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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바빨간 맛, 궁금해 혀님

by 담담댄스

떡볶이 다음으로 좋아하는 음식은 곱창볶음이다.

(이 쯤되면 눈치채셨으려나? 웬만한 빨간 맛은 다 좋아한다고 보시면 된다.)


화사가 먹어서 유명해진 곱창구이는 결코 아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곱창은 돼지곱창이다. 화사가 먹은 곱창은 소곱창으로, 곱이라 불리는 건더기가 들어가 있는 곱창구이다. 보통 소곱창은 구이로 먹거나 전골로 먹는 편이다.


<나 혼자 산다> 캡처화면 2018. MBC All rights reserved


내가 좋아하는 곱창은 돼지곱창인데 주로 야채와 고춧가루 양념을 더해 볶아서 먹는다. 소곱창보다 돼지곱창의 비린내를 제거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데다 완벽히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갖은양념을 더해 매콤하게 볶아 먹는 것이다.


이러한 곱창볶음의 유형은 다시 두 가지로 나눠지는데, 각각을 왕십리 스타일과 신림동 스타일로 명명한다.



1. 왕십리 스타일_곱창순대볶음


이 스타일의 곱창볶음을 동대문으로 부를까, 왕십리로 부를까 고민했다. 이런 스타일의 곱창볶음을 개인적으로 처음 접한 곳이 동대문이었던 영향에서다. 중, 고등학생 때 동대문 시장에 가면 늘어선 포장마차 골목에서 곱창볶음을 자주 먹었다. 다만, 동대문에서도 왕십리를 상호명에 쓸 정도라 원조는 왕십리에 있다 여기며 왕십리 스타일로 이름 붙여 본다.


동대문 포장마차에서의 곱창볶음(출처_쥬르날의 에피소드)


이 음식의 메인 재료는 단연 돼지곱창이다. 순대는 경우에 따라 넣기도, 안 넣기도 하는데 순대도 무척 사랑하는 나는 웬만하면 순대도 같이 먹는다. 즉, 곱창순대볶음을 먹는 것이다. 거기에 고춧가루 베이스의 다대기와 깻잎, 양배추가 들어간다. 동대문 포장마차에서는 들깨가루가 좀 들어갔던 것 같은데, 이후에 배달음식으로 시켜 먹었을 때는 들깨가루를 넣지 않는 곳도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당면 사리다. 당면은 식어도 잘 불지 않고 식감에도 큰 차이가 없어서, 곱창볶음이 배달음식으로도 손색이 없도록 하는 데 일등공신이다. 솔직히 떡볶이는 어디서도 접할 수 있는 음식이지만 이 음식은 동네마다 한 두 곳 있을까 말까 하기도 하고, 변별력 높은 음식이라 잘하는 곳도 드물다. 하여 최근 거의 떡볶이를 위협하는 내 최애 음식이다. 다만 나이 들어감에 따라 감퇴되는 소화능력으로 부담스러운 음식이긴 하다. 그래도 밤이 되면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음식이다.



2. 신림동 스타일_순대곱창볶음


같은 음식 아니냐는 오해를 할 수도 있지만 천만에, 완전 다른 음식이다. 사실 이 음식은 어렸을 적 우리 엄마가 장사를 하기도 한 음식이라 나름 조예가 깊다. 이 음식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신림동이다.



신림동 4번 출구를 지나다 보면 작은 골목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건물 통째로 모두 순대볶음을 파는 신박한 곳이 등장한다.



보통 나는 2층을 좋아하는데,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어딜 가든 치열하다 못해 절박한 호객행위 한 사발을 들이켜야만 한다. 오빠, 삼촌, 총각, 학생~ 온갖 호칭을 부르는 소리를 뚫고 정말 내리자마자 마음먹은 곳으로 가서 앉아야 한다.



어딜 가나 맛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한 곳에 앉으면 삶은 간을 반찬으로 내오며 주문을 받는다. 이곳에서는 순대가 메인이다. 그래서 왕십리 스타일에는 없는 메뉴가 있다. 바로 백순대다.


우선 조리방법부터 왕십리 스타일과 몹시 다르다. 왕십리는 곱창을 먼저 볶다가 고춧가루 다대기와 함께 야채, 당면을 볶아 나간다. (익는 순서를 감안한 것이다.) 하지만 신림동 스타일의 순대볶음은 순대, 깻잎, 양배추, 들깨가루 등 모든 재료를 쟁반에 담아와서 한껏 달궈진 불판에 올려 함께 볶는다. 백순대는 고춧가루 양념이 들어 있지 않은 볶음 스타일인데, 요리가 다 되면 가운데를 비워 단무지 위에 양념장 그릇을 올려둔다. 쌈채소에 백순대와 양념장을 올리고 싸먹는 스타일로 먹는다. (물론 그냥 양념장만 찍어먹어도 된다.)


신림동 스타일의 백순대


물론 곱창을 같이 주문할 수 있지만 결코 메인이 아니다. 실제 이곳에서 나오는 곱창은 왕십리 스타일의 곱창에 비해 작고 덜 질기며 주름이 많이 져있다. 오소리감투 같은데 무튼 내가 아는 돼지곱창과는 비슷하나 확연히 다르다.그래서 이 메뉴를 굳이 순대곱창볶음이라 명명한 것이다.


무엇보다 왕십리 스타일의 곱창순대볶음과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신림동 스타일은 당면을 쓰지 않고 '쫄면'을 쓴다는 점이다. 쫄면은 뜨거울 때 먹으면 당면에 비해 훨씬 쫄깃하고 고소하다. 다만 식었을 때 굳어버려 배달음식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신림동에 가도 백순대를 먹지 않고 양념순대를 먹는다. 상대적으로 양념의 촉촉함때문인지 쫄면이 덜 굳는다. 하지만 같은 양념볶음을 먹을 것이라면 집에서 곱창순대볶음을 시켜먹는 쪽을 택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곱창순대볶음을 순대곱창볶음보다 훨씬 좋아한다. 재료를 따로 볶아서 재료마다 불향이 밴 양념의 밸런스를 오롯이 느낄 수 있고, 훨씬 맛있게 매콤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엄마가 해준 순대곱창볶음보다 웬만한 순대곱창볶음은 다 맛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장사를 접으셔서 더 이상 엄마가 해준 순대곱창볶음을 먹을 수 없다. 아쉽게도 신림동 어딜 가도 엄마의 맛을 내는 곳은 없었다. (우리 엄마가 MSG를 많이 써서 그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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