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인 아무 말 대잔치
최근에 저는 엘리베이터 버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는, 이미 불이 켜진 버튼을
굳이 한 번 더,
어쩔 땐 세 번쯤 연속으로 누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엘리베이터가
버튼을 여러 번 누른다고
더 빨리 오는 기계는 아닌데도 말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묘하다.
눌렀다는 사실이 분명히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자꾸 다시 누른다.
불이 들어와 있고,
이미 호출되었음이 분명한데도
손은 다시 내려간다.
이 행위에는 효율이 없다.
과학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추가 효과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쓸모없는 반복을
이상할 정도로 성실하게 수행한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아주 작은 행동 하나라도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감각을 붙잡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결과를 바꾸지 못해도
행동 자체가 불안을 잠시 낮춰 주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이 심리를 아주 친절하게 충족시켜 준다.
한 번 누르면 불이 켜지고,
그 불빛은
“당신의 행동은 접수되었다”는
최소한의 신호를 보낸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달라지지 않지만
그 순간 우리는
상황을 약간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을 얻는다.
그래서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동작이라기보다
자기 마음에게
“일단 내가 할 건 했다”고 말하는 쪽에 가깝다.
기다림은 늘 애매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불안하고,
뭔가 하자니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인간은 버튼을 찾는다.
재미있는 건,
내가 본 바로는
이 조급함이 ‘하행’에서 더 자주 나타났다는 점이다.
출근길, 위로 올라갈 때보다
퇴근길, 아래로 내려갈 때
버튼은 더 세게, 더 자주 눌린다.
위로 갈 때의 마음은
가야 하니까 가는 쪽에 가깝고,
아래로 내려갈 때의 마음은
어서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쪽에 가깝다.
몸은 아직 건물 안에 있는데
마음은 이미 집 쪽으로 기울어 있어서
손끝이 먼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층수가 아니라
각자의 조급함이 먼저 보일 때가 있다.
숫자는 위아래로 움직이지만
버튼 위에는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남는다.
물론 버튼을 여러 번 눌러도
엘리베이터는 더 빨라지지 않는다.
기계는 이런 감정에 반응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엘리베이터는
버튼을 한 번만 눌러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