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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Jun 10. 2024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신입사원 채용 후기

한국인의 종특 중 하나로 오지랖을 든다면 대부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크든 작든 자신이 경험한 성공에 얼마나 취해있는지, 그것이 대단한 일인 양 자랑을 하는 것마저 모자라 '저러면 안 된다, 이렇게 해야 한다' 깜빡이 없이 훅 들어오는 오지랖이 나는 너무 싫다.


관심은 주지도, 받지도 말자


누가 내 인생에 개입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이의 삶에도 끼어들고 싶지 않다. 물론 나도 한국인인지라 매일 '결제'를 올렸다고 메신저에 보고하는 동료를 볼 때나, 자신만의 패션 세계에 갇혀 주변인들의 안구를 테러하거나, 하다 못해 복사기 위에 누군가 놓고 간 핸드폰을 볼 때마다 나서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꾹 참을 때가 많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개입한다면, 그건 가만히 두었을 때 당사자는 물론 나에게도 큰 악영향이 예상되는 일이라거나, 상대방이 먼저 조언을 구할 때뿐일 것이다. 이따금 상사로부터 후배들을 좀 가르치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1. 내가 뭐라고 얘기를 하냐, 내가 팀장도 아니고 쟤들이 나보다 훨씬 잘났고 잘하는데.

2. 요즘 애들이 그런 거 좋아하기나 하나? 입 닫고 지갑이나 열랬다고, 지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냐면서 괜히 꼰대라고 욕만 먹지. 


결은 비슷하지만 양상이 다른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면서, 그냥' 알겠다'고만 하고 치워 버린다.


이런 내 인생 최고의 챌린지 중 하나가 바로 신입사원 채용이다. 인사(HR) 업무 담당자는 아니지만 나름 10년 차를 넘기며, 실무진 차원에서 많은 지원서류 검토와 면접을 경험해야만 했다. 정말 스트레스가 큰 일이다. 떨어뜨리는 입장에서는 다들 잘나고 똑똑한, 귀한 남의 집 자식들을 내가 무슨 자격으로 떨군단 말인가. 


그렇다고 붙이는 입장은 마냥 행복하냐, 그렇게 녹록지는 않다. 우리가 살면서 받는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어디서 오는가? 바로 회사다. 나의 잘못된(?) 선택이 한 인간의 삶을 구렁텅이로 내몰 수도 있는 셈이다. 오지랖 부리지 않겠다고 호들갑 떠는 모양새지만, 그 정도로 남의 인생에 끼어들기 싫다는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은 해야지. 어쩔 수 없이 올해부터 함께 일할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 서류 검토부터 면접, 인턴십까지 팀 내 담당자로서 작년 말에 임무를 수행했다. 몇 가지 특징과 느낀 점들을 공유하며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취준생에게는 좋은 조언이, 채용담당자에게는 공감과 레퍼런스가 되었으면 하는 오지랖을 부려본다. 






#서류전형


입사 전형 중에서, 물리적으로 제일 고된 일이었다. 지원자가 많다고 '우리 회사가 되게 좋은 회사인가 보다' 절대로 착각하면 안 된다. 나는 '요즘의 취업시장이 정말 얼어붙었구나' 체감하는 쪽으로 생각했다. 


정신적으로도 제일 고된 일이었다. 문항은 3개 정도로 많지 않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변별력을 떨어뜨리는 기제가 되기도 했다. 문항이 적다는 것은 지원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좋은 취지겠지만, 검토하는 입장에서는 소위 천편일률적인 지원서 안에서 원석을 발굴해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으로 귀결된다.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오랜 검토에 지쳐 관성적으로 진짜 좋은 인재를 넘겨버리는 것이었다. 변명하자면 진짜 어쩔 수 없는 일이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갓 대학을 졸업한 취준생이나 기존 회사의 3년 차 이내의 사원급에서 지원했을 텐데 경험의 편차가 얼마나 드라마틱하겠나. 나도 안다, 우리 회사가 그렇게 대단한 회사가 아니기에 꼭 여기에 들어오고 싶은 이유는 없다는 것을. 


