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OOO을 들어야지

03_김광진

by 담담댄스

신비주의. 요즘에는 약발이 떨어진 듯도 보이지만 나는 어느 정도 전략적으로 신비주의를 활용한다면 음원 시장에서 꽤나 경쟁력을 발휘할 거라 생각한다.


이 신비주의를 못해 아이러니하게도 어마어마한 실력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보컬리스트를 꼽아보자면 단연 김범수와 박정현이다. 거장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이 두 보컬리스트는 매스컴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경연 또는 버스킹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해 귀하디 귀한 목소리와 가창력을 흔하게 소모시켜 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자신의 추구미가 담긴 신곡이나 신보가 주목받지 못하고, 자신의 옛 유행곡이나 커버곡에 잡아먹혀 버리고 만 게 아닐까 싶다.


김나박이 중에서 김과 달리 나박('이'는 의도한 신비주의인지는 잘 모르겠다;;)은 김에 비해 신비주의의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 사실 신비주의란 게 별것이 없다. 간간이 음반이나 음원만 내고 방송활동을 하지 않으면 된다. 팬들은 공연으로 만나거나 아주 가끔 <10cm의 쓰담쓰담> 같은 데 나와주면 될 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비주의 가수들이 일부러 그걸 택한다기보다는 방송이 그저 부담스러워 그럴 것이다.


나는 이 가수 역시 신비주의를 지향하는 줄 알았다. <마법의 성>이라는 노래, 그것도 자신이 부른 버전보다 어린 미소년의 목소리를 빌어 대히트를 쳐서 그런지 한동안 실제 멤버가 누군지 알지 못했고,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와, 되게 높은 노래다


라는 정도의 인식만 존재했다.


이 모든 것이 선입견에 불과했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노장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이 보컬리스트는 형형색색의 아방가르드한 옷을 입고 자신의 처연한 발라드 넘버들을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면, 피드에는 자신이 부른 수많은 라이브 클립과 인급동 캡처, KBS <불후의 명곡> 출연 및 우승소식으로 업데이트가 쉴 새 없다.


대관절 이 형님은 왜 신비주의 재질도 아니면서 신비주의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인가. 추측컨대 본캐와 부캐가 헷갈릴 정도로 두 영역에서의 역량이 모두 출중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펀드매니징 같은.






김광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의 아름다운 노래보다 명곡 <편지>에 얽힌 사연이다. (이 글은 애초에 뮤직드라마로 쓰일 뻔했다. <편지>에 담긴 러브스토리가 너무 찡하고 아름다워서. 하지만 앞뒤로 지어내야만 하는 통속적인 전개를 견딜 수 없어 에세이 쪽으로 방향을 수정하고 말았다 ㅠㅠ)


<편지>의 작사가는 그의 아내 허승경. 하지만 <편지> 노랫말에 등장하는 '하오체'는 남성향 어투에 가까워 의문스럽다. 사연인즉슨, 의사 집안에서 자라 유복하니 공부도 잘해 연세대학교 경영학과까지 입학했지만 아 글쎄, 김광진이 음악인의 길에 뜻을 두었던 것이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허승경의 부모는 앞길이 막막한 김광진을 탐탁지 않아 했고, 결국 허승경은 부모의 주선으로 선을 보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김광진은 너무 빡쳐서 그 맞선남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이 남자가 괜찮아도 너무 괜찮았던 거다. 하는 수 없이 여자친구를 보내줘야겠다 싶었는데, 또 허승경은 맞선남은 자기가 아니어도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겠지만, 김광진은 안 될 것 같다(?)는 측은지심으로 ㅋㅋ 결국 김광진을 선택했다고 한다.

맞선남은 결국 허승경이 김광진을 선택한 것을 알고서는 따로 김광진을 불러내 허승경에게 보내는 편지 한 장을 건네고 홀연히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그 편지가 바로 <편지>의 원문이다.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이 노래는 이 한 줄로 다했다. 단념 후(정확히는 고백 후 1 차임)의 정서를 오롯이 느끼고플 때면 이 노래를 듣는다. 웬만한 삶의 굴곡에서도 어느 정도 통용되는 구절이기도 하다.


내 뜻과 어긋난 인연에 연연할 필요 없다.
그것은 서로에게 괴로움이자 괴롭힘이다.





더 클래식 시절의 명곡을 딱 하나 꼽으라면 <마법의 성> 말고 단연 이 노래다.



2집 수록곡 <여우야(女雨夜)>는 Fox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제목의 뜻은 '비 오는 밤의 여인'으로, 어찌 보면 트로트 넘버에 더 어울리는 것만 같다. 1집의 메가히트쏭 <마법의 성>과는 완전히 다른 무드로, 좀 더 팝에 가까운 이 노래는 김광진이라는 보컬리스트의 존재감을 각인시켜 준 노래다.



사실 김광진의 보컬은 처연하기 이를 데 없어 발라드와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 마이너 풍의 코드 전개와 묘하게 어울리는 비트감 있는 노래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지금 소개할 이 노래가 오디션과 경연곡에서 단골 커버곡으로 활용되는 것은 워낙 담백하게 부르는 원작자의 톤에서 전해지는 다양한 색감과 질감의 감흥과 정취를 마음껏 재해석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성시경 유튜브에 나온 김광진은 자신 역시 보컬 레슨을 받고 있다며 트렌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보컬 선생님이 요즘 친구들에게 본인(김광진) 같이 부르라고 했다고, 오히려 그게 더 어렵다고 하더란다. 십분 동의한다. 저음에서나 고음에서나 담담하면서도 깨끗하게 올라가는 보컬은 오히려 리스너들 입장에서 다채로운 감정의 파고를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비기(秘技)와도 같다.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천부적인 재능이자 득도의 경지다.


사실 이 글은 눈이 오면 발행하려고 기다렸는데, 꽤나 오래 내리지 않았다. 마침내 오늘, 오랜만에 서울 하늘에 눈이 찔끔 나렸다. 설 연휴가 지나면 우리를 괴롭혀온 혹한도 안녕이란다. 그래도 나는 애매하게 춥거나 더운 것보다는 확실하게 춥고 더운 날씨가 좋더라. 이런 추위도 몹시 기다려질 날이 있겠지.


이 글의 마무리는 끝끝내 참아온, 그의 패션욕구가 투영된 라이브 클립으로 갈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