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의 중도 정치

논리적인 아무 말 대잔치

by 로미코샤Romicosha

최근에 저는 비빔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는, 오늘 저녁으로 비빔밥을 먹기 전에

아직 섞이지 않은 채 놓인 내용물을 보다가

왠지 모를 팽팽한 정치적 긴장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비빔밥의 그릇 안은 완벽한 다원주의 사회다.

초록색 시금치, 하얀 무생채, 노란 콩나물이

각자의 구역을 점유하며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이것은 헤겔이 말한 ‘정-반-합’의 변증법이 실현되기 직전의 폭풍 전야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나물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중앙에 놓인 고추장이라는 강력한 ‘중앙 정부’를 주시한다.

(그렇다고 제가 정치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고추장의 역할이다.

고추장은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나물들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통합하는 포퓰리즘적 도구처럼 보인다.

빨간색이라는 강렬한 상징 아래에서

나물들은 자신의 고유한 색을 잃고

결국 ‘빨간 맛’이라는 거대한 합의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고도의 사회 통합적 기제일지도 모른다.

칸트가 비빔밥을 먹었다면

아마 이것을 ‘영구 평화론’의 식탁 위 구현이라 불렀을지도 모른다.

(아닐 수도 있다.)


비빔밥을 섞는 행위는 일종의 혁명이다.

수저를 들어 평화로운 균형을 깨뜨리고

위아래를 뒤섞으며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나는 이 장엄한 민주주의의 현장을 목격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나의 내면세계와 이 다채로운 식재료들이

완벽하게 통합되는 그 찰나의 미학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가 생겼다.

정중앙에 놓인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가

애매하게 익어버린 것이다.

터져 나와 모든 재료를 부드럽게 감싸야할 노른자가

고형물이 되어 겉돌기 시작했다.

통합의 매개체가 사라지자

시금치는 겉돌고 콩나물은 엉켰으며

익은 노른자는 밥알 사이에서 고립되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세상도 비빔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를 하나로 묶으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어도

핵심적인 연결 고리가 굳어버리면

결국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강제된 통합은 결국

골고루 섞이지 않은 짠맛의 덩어리만을 남긴다.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비빔밥에 올릴 계란 프라이 노른자는 익히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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