진심으로 누군가


취업 시즌을 맞아 제가 뽑힐 것 같은 기업은 여기저기 다 넣어보고 있습니다. 이곳은 다른 기업에 비해 초봉 수준이 높고, 기업의 재무구조가 괜찮은 편이라 안정적으로 오래 다닐 수 있어서 지원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썼다면 100% 서류 합격시켰을 거다. 안타깝게도 이토록 솔직하게 용기 낸 지원자는 없었다. 당연한 거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미친 거지, 지원자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지원 동기는 회사 홈페이지나 포털 사이트 검색으로 알 수 있는 보도자료 내용을 기반으로 적었을 테고, 갈등을 경험하고 조율한 사례는 대체로 대학교 조별과제, 군대, 동아리 수준에서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모양새다. 결국 이 지점에서 쌩신입(취업 경력 없는 지원자)이 경력직 신입(현재 타기업 재직 중이거나 재직 경험이 있는 지원자)보다 무조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쌩신입에게 나름 어드밴티지를 주고 싶었던 나로서도 경험의 폭에 기인한 답변의 퀄리티를 보면 어쩔 수 없이 경력직 신입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결국 내용의 완성도나 독창성보다는 지엽적인 실수에서 당락이 가려지기 마련이다. 특히 다른 팀에 비해 직무 관련성이 높기 때문에 기본적인 고유명사나 맞춤법을 틀리는 경우는 물론, 주술 호응을 잘 맞추지 못하는 비문투성이의 문장을 보면 내용과 상관없이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걸 그냥 넘겼다간 일주일 내내 면접을 봐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또 한 가지 애석한 사실은 남자 지원자들이 상대적으로 글을 못 쓴다는 점이다. 몇 년 전부터 학업성취도가 여성에 많이 뒤진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아마 관련은 없겠지. 글을 잘 쓰는 것까지 바라지도 않지만, 기본적인 문법과 논리성은 물론, 문장력도 많이 미흡했다. 같은 남자라고 편드는 건 절대 아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결과가 몹시 안타까울 뿐이다.


다른 회사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철저히 출신 지역, 학교는 블라인드 처리를 했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사회생활 하면서 느낀 점은 학벌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공부만 했던 것처럼 보이는 지원자의 자소서는 단조로운 경험 탓에 이목을 끌지 못했고, 대학교 다니면서 이상한 짓 많이 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을 법한 지원자의 자소서는 몹시 흥미로웠다. 대체로 경험의 폭이 다양한 사람들이 일머리가 좋다. 이조차 선입견일지 몰라도, 일머리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그런 경험이 레퍼런스가 된다고 믿는다. 



#면접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면접관에 따른 취향과 성향의 차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나라면 떨어뜨릴 사람을 다른 사람이 붙였다는 식의 혼란을 최소화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인재를 뽑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우리 회사에서는 이걸 구조화 면접이라고 불렀는데, 다른 곳도 이런 표현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름 면접관 교육도 4일에 걸쳐 빡세게 했다. 


근데 면접 실전에 들어가면 애석하게도 그러한 노력들은 수포로 돌아간다. 대체로 답변의 퀄리티에 대해서는 면접관 사이에 큰 이견이 없는 편이다. 한 두 자리를 놓고 답변의 퀄리티가 비슷한 후보자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는 배제하려고 했던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렇다. 


우리 팀에 할당된 신입사원의 최종 T/O는 단 한 명이었다. 면접에서는 2명의 최종후보자를 뽑고자 했다. 면접관은 총 4명으로, 2명은 나와 우리 팀장님, 2명은 인사팀 담당자였다. 최종 2명 중 1명은 면접관 4명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했기에 쉽게 합격자로 올릴 수 있었다. 문제는 나머지 한 자리였다. 두 명의 지원자에 대해 면접관의 의견이 정확히 2:2로 갈린 것이었다. 


나와 인사팀 한 명이 밀었던 후보자는 최고득점자에 비해 경험이나 직무 전문성 측면에서 한 끗이 모자랐다. 하지만 나머지 지원자에 비해서는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판단해 2위로 최종 후보로 올려도 손색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심플하게 1, 2위 후보자를 최종 결승에 붙이자는 것. 


