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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Jul 30. 2024

믿지 말기로 해*

오늘 다룰 글과 전혀 상관없지만, 노래 한 곡 듣고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이 노래를 맨 처음 만들고 부른 것은 김현철과 장필순이다. 이후, 이소라-이문세, 성시경-권진아가 리메이크했지만, 아무래도 이소라를 워낙 좋아하는 나이기에 이소라와 이문세의 버전이 가장 듣기 좋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회사는 사람을 많이 바꾸어 놓는다. 14년에 이르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바뀌지 않았다면 이런 글을 적을 수 있었을까. 좋은 것은 좋은 대로, 안 좋은 것은 반면교사 삼아 직장인 담담댄스는 지금의 생계형 인간으로 남았다.


그중 직장인으로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저는 회사에서 그 누구도 믿지 않게 됐습니다






회사생활 3년 차, 지금까지의 직장생활을 통틀어 가장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첫 팀에서는 팀장님의 미움을 받아 스스로를 못났다고 가스라이팅하기 일쑤였다. 가뜩이나 첫 사회생활, 원래 좋지 않은 멘탈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어엿비 여긴 같은 팀 차장님이 결국 새 팀을 꾸려나가면서 대리 T/O 하나를 사원인 내게 할당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 차장님, 아니 팀장님은 인품에서도, 능력에서도 배울 점이 무척 많았다. 나의 적성과 역량에 맞는 일을 맡을 수 있도록 최대한 애써주셨고, 그분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자 대리 1인분의 몫을 소화해 내려 열심히 일했다. 그러면서도 절대적인 업무량은 많지 않았고, 부하 직원들을 스스럼없이 대해 주시는 팀장님 덕에 팀 분위기도 역대급으로 화기애애했다.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는 즐거워 보이는 팀을 일이 없어 노는 팀으로 간주하기 십상이고, 사정이 나빠지면 돈쓰는 팀에 가장 먼저 손을 대기 시작한다. 냉정히 당시 근무하던 팀은 회사 안에서 ‘조직’으로서 꼭 있어야 하는 팀은 아니었다. 조직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담당 업무에 따라 다른 부서와 통폐합될 것이라는 소문이 지배적이었다.


말은 실제보다 언제나 빠르다. 가끔은 말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지 않나 싶을 때도 있다. 팀 분위기는 흉흉해졌고, 동료들은 어느 팀으로 가게 될지 스스로의 운명을 점쳐보기도 했다. 이런 수군거림은 이내 소문으로 번졌다.


관심 없는 척했지만 나는 담당 업무를 들고 당시 팀장님이 이동하는 팀으로 발령이 날 것이라는 소문이 지배적이었다. 그 소문이 맞다면 팀이 없어지지만 팀장님이 다른 팀의 팀장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때문인지 부러움과 질투가 절묘히 섞인 말의 가시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새로운 조직 개편을 하루 앞두고, 팀장님은 전 팀원을 대상으로 면담을 실시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아쉬운 성토의 장이 되겠지만, 나는 1분이면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결말은 기대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미안하게 됐다


나는 팀장님이 옮기는 팀으로 갈 수 없게 됐다는 통보였다. 팀장님 본인은 강력하게 나와 함께 이동할 것을 주장했지만 당시 실장님이 제동을 걸었다고 했다. 사원 말년차에서 대리 초년차의 남자는 가장 열심히, 많이 일할 때라는 근거 없는 경험담을 들먹이면서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장님이 내가 신입사원 때 발령받은, 나를 못살게 군 팀장이 있는 팀으로 되돌아갈 뻔한 것만은 막아주었다는 생색도 냈다고 했다.


그로부터 한 달간, 겉으로는 괜찮다 했지만 팀장님을 몹시 원망했다. 새로운 팀에서 맡은 일이 버거우면 버거울수록, 왜 나를 이끌어주지 않았는지 답답해했다. 당시 내 표정이 얼마나 썩어 있었는지, 참다못한 팀 후배가 내게


선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에요


일갈하기도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내 깨달았다. 팀장님은 내게 새로운 팀으로의 동행을 한 번도 확언한 적이 없다. 오히려 최선의 결과를 위해 끝까지 힘써주신 분이다. 결국, 내가 믿은 것은 팀장님이 아니라 소문이었다.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는 소문을 덜컥 믿고선 애꿎은 사람을 원망해 버렸다.


설령, 팀장님이 내게 같이 갈 것을 보장했다가 일이 틀어졌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랬다 한들, 팀장님이 나를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을 테고, 윗선에서의 결정에 대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회사는 인연도, 쓸모도 아닌 오로지 의사결정자의 편의대로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곳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나말고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


지금은 그때의 일이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회사에서 내 맘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깨달음 덕분에 나는 이직에 나섰고, 다양한 회사를 경험하면서 직장인으로서 어떤 틀을 깨고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 팀장님이 나중에 다른 회사에서 나를 끌어주시기도 했고, 다른 직장에 다니는 지금도 그 분과 무척 잘 지내고 있다.


회사에서 누군가 '나만 믿고 따르라'는 달콤한 유혹의 말을 건넨다면, 그런 사람만 골라서 믿지 않으면 된다. 혹시 홀라당 넘어갈 것 같으면, 이소라와 이문세의 절절한 목소리를 떠올리기 바란다.


우리 사람을 우리 사람을
우리 사람을 우리 사람을 믿지 말기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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