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인 아무 말 대잔치
최근에 저는 양배추의 성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는, 저녁 준비를 하다가
양배추 겉잎을 하나 벗겼는데
그 안에서 또 겉잎 같은 속잎이 나오는 걸 보고
묘하게 ‘내향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요리하는게 귀찮았을 뿐이다.
양배추는 기본적으로
자기 개방에 매우 소극적인 채소다.
겉에서 보면 둥글고 순한데
막상 까보면
겉 -> 속 -> 속의 속 -> 아직도 속
이런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차단선이 너무 많다.
대략 열 겹쯤 지나면
“아, 이쯤이면 충분히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라는 기분이 든다.
이건 초보 상담사가 만나면
몇 회기 지나도
“오늘 날씨 이야기만 하다 끝나는”
그런 유형의 구조다.
양배추 단면을 가만히 보면
잎들이 살짝 말린 채
서로를 밀착하며 겹쳐 있다.
생각이라는 생각을
겹겹이 접어 넣어둔 느낌이다.
이쯤 되면 이건 채소라기보다
“저는 쉽게 속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라는 태도의 집합체 같다.
자르는 순간도 미묘하다.
토마토나 오이는
“네, 자르세요” 하고 순순히 잘리는데
양배추는 왠지
“잠깐만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라고 하는 것 같다.
손에 전해지는 단단한 저항감.
방어기제가 손맛으로 느껴진다.
심리학자 윈니컷은
사람에게는 참자기와 거짓자기가 있다고 했는데,
양배추는 그걸 너무 성실하게 구현해 놓은 것 같다.
겉은 비교적 사회적이고,
안으로 갈수록 예민해지고,
가장 깊은 곳에는
딱딱한 심지가 하나 있다.
거기까지 도달하면
“아, 여기까지 와야 하는구나”
라는 이상한 감상이 든다.
채소 앞에서.
생각해보면
사람도 종종 양배추처럼 산다.
드러내고 싶은 마음과
숨기고 싶은 마음을
겹겹이 말아서.
양배추는 그냥
그 사실을
아주 귀찮게 설명해줄 뿐이다.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양배추 채썰기는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