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인 아무 말 대잔치
최근에 저는 냉장고 조명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는, 새벽 2시에 물을 마시러 갔다가
문이 열리는 순간 나를 반기는 그 지나치게 밝은 빛에서
어떤 맹목적인 낙관주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자다 깨서 시력이 0.1쯤 떨어진 상태라
세상이 다 번져 보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냉장고 조명은 이 시대의 마지막 '긍정 왕'이다.
그는 99%의 시간을 어둠 속에서 보낸다.
차가운 냉기와 유통기한 지난 소스들 사이에서
말 그대로 '존버'를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주인이 문을 당기는 0.1초의 틈만 생기면
기다렸다는 듯 온몸으로 빛을 뿜어낸다.
이것은 거의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Amor Fati)’의 정수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좁고 추운 감옥 안에서도
찰나의 축제를 위해 존재 전체를 불태우는 초인의 태도.
이쯤 되면 냉장고 문을 여는 행위는 단순한 허기 채우기가 아니라
한 존재가 완성하는 빛의 서사시를 관람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전등이 자의식을 가진 건 아니다.)
(그냥 전기가 들어오면 켜지는 거다.)
인문학적으로 보자면 이건 ‘기다림의 미학’이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속 주인공들은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절망하지만,
냉장고 조명은 반드시 올 ‘문 열림’을 믿으며 자아를 예열한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다면
냉장고 조명은 “나는 켜진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셈이다.
(물론 냉장고 안이라 소리는 안 들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조명의 낙관주의가 지독하게 '일방향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문을 닫는 순간, 그는 소멸한다.
아니, 소멸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문이 닫힌 뒤에도 그가 안에서 혼자 빛나고 있는지,
아니면 즉시 어둠에 순응하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이것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다.
냉장고 문을 닫으면
조명은 켜져 있으면서 동시에 꺼져 있는 상태가 된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관측되지 않는 곳에서
더 심오해지는 법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조명이 꺼지는 찰나를 포착하고 싶어졌다.
문 틈을 아주 미세하게 남겨두고
그 틈 사이로 조명의 '마지막 퇴근'을 엿보려 했다.
낙관주의가 현실의 벽(고무 패킹)에 부딪혀
어떻게 좌절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
손가락이 문틈에 끼었다.
“악!”
문은 쾅 닫혔고,
나는 어두운 부엌 바닥에서 손가락을 부여잡았다.
낙관주의가 좌절되는 장면을 보려다
좌절한 건 나였다.
결국 나는 그의 퇴근길을 끝내 확인하지 못했고
어둠 속에서 혼자 남아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낙관을 억지로 증명하려 들면
다치는 건 대개 관찰자인 쪽이라는 것을.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냉장고 조명은
내가 먹을 걸 찾을 때만 환하면 된다.
그게 조명의 낙관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