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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도둑

by 담담댄스

단언컨대 인스타그램보다 싸이월드가 훨씬 재밌었다.


개중 방문자 이벤트라는 것이 있었다. 예를 들면 N번째 방문자에게 팝업창을 띄우면서 소소한 선물을 걸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던 그런 식이다. 지금에야 코딩을 하든, 프로그램을 쓰든 웬만한 SNS에서 누가 방문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당시엔 그런 게 있을 리 있나. 혹시나 누가 나를 마음에 두고 몰래몰래 내 미니홈피를 찾지 않을까. 진짜 어처구니없어서 욕밖에 안 나오는,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빠져있었다.


어휴, 저 인터넷 익스플로러 UI도 참 ㅋㅋ


그 망상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방문자 추세를 감안해 오늘밤새 누군가는 걸리겠지 치밀하게 계산하여, 방문자 이벤트를 걸어놓고 잠이 들었다.


보잘것없는 저만의 공간에 들러주셔서 감사해요 :)
언제 시간 될 때 아침햇살 한 병 어때요?


그녀가 아닐까. 두근두근.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일어나자마자 PC를 켰다. 다들 짐작했겠지만 이벤트 당첨자는 시꺼멓게 생긴 동기 남자놈이었다. (서양미술사 수업을 같이 들었던 그 동기 녀석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ㅄ아 누굴 기대하고 한 거야? 아침햇살?! 우웩.

학관에서 밥이나 사, 이런 거 그냥 넘어가면 재수 없다


조롱도 조롱도, 그런 능욕이 없었다. 아오, 반대였다면 나 역시 그랬겠지. 휴...


무튼 그 흔했던 커플 다이어리, 커플 미니미 한 번 못해봤건만, 나의 제대로 된 연애보다 훨씬 앞서 싸이월드는 찬란한 빛을 잃어갔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미니홈피 BGM만은 늘 신경 써서 선곡했고, 도토리를 아끼지 않았다. 라디오PD 지망생이라는 명분으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들의 선곡표를 뒤지고 뒤져 무드 있는 노래들만 엄선해 두었다. POP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무드에 어울린다면 리스트에 담았다. 그렇게 나같지만 나같지 않았던 싸이월드 미니홈피 BGM이 그리워지는, 그런 날이다.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 Inger Marie (2004)



미국의 R&B 걸그룹 더 셔렐스(The Shirelles)의 1960년 발표곡 <Will you still love me>를 리메이크한 곡이다. 원곡의 정서는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몽글하고 로맨틱한(원곡 역시 발매당시엔 그러했겠지만) 무드로 다시 부른 이 노래. 새벽에 이 노래를 틀어놓고 일촌공개로 다이어리를 쓸 때면 없던 여자친구도 나타날 것만 같은 그런 노래였다. 그래도 안 생겼다.



(You are) more than paradise - Port of notes (1999)



이 노래의 원곡자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안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노래 가사에 일어가 없고, 발음마저 너무 좋아서?) 아마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을 것이고, 듣자마자 '이거다!' 싶어 도토리로 지른 것 같다.


장르만으로 끌리는 음악이 있다면 아마 보사노바일 것이다. 웬만한 보사노바 노래는 딱히 불호가 없었던 듯하다. 보사노바 특유의 애잔하고도 리듬감 있는 무드, 거기에 더해진 차분하고도 담담한 보컬이 마음속 멜랑콜리를 헤집어 놓는 노래다.



Clean & Dirty - HARVARD (2003)



21세기 이지리스닝의 대명사, 시부야케이. 저 옛날 인기를 끌었던 시티 팝의 정서에 펑크, 전자음악에 재즈와 보사노바 등이 결합돼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일본풍 이지리스닝 음악을 통칭하는 말. 시부야케이는 사실 특정 장르라 보기 어렵고, 시대적인 구분에 적합한 말이 아닌가 싶다.


그 시부야케이의 대명사 하면 m-flo, Nujabes, FreeTEMPO, DAISHI DANCE 등 많은 뮤지션들이 있지만 대표곡 하나로 우리나라를 평정했던 HARVARD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이 <Clean & Dirty>는 앞서 소개한 <more than paradise>처럼 모든 가사가 영어로 돼 있지만, 듣자마자 일본 가수가 불렀는지 알겠는... 노래다.



Can't fight the moonlight - LeAnn Rimes (2000)



스토리로 기억되는 영화가 있고, 바이브로 기억되는 영화가 있다. 내게 「코요테 어글리」는 정확히 바이브로 기억되는 영화다. 아마 어떤 뮤지션 지망생이 돈이 없어서 섹시댄스(?)를 추고 팁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꿈도, 사랑도 찾는다는 그런 이야기였던 거 같은데......


OST <Can't fight the moonlight> 역시 영화 줄거리가 곧 뮤직비디오처럼 기억되는 노래다. 바에 올라 당당히 춤을 추던 그녀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이 노래는 이 영화 그 자체를 상징한다.






종잡을 수 없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BGM 때문이었을까. 커플 미니홈피는 해보지 못했지만 K-POP만 들어오는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다양성과 무드를 불어넣어 주었던 이 노래들을 오랜만에 듣고 싶은 그런 날.


같이 들어요. 아침햇살 한 병과 함께 :)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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