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인 아무 말 대잔치
최근에 저는 얼음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는, 오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컵 아래쪽 얼음만 먼저 사라지고
위쪽 얼음은 의연하게 살아남아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너무 철학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얼음을 보면 이상하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중력도 아래로 향하는데
녹는 건 왜 아래부터일까?
물론 이 현상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지만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컵 아래 얼음은 늘 제일 먼저 부담을 받는다.
뜨거운 손에 닿고,
테이블의 온기를 견디고,
컵이 흔들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항상 아래층이다.
위층 얼음은 비교적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한가하게 생을 누리고 있는데
아래층은 언제나 제일 먼저 소멸한다.
이걸 보며 문득
“왜 어떤 구조는 아래부터 사라질까?”
라는 생각을 했다.
사회에서도, 조직에서도, 심지어 내 하루 일정에서도
부담은 항상 아래쪽에서부터 생기니까.
그 압력을 오래 받다 보면
모양이 변하거나
혹은 그냥 녹아내리기도 한다.
심리학에서 ‘열적 취약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환경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해
스트레스를 빨리 소비하는 존재를 말한다.
물론 얼음에게 실제로 그런 개념이 적용되는 건 아닐 테지만
나는 얼음을 보며 괜히 그 말을 떠올렸다.
사람도 얼음도
가장 바닥에 있는 층이
가장 빨리 지쳐 사라지는 법이다.
그런데 얼음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더 황당한 의심이 들었다.
정말 아래층이 먼저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단지 덜 녹은 얼음들만 위로 떠서
우리가 ‘아래가 무너졌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얼음은 물보다 밀도가 낮으니
살아남은 조각들은 자연스럽게 위로 뜬다.
가라앉은 것이 사라진 게 아니라
떠오른 것이 존재감을 차지한 것뿐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사회에서도 종종
사라진 자들이 아래로 떨어진 게 아니라
버틴 자들만 위로 떠올라
서열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걸 보고 우리는
‘밑바닥이 먼저 무너졌다’고 오해하곤 한다.
사실은 그저 부력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쯤 되면
슬슬 말이 안 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얼음은 그런 의미를 가지려고 녹는 것이 아니지만
나는 그런 의미를 부여하며
커피를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결국 아무리 철학을 끼얹어도
얼음은 그냥 물의 형태 변화일 뿐이다.
아래층이 먼저 녹는 건
사회 구조가 아니라
그냥 테이블의 온도 때문이다.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얼음은 그냥 시원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