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CO is everytime, everywhere
5세대 아이돌의 전유물이 된 연말 음악 시상식을 챙겨본 것도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를 통해 매해 주요 무대들은 꼬박꼬박 챙겨 본다. 올해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익숙하지만 늘 새로운 나의 아이돌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 그 중심엔 G(D)와 J(ay Park)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G는 실망스러웠다. 모든 무대를 AR로 채우고, 간간이 치는 더블링조차 화음인지 멈블링인지 모를 수준. 그동안 목을 너무 혹사시킨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어 안타까웠으나 결국 무대에서 증명해야 하는 삶이 아티스트의 숙명이라면 이번 무대 한정, G는 증명하지 못했다.
최근 데뷔한 LNGSHOT 프로듀서로 암약하느라 잠잠했던 J는 건재함을 알렸다. 무대 중간, 최근 유튜브에서 히트했던 트로트 버전의 몸매까지 애드리브로 부르는 등 이 끼를 어떻게 감추고 살았나 싶을 만큼 퐈끈한 무대를 보여줬다.
심지어 J는 자신의 무대를 할애해 댄싱팀 HOLY BANG과 MVP, 이전 식구였던 H1GHR MUSIC, 함께 음방을 뛰었던 우주소녀 출신의 솔로 여가수 다영, 자신이 프로듀싱한 첫 아이돌 LNGSHOT이 돋보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마음 씀씀이는 형님 리더십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Z를 좋아하는 것은 최소한의 공백으로(성실성) 언제나 참신한 것(창의성)을 들고 나오기 때문이다. Z를 따라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트렌디함을 담보하는 것과 다름없다. K-POP의 테두리 안에서 힙합을 다양한 장르와 매시업하며 변주해 왔던 G와 꾸준히 본류와 트렌드를 간직하면서 히팝을 케이팝 안으로 기어코 끌어들였던 J 사이에서, Z는 늘 힙합을 K-POP의 다양한 가능성 안에서 비중을 조절해 가며, 가장 듣기 좋고 따라부르고 싶은 창작물을 끊임없이 대중에게 선보였다.
이런 유연함이 Z를 아이코닉(Iconic)한 G와 J를 팔로우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러닉(Ironic)을 초래하지만,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음원시장 최고의 키맨으로서, G와 J에 앞서 있는 실질적 1인자의 위치로 끌어올린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Z야말로 꾸준히 「쇼미더머니」 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듀서로 수많은 명곡을 만들고, 많은 래퍼들을 저작권 부자로 만들어 준 힙합 외골수라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그는 「쇼미더머니」 새 시즌의 프로듀서로 또 한 번 발탁됐다)
내가 Z를 참말로 좋아하는 첫 이유를 꼽자면, 단연 펀치라인이다. 잠시 음탕댄스로서, 20대 시절 Z의 혈기왕성함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 났던 몇몇 펀치라인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이런 이야기가 싫은 분들은 스크롤을 휙휙 내려주시라.
아무 부끄럼 없이 나의 자질을 보여줬지
- <Okey Dokey> (2016) 中
난 광주출신 아니지만 전라도 환영
넌 겨울해 밤도 안 됐는데 자꾸만 지려해
- <OASIS> (2015) 中
I'm intoxicated 남여남여 나눠 착석해
음탕한 게임 하더라도 밖에선 입 단속해
- <Boys and Girls> (2015) 중
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
자, 빠르게 스크롤을 내린 분들, 그리고 꼼꼼히 읽어 내려간 분들 모두 환영한다. 이제 Z의 펀치라인 정수가 담긴 노래 두 곡을 소개하려고 한다. 괜히 세종대왕 타투를 한 게 아니다.
