적색 신호를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 도저히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생계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회사에서의 하루를 버티기 힘들었던 초반 한 달을 지나, 이제 어느 정도 몸이 적응을 했는지 숨이 헐떡일 만큼 운동을 해도 그럭저럭 버텨나간다. 최근 2년 간은 돼지인 채로 살아도 회사에서 큰 능률을 보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어차피 평가는 포기하고 건강을 좀 더 챙겨보기로 했다.


운동을 왜 하는 것일까. 당연히 살을 빼려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려고 하는 것이지. 그거 말고 좀 더 색다른 이유들이 있는 것 같다. 몇 가지는 다른 이들에게도 적용될 것이며, 몇 가지는 나만 갖는 생각일 듯하다. 그런데 정말로 운동, 너무 하기 싫지 않은가. 조금이나마 이색적인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싶어 몇 자 적어 본다.






1. 맛있는 걸 마음껏 먹으려고


빡세게 운동하고 몸매를 유지하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드는 이유다. 나 역시 먹는 즐거움을 놓을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도로 개고생해서 빼려면 왜 먹는 거야...
그냥 먹고 살찌든지, 아니면 안 먹고 운동 좀 덜하면 되지


세상 일이 어찌 합리와 효율만으로 정리되고 정의할 수 있겠는가. 효율과 합리를 기준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남긴 것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때로는 둘러 가고, 때로는 미련하게 기다리거나 반복하며 얻어내는, 그런 식으로 단련된 삶의 결과물들에 뿌듯함을 느끼고, 감동했다.


몸의 건강과 미식의 즐거움은 서로 간에 부둥켜 안기도 했다가, 싸우기도 하면서 오래오래 이어나갈 힘을 자가발전시켜 주는 것만 같다. 누군가는 어리석게 생각해도, 이런 어리석음으로 늙어 죽을 때까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삶이 있다면, 당장의 근육통과 가쁜 호흡은 어찌어찌 참아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2. 짜증 내지 않으려고


다른 부부들은 모르겠다. 우리 부부는 정말 자주 싸우는 편인데, 대부분의 원인은 누군가의 큰 잘못이나 실수가 아니다. 바로 '말' 한마디다. 예를 들자면


니가 좀 하면 안 돼? 왜 맨날 나만 해!

지금 그것 좀 했다고 유세 떨어?

회사에서 놀다 온 줄 알아? / 집에서 누워만 있는 줄 알아?


이런 식이다. 결혼을 안 해본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하는데 말을 왜 저렇게 밖에 못하나 싶겠지만,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시달리다 서로에게 다정하고 좋은 소리 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곧 곯아떨어질 것 같은 순간에도 한 걸음 더 떼야할 때가 반드시 있고, 서로가 던진 한 마디에 입맛도, 오만정도 떨어질 때가 생긴다.


지난한 다툼 끝에 내가 얻은 결론은 인성이 아닌 체력이었다. 정말 나는 션이나 최수종도 분명히 부부싸움을 한 적 있다에 내 전 재산을 걸어 보겠다.(돈이야 사지멀쩡하면 얼마든지 다시 벌면 되지) 그리고 한 번도 싸워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션과 최수종의 체력이 남다른 편으로 치부하겠다.


혀보다 엉덩이가 반응하면 확실히 다툼이 잦아든다. 반대로 체력이 떨어지면 잘 참았다가도 별 것 아닌 말에 확 짜증이 나버린다. 물론 아침 운동을 시작했을 당시에만 해도 짜증이 더욱 심해졌지만, 적응하다 보니 머리보다 엉덩이가 먼저 반응한 적이 늘어났다. 그리고 다툼도 확실히 잦아든 것 같다.


영감의 원천은 돈이고, 멘탈의 근간은 체력이다.



3. 내가 죽으면 우리 식구는 누가 챙기나


이런 쌍팔년도 마인드가 현존하나 싶겠지만, 사실이다. 나의 건강은 일종의 의무감이자 부채(에서 비롯한) 의식과 직결돼 있다.


그렇게 애처롭게 봐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생계형이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들과 좀 더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것이다. 운동과 상관없는 병환이나 갑작스런 쇼크에는 대처할 수 없겠지만 잘 관리하고 컨트롤하며 유지할 수 있는 건강에는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우리 아들이 결혼하지 않는다면 대학교 갈 때까지만, 딩크(DINK)나 싱크(SINK)로 산다면 결혼할 때까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손주를 볼 때까지만이라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나의 부재로 가족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짐을 떠안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지금 요란하고도 유난스레 내 건강을 챙기려고 한다.


팔자라면 어떠한가. 나의 지금은 지금까지의 내 모든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의 증거다.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고의 삶을 살고 있으니, 누구도 원망해 본 적 없다. 이것이 나의 삶임을 받아들일 수 있음에 행복하다. 한 번도 운동이 즐거웠던 적이 없었는데 이런 오버스런 생각을 할 때면 조금은 즐겁기도 했던 것 같다.



4. 글을 잘 쓰려고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을 땐, 다들 그렇듯 남의 돈으로 책을 내는 꿈을 꾸었다. 자기소개란에 '회사원'이라고 적었지만 언젠간 '출간작가'로 바뀌길 고대하며 브런치에 입성했다.


(코빠지는 소리 또해서 죄송하지만) 내 글이 그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선연히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는 행위를 멈출 생각은 쉽게 들지 않는다. 누군가의 '좋아요' 한 번, '좋은 글이네요' 한 마디가 마약처럼 타자기와 모니터 앞으로 달려들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글을 쓰는 내가 살면서 제일 괜찮은 것 같다. 그 나르시시즘에만은 메타인지가 적용되지 않는다.


얼마 전의 일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었는데, 전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숙취로 잠까지 설쳐버려 운동은커녕 기력을 되찾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시간이 없지는 않았고 소재도 있었지만, 내 몸은 의지와 별개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머물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왔다.


술을 조금만 먹었다면 잠을 설치지도, 운동으로 정신을 깨웠다면 스스로를 한탄하며 늘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방탕한 습관과 술기운은 예술혼과 잠깐의 영감을 제공할지 모르겠지만, 언제 봐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남길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글은 내 삶의 모토와 닿아있는 것만 같다. 언제부턴가 나는 '재미없는 삶의 재미'를 경험하고, 추구하기 시작했다. 단순함이 주는 동기부여, 루틴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행복함, 이런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고 슴슴한 재미를 알기 시작했다. 오늘의 글은 추구미만큼이나 슴슴하고 노잼이리라.


하지만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라도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이렇게 슴슴한 삶을 살아야 가끔 있는 이벤트들이 정말로 재밌을 수 있더라고. 유기농 저속노화 인생에도 가끔씩 MSG 가득한 음식을 먹어줘야 생기가 도는 것처럼, 이따금의 음주가무를 만끽하려면 단조로운 삶을 견뎌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런데 음주가무도 운동을 하고 했더니 훨씬 잘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ㅋㅋㅋㅋ)


Just do it


글쓰기도, 운동도 그냥 시작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호흡을 잡고 탄력이 붙어 쭉 가게 된다. 글쓰기의 결과물인 내 글도, 운동의 결과물인 내 몸뚱아리도 영 마뜩잖지만 과정의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것들이 있다. 다행인 것은 오늘의 글은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오랜만에 스스로 만족하는 그런 결과물인 것 같아 뿌듯하다. 마치 운동을 마치고 거울 앞에선 나처럼 말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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