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와 소용의 대가
야신 김성근 감독에 대해서는 세간의 평가가 엇갈린다. 나의 평가 역시 그렇다. 동전의 양면 같은 부분인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긴다
vs.
이기기 위해 무슨 수라도 쓴다
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자는 그를 야신으로 떠받드는 논리가 되고, 후자는 그를 스포츠맨십 없는 비정한 승부사로 폄하하는 논리가 된다.
그러나 이 말에 대해서는 십분 동의한다.
돈을 받는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실적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돈을 많이 받을수록 실적에 대한 압박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를 기꺼이 감수하고 성과를 낸다면 스타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오랜 프로생활을 버텨내기 쉽지 않겠다.
쟤는 저 돈 받고 저거밖에 못하나
우리가 주는 돈도 아니면서 그저 팬이라는 이유로 선수들에게 흔히 저성과에 대한 비난을 일삼기도 한다. TV로 경기를 보고, 티켓을 끊어 직관을 하고, 굿즈도 사기 때문에 아예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들에게 돈을 주는 고용주는 일반 대중들이 아니다. 비판과 비난은 한 끗 차이일 수 있고 건전한 비판은 필요하다. 하지만 인신공격성이나 주변인들까지 물고 늘어지는 행태는 정말 극혐한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도 프로다. 모든 직장인은 업무성과의 대가로 돈을 받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이른바 '내 월급값의 적정선은 어느 수준일까'라는 쓸데없는 고민을 해왔다.
어렸을 때 내가 정한 월급값의 적정선은 시간을 기준으로 정했다. '회사에서 근로계약서 상 맺은 공식적인 업무 시간 안에서의 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직무 특성상 출근과 퇴근 사이의 시간이 정확히 9시간(점심 1시간 포함)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고, 대가를 받고 싶었다.
웃긴 건 그 기준을 적용했을 때, 당시에도 나는 월급값에 비해 하는 일이 적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꽤나 객관적이었던 셈이고, 그래서 첫 회사를 내 커리어 상 가장 오래 다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당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워라밸이었다. 월급값의 기준을 시간으로 뒀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이었다. 주말 출근, 갑작스런 야근 모두 정말 극혐했다. (지금도 굳이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은 마음은 같다) 이렇게 여러 가지 불만이 쌓이긴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럴 땐 월급값 생각은 잘 나지 않았다.
회식이 잦아질수록 이런 불만은 커져갔다. 하루는 이런 얘기를 농담처럼 선배에게 꺼낸 적이 있다. 그 선배 역시 나와 비슷해 보여서 편한 마음에 털어놓았을 거다. 그런데 선배의 답변이 의외였다.
다 월급값에 포함돼 있는 거야
그때를 기점으로 월급값 적정선의 기준은 시간에서 당위로 바뀌었다. 쉽게 말해 "월급을 받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월급값을 산정해 갔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월급값이 부족해 보였다. 그냥 일하기가 싫어진 거다. 보통 그렇지 않나. 돈을 내고 하는 일은 좋아하는 일이고, 돈을 받고 하는 일은 싫어하는 일이라고.
이후 나는 좀 더 그럴듯한 일을 찾아, 내 적성에 좀 더 잘 맞는다 생각한 회사로 이직을 했다. 새로 옮긴 회사에서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정말이지 하나도 없었다. 나는 핑계를 댔다. 업에 비해 권위주의적이었던 조직문화와 답 안 나오는 업무지시의 반복, 소통의 부재. 이런 것들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내게 주어진 그 어떠한 일도 자신감 있게 소화하지 못했다.
9개월 만의 퇴사, 이후 내 커리어는 남들이 보기에 점점 초라해져만 갔다. 자존감은 떨어지는데 자존심은 떨어질 줄 몰랐다. 후리타족*으로 살아볼까 결심한 적도 있다. 결국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고, 운 좋게 들어간 회사에서 월급값의 정의를 다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로,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Freeter). 파트타임으로 먹고사는 수준만 해결하면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사는 무리
이 회사에서의 쓸모와 소용에 대한 대가
회사에서 내가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그것이 회사의 경제적, 브랜드적 가치를 높였을 때, 그 보상으로 받는 것이 월급값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자존감은 많이 떨어졌지만 절박함은 최고조였다. 욕심내지 않고 작은 성취부터 온전히 내 힘으로 해보려 했다. 어떠한 결과라도 낸다는 각오로 일하면서 일하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 기술들을 익혀나갔다. 고생하지 않고 얻을 수는 없다는 단순한 진리도 깨달았다.
쓸모를 넓히니 대가가 커졌다. 심리적, 금전적 보상은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자신이 붙으니 못할 것이 없어 보였다. 때론 넘어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과한 자신감이 자만으로 변질되지 말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며, 일의 즐거움과 자부심을 깨달아 갔다.
앞서 말했듯, 여전히 워라밸은 가급적 지키려 하고,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는다. (가족이다) 하지만 일할 때는 늘 월급값을 다했는지 스스로에게 우선 물어본다. 심플하다. 내가 가진 역량의 최대한을 업무에 쏟아붓고,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를 낸다. 그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쓸모와 소용을 넓혀 나간다.
(비난받을 말이겠지만 ㅋㅋ) 보통 월급값이 일의 성과보다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회사는 그런 것까지 다 계산하고 나를 쓰는 것이라 적절한 수준에서 감사해하고 있다. 월급값과 성과, 그 간극만큼의 합당함을 부여하는 것은 일을 대하는 태도라고 자기합리화를 해본다. 아, 물론 오늘도 일하기는 진심으로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