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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Jun 04. 2024

효율+효율+효율+......=비효율

효율의 역설_효율의 총합이 효율의 극대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효율을 추구하다 보면 생각보다 효율이 떨어진다.


점과 점을 잇는 가장 짧은 결과물을 선분이라고 부른다. 한 점을 출발지로, 다른 점을 도착지로 삼는다면 이 선분을 지름길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가장 빠른 길을 더 빨리 가보겠다고 또 뛴다. 스페인 국가대표 축구팀과 FC바르셀로나의 전설적인 수비스 카를레스 푸욜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걸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푸욜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이 말은 뭔가 와닿았나 보다. 오늘 뛰면 내일 걸을 수 있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매일 뛰었다.


나는 성격이 참 급하다. 가장 짧은 길로 가장 빨리 뛰지 않을 때면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만은 최소화하려고, 아니 아예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그 생각은 '나만 잘하면 돼'로 귀결됐다. 그럭저럭 서른이 지나고, 회사에서도 다른 역할을 요구받기 시작했다. 나만 잘하면 되던 삶은 '너만 잘하면 어쩌니'의 삶으로 바뀌었다. 월급쟁이로서 필연이었다.


의견을 모으고, 업무를 나누고 할당하는 일. 효율의 신봉자인 나에게는 회사생활, 아니 사회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됐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티가 났다. 아무리 부드럽고 깍듯하게 한다고 해도 닦달과 채근은 어쩔 수 없는 기본 옵션이었다.


처음엔 문제가 없었다. 내가 선택한 방식은 후배가 초안을 만들어 오면 바로 내가 수정해서 보고하는 식이었다. 적절하게 일을 부여하고, 가장 빠르고 완성도 높게 일을 하는 방법이라 자신했다. 여섯 달쯤 지났을까. 후배가 나를 보자고 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그냥 고쳐서 보고하시면 저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


말로 후려 맞은 듯했다. 팩트폭력 수준이 아닌, 팩트폭발이었다. 여럿이 함께 일할 때는 효율의 총합이 효율의 극대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속도는 느리지만 꼼꼼한 사람, 적당한 완성도로 예상 데드라인보다 빨리 끝내는 사람, 남들보다 빨리 성장하고 싶은 사람, 그저 맡은 몫만 다하는 사람. 이 모든 사람들에게 올림픽도 아니고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몰아붙였다간, 반드시 탈이 나고야 만다.


어쩌면 일은 이어달리기보다는 2인3각이 어울린다. 최대한 스퍼트를 올려서 힘에 부칠 때쯤 바통을 넘겨줄 수 있는 경우보다, 발이 엉켜 넘어져도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호흡이 맞아 들어갈 때 비로소 누군가를 따라잡거나 역전할 수도 있는 기회가 많다. 꼭 누군가를 따라잡을 필요 없이 그저 완주하기만 해도 된다. (그러고 보니 릴레이는 서두르다 바통을 놓치면 아예 실격이다. 2인3각에서 실격처리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일은 효율적으로 할 수 있지만, 일을 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효율이 없다. 효율을 위해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면, 그 효율은 시한부다. 


어떤 결과물을 내기 위해 같은 일을 여러 사람에게 똑같이 시킨다고 치자. 효율의 관점에서, 많은 이들이 만들어온 결과물 중에서 가장 잘 된 것을 고르거나 좋은 내용만 발췌해서 짜깁기를 하면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일은 최선의 선택지를 제안한 사람에게 몰릴 것이고, 다른 이들은


어차피 해봤자 되지도 않을 건데


이런 자괴감, 무기력에 빠져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마음을 다친 사람은 다시는 당신의 효율에 기꺼이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궁극의 효율을 위해서 순간의 비효율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효율 말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굳이 비슷한 말을 찾자면 효용이 아닐까. 회사에 다니면서 동료들이, 후배들이 자신의 능력만큼 쓸모를 다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매달 10만, 아니 5만, 아아아아니... 3만 원 정도는 기꺼이 낼 수 있다.


우리가 아름답게 바라보는 수많은 걸작은 직선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때로는 꺾어서, 때로는 둘러서 점과 점을 잇는다. 그림을 빨리 그렸다고 칭찬받는 화가는 없다. 그리면서 즐겁고, 그려놓으니 아름다운 작품이 훨씬 가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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