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통의 연금술과 한계 효용

논리적인 아무 말 대잔치

by 로미코샤Romicosha

최근에 저는 다 쓴 샴푸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는, 바닥에 찰랑거리는 1센티미터의 잔여물을 보며
뜨거운 물을 붓고 미친 듯이 흔들다가 묘한 숭고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새 샴푸를 꺼내기가 너무 귀찮았기 때문일 것이다.


묵직했던 샴푸통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아무리 펌프를 눌러도 '픽, 픽' 하는 헛바람 소리만 날 때
우리는 욕실이라는 밀실에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버릴 것인가, 물을 탈 것인가.


나는 주저 없이 샤워기를 틀어 통 안에 뜨거운 물을 채워 넣었다.
이것은 단순한 궁상이 아니다.
이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려는 현대판 연금술이다.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돌멩이로 황금을 만들려 했다면,
현대인은 용기 벽면에 붙은 1그램의 계면활성제로 풍성한 거품을 연성하려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효용성까지 쥐어짜 내는
극한의 효율이자 처절한 주체성의 발현인 것이다.
(물론 내가 중세 철학자처럼 비장했다는 건 아니다. 그냥 새 걸 가지러 가기 귀찮았다.)


펌프를 힘차게 누르자
묽고 뜨뜻한 액체가 손바닥 위로 흘러내렸다.
거품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초라한,
불투명한 구정물에 가까운 질감이었다.
그래도 나는 나의 연금술이 성공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 액체를 정수리에 벅벅 문질렀다.


그런데
물이 너무 많았던 탓에
머리카락에 안착하지 못한 화학 용액은
그대로 이마를 타고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내 눈으로 직행했다.
"아악!"
눈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연금술이고 나발이고
나는 눈도 뜨지 못한 채 더듬더듬 샤워기를 찾아 미친 듯이 물을 뿌려댔다.


벌겋게 충혈된 눈을 간신히 치켜뜨고 나서야,
나는 선반 구석에 얌전히 놓여 있던 새 샴푸 통의 펌프를 돌려 땄다.


나는 쓰라린 눈을 끔벅이며
우리가 쥐어짜 내는 삶의 한계란 게 이런 걸까 생각했다.
바닥난 체력이나 닳아버린 마음을
어떻게든 억지로 연장해 보려 하지만,
결국 눈물 콧물 쏙 빼며 붕괴하고 나서야
과감하게 새로운 막을 열어야 할 때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샴푸는 그냥 거품만 잘 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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