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줄의 얽힘과 저항의 구조

논리적인 아무 말 대잔치

by 로미코샤Romicosha

최근에 저는 이어폰 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는, 주머니에 넣어두었을 뿐인데 다시 꺼냈을 때 복잡한 매듭이 완성되어 있는 그 장면이 갑자기 너무 사유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어폰 줄의 얽힘은 단순한 물리 현상이 아니다.

이건 거의 ‘자기조직화된 혼돈’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길고 가느다란 줄들은 서로 끌어당기며 스스로 구조를 만든다.

마치 인간이 외면한 감정들이 어딘가에서 은근히 얽혀가는 것처럼.

우리가 풀지 않은 무언가들은 늘 이런 식으로 혼자 매듭을 만든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끔은 얽힘을 풀려고 손을 대면 오히려 더 단단해질 때가 있다.

프로이트는 이런 현상을 ‘저항’이라고 불렀는데,

마음도 지나치게 파고들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더 조여든다는 것이다.

반대로, 하이데거는 어떤 순간에는 ‘내버려둠’이 해답이 된다고 했다.

간섭하지 않을 때 비로소 스스로 풀리는 상태.

이어폰의 얽힘도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우리가 조급하면 저항하고, 조용히 두면 슬며시 느슨해진다.


이어폰의 얽힘을 유심히 보면 한 가지 놀라운 특징이 있다.

복잡해 보이지만, 막상 풀고 보면 생각보다 단순하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복잡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한 번 비틀린 감정, 한 번 꼬인 말, 한 번 미뤄진 설명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 작은 매듭을 오래 방치한 채, 거대한 문제라고 이름 붙이곤 한다.


이어폰은 얽히기 위해 존재하는지, 풀기 위해 존재하는지 모호한 사물이다.

어쩌면 얽힘 자체가 이 물건의 정체성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양자 얽힘’에 비유하며 과학적 설명을 붙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이어폰이 인간보다 솔직할 뿐이다.

서로 얽히고 싶으면 얽히고, 풀리고 싶으면 풀린다.


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얽힘을 싫어하는 건 사실 줄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풀어주지 못한 감정의 잔여 때문 아닐까.

이어폰은 그 잔여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작은 무의식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이어폰은 소리가 잘 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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