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인 아무 말 대잔치
최근에 저는 단무지와 시바즈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시바즈케는 가지를 절인 일본식 반찬이다.*)
정확히는, 냉장고를 열었는데
노란 단무지와 보라색 시바즈케가
나란히 들어 있는 걸 보고
이 조합이 갑자기 너무 사유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단무지는 왜 노랄까.
원래 무는 흰색인데
단무지는 굳이 노란색이다.
알고 보니 그 색은
단무지를 만들 때 일부러 노란색을 입힌 결과라고 한다.
그때 사용된 게 치자라는 자연 열매다.
인위적인 선택이지만,
재료는 자연에서 가져온 셈이다.
중요한 건
단무지가 노란 이유가
맛 때문이라기보다는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하얀 무 절임은 그냥 무 절임인데,
노란 단무지는
‘단무지’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얻는다.
이쯤 되면 거의
반찬계의 브랜딩 전략이다.
단무지는 입안에서 늘 일을 많이 한다.
달고, 새콤하고, 아삭하고,
짠맛까지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래서 단무지를 한 입 먹으면
미각이 잠깐 리셋된 느낌이 든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감각 대비 효과라고 부른다.
강한 자극 뒤에 들어온 감각이
실제보다 더 또렷하게 느껴지는 현상이다.
단무지는 이 이론을
아무 설명 없이 실천하는 반찬이다.
그래서 라면을 먹다가 단무지를 먹으면
“아, 밥 한 그릇도 가능하겠는데?”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미각이 리셋되면 판단력도 같이 리셋되는 모양이다.
시바즈케는 전혀 다른 길을 간다.
가지니까 보라색이고,
절이면서 그 보라색이 더 깊어진다.
단무지가 인위적으로 기호를 덧입은 존재라면,
시바즈케는 자기 색을 끝까지 밀고 가는 타입이다.
자연 색소의 운명을 정면으로 받아들인 결과물이다.
보라색은 보통
식욕을 억제하는 색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바즈케는
단무지처럼 입안을 즉각적으로 장악하지 않는다.
조금씩 먹게 되고,
맛의 여백이 남는다.
이건 일본 미학에서 말하는
‘여백의 미학’과도 닮아 있다.
무언가를 더하지 않음으로써
감각이 완성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시바즈케는 말이 없고,
대신 여운이 길다.
밥도 되고, 술 안주도 되고,
바쁜 식탁에서 오래 살아남는 이유다.
냉장고에 단무지와 시바즈케가
같이 들어 있다는 건
생각해 보면 꽤 재미있는 장면이다.
(물론 이건 내가 일본인 남편과 살고 있기 때문이지만)
한쪽은 색을 입혀 정체성을 얻은 반찬이고,
한쪽은 색을 지켜 정체성이 된 반찬이라는 점이.
하나는 미각을 리셋하고,
하나는 미각을 잠시 멈추게 한다.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단무지도 맛있고,
시바즈케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