난 wassup처럼 유명한 인사가 됐어
수면을 포기해야 수면 위로 떠
늘어나는 세 자릿수 콤마,
난 버는 만큼 회계해 은행에서 고해성사
I bought a new monclear for my 엄마
마세라티는 처분했고 포르셰를 몰아
Imma get on this tv mama
그랬던 애가 마마에서 서태지의 부름 받아
최연소 심사위원 show me the money 4
I'm the king of the 3rd generation I'm 24
- <VENI VIDI VICI> (2015) 中
너흰 그냥 보통, 우린 보통이 아니야
본토같이 못할 거면 나를 본떠
What the fuck, 넌 항로를 잘못 들었어
후회할 거야 내 수중에 온 걸
난 물 들어올 때 계속 노 저어
Blue ocean에서 마저 허우적대는
맥주병들 거품 가라앉는 와중에도
차트 위 거뜬히 살아남은 거북선
창의성은 보물섬, 떨어지는 포물선들
이게 마지노선이야 너로선
무차별적인 삿대질 덕에
난 쉽게 주목을 받았고
무심코 너희가 던진 돌에
날 두른 편견이 깨져 나갔어
난 연봉을 여의봉이라고 발음해
마음만 먹으면 쭉 늘어나기에
- <거북선 Remix> (2015) 中
'무차별적인 삿대질 덕에 난 쉽게 주목을 받았고, 무심코 너희가 던진 돌에 날 두른 편견이 깨져 나갔어'는 단순히 펀치라인을 넘어, 어떤 삶의 통찰을 전한다.
나는 Z가 무척이나 영리한 뮤지션이자 프로듀서라고 생각한다. 혹시 코로나 시대의 음악을 기억하는가. 내게 코로나 시대의 음악을 묻는다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아무노래>라고 답할 것이다. 음방, 팬싸, 행사 등 오프라인 프로모션의 기회가 박탈된 상황에서 Z는 이전의 무드와는 완전히 다른 야심작 <아무노래>를 내놓기에 이른다. Z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혜안을 발휘하는데...... 그것은 바로 '챌린지'였다.
빡센 래핑에서 이지(Easy)한 바이브의 멜로디 라인과 쉽고 중독적인 안무로 자신이 구축한 패러다임을 과감히 혁신한 이 노래가 하필 코로나를 만나버렸다. 그러자 Z는 당시 유행하던 틱톡 같은 숏폼 기반의 SNS 채널에, 갖춰지지 않은 대기실 같은 곳에서 세로폼의 폰카로 대충 찍은 듯한 화사와의 합동 안무를 올려본다. 이것이 지금은 너무 유명해서 식상해져 버린 '챌린지' 문화의 서막이다.
챌린지로 대박을 친 <아무노래>는 청룡영화제 무대에서의 고경표와 김신영의 헌신으로 더 큰 바이럴에 성공하며 코로나 시대를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 잡는다. 이후 <아무노래>의 무드를 계승해, 스맨파 최고의 히트작 <쌔삥>을 거쳐 2024년 최고의 음원인 <SPOT!>으로 Z는 블락비 시절부터 무려 10년이나 넘게 해 먹는다.
*오늘의 TMI _ 담담댄스는 「전국노래자랑」 예선에서 <SPOT!>을 불러 1차 예심을 통과했다고 한다.
최근의 Z는 J-POP에 꽂힌 것 같다. K-POP의 슈퍼스타들이 앞다투어 미국으로 향할 때, Z는 유난스럽게도 일본으로 향했다. 역시 스마트하다.
1960년대 미국 빌보드를 공습한 비틀즈를 필두로 이른바 British Invasion이 있었다면, 나는 2000년대 초중반 한국을 점령했던 시부야케이(Shibuya-kei)야 말로 Japanese Invasion이 아니었던가 소심하게 외쳐본다. Z 역시 당시 이 Japanese Invasion에 제대로 꽂힌 것이 아닌가 싶다.
올해의 Z는 m-flo와의 협업으로 <EKO EKO>를 발표했고, 급기야 이 시대 J-POP 최고의 슈퍼스타 '요아소비'의 보컬 이쿠라와의 듀엣곡 <DUET>을 내놓았다. 와, 이 사운드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Z는 늘 참신한 것을 내놓는데, 그게 어쩜 이렇게 좋을까 싶어서. 발을 비틀며 손을 번갈아 들어 올리는 안무 역시 중독적이다.
내년부터 작심삼일할 일본어 공부의 당면한 과제이자 목적은 이 노래를 혼자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을 만큼 노랫말을 완벽히 익히는 거다. Z의 넘버들은 어떤 것이든, 노래방에서 내 나이를 잠시 잊게 만들어 주는 치트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