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인 아무 말 대잔치
최근에 저는 종이 영수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는, 어제 가방을 정리하다가 나온 영수증이
왠지 모르게 너무 실존주의적인 허무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휘발성은 우리에게
“모든 형체 있는 것은 결국 사라진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영수증 숫자의 본질적 운명은 무엇인가?
겉으로 보기엔 나의 소비 기록을 증명하는 물적 토대지만
내적 메커니즘을 뜯어보면
감열지라는 얇은 막 위에서
열기에 반응해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의 기록이다.
이건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처럼 덧없고 서글픈 순환이다.
물론 제가 법화경을 읽은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런 느낌이 그렇다.
숫자들을 유심히 보면
결제 금액 ‘48,500’ 같은 것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다.
햇빛을 받으면 증발하고, 마찰을 겪으면 마모되니까
이들의 선명도는 사실 영원할 수 없는 찰나의 약속이며
어쩌면 이것이 ‘자본주의의 망각 체계’ 일지도 모른다.
니체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그도 하얗게 변해버린 영수증을 흔들며
신은 죽었고 영수증도 지워졌다고 외쳤을 것이다.
(그렇다고 들은 적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영수증은 겉으로 보이는 데이터보다
그 안에 숨어 있는 ‘휘발성’이 더 본질적이라는 사실이다.
숫자는 단순한 가격 정보가 아니라
나의 소유욕이 타올랐던 열기의 흔적이며,
백색으로 돌아가는 종이는 기억의 정화 과정이다.
그렇다면 영수증이 하얗게 변하는 행위는
지출의 죄책감을 세탁하여
나의 정신 승리를 도모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지갑을 정리했다.
그런데 오늘 환불을 하러 갔을 때
점원이 “숫자가 안 보여서 확인이 안 되네요”라고 말했고
나의 권리는 완전히 묵살당했다.
그렇다면 나는 방금
포스트모던적 망각의 대가를 치른 셈이다.
증거는 인멸되고
권리는 흔들리고
환불금 48,500원은 허공으로 사라지며
나의 경제적 합리성은 산산이 흩어졌다.
나는 그것을 보며
인생도 영수증 숫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뜨겁게 기록된 것 같지만
시간이라는 햇볕 아래 두면,
우리가 믿던 확신들은
순식간에 백지가 된다.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스마트 영수증을 신청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