하지만 우리 팀장님과 인사팀 다른 담당자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이 밀었던 후보자는 답변의 퀄리티가 아쉬웠지만 군데군데 엿보인 기지나 재기발랄함이 있었다. 이런 포인트들이 결국 실무에서 빛을 발할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어차피 압도적인 1등이 있어서 면접 2등은 최종 인턴에서도 역전의 기회가 없어 보이지만, 아예 성향이 다른 이 후보자라면 면접 1등과 차별화된 역량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말이 그럴듯하지만 결국 두 사람의 감, 촉 이런 것들이 더 끌린다는 이유였다. 


결국 내 의견을 접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우리 팀장님이 키우고 활용할 인재이기 때문이었다. 몹시 아쉬웠지만 압도적인 1등이 있었기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이기도 했다.


한 가지 애석한 점이 있다면, 면접에서조차 남자들은 여자들을 상대해 내기 버거웠다는 점이다. 글뿐만 아니라 말조차 여성 지원자들이 압도적으로 차분하게, 논리 정연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와도 상대적으로 덜 긴장하거나 당황했다. 모든 면접을 화상으로 진행했는데, 남성 지원자들은 대체로 자택에서 면접을 봤고, 여성 지원자들은 전문 스튜디오 공간을 대여해 그곳에서 면접을 진행했다는 점도 특이했다. 어떤 여성 지원자는 심지어 크로마키(녹색 배경) 앞에서 면접을 보기도 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취직을 한 거지?


이번 경험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인턴십


두 명의 인턴은 최선을 다했다. 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당락과 상관없이 회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인턴십 일정 자체가 타이트하다 보니, 인턴들은 당락에 가장 중요한 발표 과제를 준비하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과제를 잘 만든다고 꼭 합격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이 얘기를 해주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실제로 이 발표 과제의 중요도가 절대적이라고 공지를 해버렸기에 저 말을 해주면 전체적인 채용 시스템이 꼬여버리거나 부당 채용 이슈가 생길 수도 있었다. 


결국 두 인턴의 발표 모두 무사히 마무리 됐고, 무사히 마무리 됐다는 건 결국 선택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결론을 의미했다. 사실 나는 내 의견을 강하게 어필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특히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성향이라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친구를 강하게 밀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발표자료의 퀄리티, 이런 문제는 전혀 아니었다. 발표를 준비하던 중 두 친구와 간단한 티타임을 가질 기회가 있었는데, 그 순간 한 친구가 나와의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사람을 상대할 일이 많은 직무에서 누군가와 대면할 때 이런 집중력과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다. 그 친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과제를 준비하면서 지쳐있느라 집중력을 잃었던 그 잠깐의 순간이 치명적인 결과로 다가온 셈이다. 


더욱 신기한 점은 나뿐만 아니라 같이 생활한 팀원들, 인사팀 담당자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나의 의견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최종합격자가 결정됐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이 결정은 내가 작년에 내린 모든 결정을 통틀어 가장 잘한 결정이라 자부할 수 있다. 우리팀 신입은 일도 너무 잘하고, 태도도 무척 좋다. 눈치도 빠르고 내가 같은 나이, 같은 연차에 보여줄 수 없었던 상황 판단력과 업무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친구가 부디 조금만 더 우리 팀에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ㅋㅋㅋㅋ






인사(人事)는 결국 사람의 일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어떤 기준을 삼든지 간에 모든 평가는 불합리하고 부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글을 보는 취업준비생들이 있다면, 이 점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불합격과 본인의 능력과는 사실 별 상관없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아직도 그런 순간을 꿈꾼다. 나의 의견 때문에 최종 단계에서 떨어진 그 친구가 성공한 스타트업의 수장이 되거나 독보적인 커리어를 가진 이로 성장해 이런 인터뷰를 해주는 것이다.


저도 실패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일을 계기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동기를 마련했고, 결국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때 저를 떨어뜨린 담당자에게 무척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가 그때 합격했으면 평범한 회사원으로 남았을지도 모르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합격시킨 신입사원에게 몹시 미안해진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누군가의 인생에 함부로 끼어든 대가로 나는 평생 원망을 들으며 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그(그녀)의 인생을 망친 것일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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