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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Jul 03. 2024

재치, 눈치, 염치.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염치라

살아보니, 대충 미움받고 확실하게 사랑받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가 있더라. 없다면 삭막해지고, 없을 때 답답하며, 없는 걸 차마 견딜 수 없는 세 가지 가에 대한 단상이다.

*「나를 숨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 김이나 著 중 인용







재치는 인간다움의 충분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다시 말해 재치가 없어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다. 다만 재미가 없을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재치 있는 사람이 적어도 손해 볼 일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예상외로 학습을 통해 향상할 수 있는 스킬이다.


너무 진지한 친구가 있었다. 표정과 말투, 내용까지 항상 진심이었고, 진중했다. 이 친구가 웃겼을 땐, 너무 진지했기에 벌어진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뿐이었다. 하루는 이 친구가 소개팅에서 자꾸 미끄러지자 갑자기 예능 프로그램을 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고는 무한도전과 1박 2일을 수능공부하듯이 보기 시작했다.


그 후로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친구가 너무 웃기다. 놀랍게도 과하지도 않다. 적재적소에 날리는 드립이 무척이나 센스 있고, 신박하다. (토할 것 같지만) 어디서나 사랑받는, 사랑스러운 친구가 돼 버린 것이다. 여러분도 늦지 않았다.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홍진경, 김구라, 이수근, 정형돈, 장도연, 서장훈, 조세호 등 보고 배울 교보재가 널렸다. (언급한 인물들은 개인기보다는 토크에 강점을 가진 예능인들이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꼭 피력하고픈 생각이 있다. 


노잼은 죄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있으면 좋은 거지, 없다고 욕먹을 일은 아니다. 요즘 사회는 재치를 과하게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노잼 앞에 굳이 '핵'을 붙여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기 일쑤다. 재치는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비난받을 일은 절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눈치 얘기를 할 때마다 속이 답답해져 오는 까닭은 언뜻 떠오르는 눈치 없는 사람들 때문이리라. 눈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눈치를 보는 것과 안 보는 것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자에 해당한다. 다른 말로 센스라 부를 수도 있고, 요즘 스타일로 낄끼빠빠라고 해도 무방하다. 나는 이것을 공감능력이라 말하고 싶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인간이 가장 처음으로, 중요하게 배워야 할 것은 공감이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보면 동감과 공감의 차이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슬퍼하는 장면을 보고 슬픈 감정이 들었다면, 그 감정은 동감(=같은 마음)이다. 동감에서 나아가, 슬픔을 자아내는 인물이나 상황을 좀 더 이해하고, 위로하고픈 마음이 들었을 때 비로소 공감했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공감하기 위한 노력, 배려의 결과가 '눈치'라고 믿는다. 그저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고 없던 눈치가 생겨나진 않는다. 다만 누군가의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그 심정을 헤아려볼 수 있다면, 비로소 눈치가 생겼다 볼 수 있다. 그렇게 어울려 사는 삶에 좀 더 어울릴 만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염치라는 말의 뜻을 참 좋아한다. 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세 가지 '치' 중에서 단연 최우선으로 삼는 가치는 염치다. 염치야말로 살면서 가장 기본이자 필요한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오직 인간만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알고, 부끄러울만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소위 배우고 가졌다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뻔뻔함과 내로남불을 심심찮게 목도한다. 저들이 과연 인간이기는 한 건지 두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염치는 온데간데없고, 후안무치들만 득실거린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부당한 희생자를 만들어 내는 데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사람들, 진짜 게 때리고 싶다.


염치는 결코 어렵지 않다. 최소한만이라도 주고받음(Give & Take)의 도리를 다한다거나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만 있다면 충분히 염치 있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호의를 받았으면 감사할 줄 알고, 기회가 될 때 갚으려는 마음, 본의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폐를 끼쳤다면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는 용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체로 염치를 차리는 사람들이 '염치 불고하고'라는 관용 표현을 사용한다. 염치 불고하고 받은 부탁은 웬만하면 들어주는 것 역시 인지상정이다. 물론 염치를 불고했기에, 반드시 들어줄 필요는 없는 부탁이다. 어떨 땐 그저 당신들이 저지른 짓이 과연 염치없는 짓인지는 알까 싶어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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