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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Dec 15. 2020

그래도 아이들은 자란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 리뷰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야기라 유야, 키타우라 아유, 키무라 히에이, 시미즈 모모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남루한 옷을 입은 아이가 더러운 손으로 캐리어를 쓰다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건너편에 앉은 여자아이의 얼굴이 차창으로 비치고, 창밖으로 무수히 많은 불빛이 어른거린다. 

영화를 처음 볼때는 이 장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지만, 영화를 마지막 까지 보고 나서 다시 이 장면을 되돌아보면 그 의미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캐리어 안에는 죽은 동생이 들어있다. 이 세상에는 차창으로 비치는 불빛의 수 만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이 아이의 죽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서 자라왔다.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집 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다. 유키는 새 집으로 이사 올때도 어둡고 답답한 캐리어 속에 숨어서 왔으며, 마지막으로 집을 떠나 가는 길도 캐리어에 담겨서 가게 된다. 


아키라는 엄마와 함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오는데, 시게루와 유키는 캐리어에 숨어서 몰래 이사를 오고 쿄코 또한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집으로 숨어든다. 이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면 화목하게 웃는 모습 위로 어색하고 신경이 쓰이게 하는 무언가가 자꾸만 겹쳐 진다. 

아이들의 엄마는 아이들을 예뻐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아이들의 마음에 무신경하다. 이사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엄마에게 오늘 늦게 오냐고 물어보자,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글쎄, 늦으려나?’ 하고 대답한다. 엄마가 출근한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자신의 짐과 집안을 정리하고, 아키라는 동생들의 저녁을 만들어 먹이고 쿄코는 빨래를 한다. 엄마가 부재한 상황이 너무나도 익숙해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슴아프다.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엄마는 내 기분과 내 행복이 중요할 뿐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이 너무 고파서 그게 언제든 엄마가 나에게 조그마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더라도 그저 행복하고 고마울 뿐이다. 밤 늦게 술이 취해 싸온 초밥을 먹으라며 한참 잠이든 아이들을 깨워도, 아이들은 엄마가 옆에 있어서 그저 행복하다.  그리고 쿄코는 엄마가 발라준 매니큐어가 따뜻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쪽지만 한장 남겨두고 사라졌던 엄마는, 손톱위의 매니큐어가 모두 지워졌을 때 쯤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가지고 돌아온다. 쿄코는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엄마의 매니큐어 냄새를 맡아보는데, 남의 물건을 마음대로 만지는 행동이 나쁘다며 싸늘하게 말하는 엄마. 그 말에 고개숙인 쿄코는 마음이 아프다. 


엄마는 이미 아이들을 버리고 떠날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자신의 짐을 챙긴다. 짐을 들어주려고 역까지 배웅나온 아키라에게 “나는 행복해지면 안되냐고” 묻는데, 엄마의 ‘행복’ 속에 아이들의 자리는 없다. 그런 마음이 전해 졌을까? 아키라는 엄마가 기차역으로 들어간 뒤에도 한참 동안이나 거기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미 보이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계속 눈으로 찾고 있었다. 


이 영화속에는 개와 고양이가 나온다. 

집주인이 항상 안고다니는 개는 따뜻한 곳에서 사랑과 관심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주인이 어딜 가든 늘 함께 다니고, 주기적으로 산책을 다니며 길가다 만난 주민이 개를 보고 애정어린 관심을 보일만큼 친숙하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 개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영화속 고양이는 주인이 없는 길고양이로 보이는데 화면속에서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길고양이는 늦은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다녀야 하고, 스스로 먹이를 찾고 보금자리를 꾸려 나가야 한다. 늘 음지에서 생활하는 길고양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던지 병들어 죽던지 우리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 고양이가 우연히 마음 따뜻한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것도 잠시 일뿐 결국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영화속 아이들의 모습과 길고양이가 겹쳐 보인다. 


이 영화속에서는 고양이가 두번 나오는데, 쿄코가 처음 이사간 집에 들어가는 모습 뒤로 길고양이 한마리가 재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발소리를 줄이며 아무도 모르게 재빨리 집으로 뛰어가는 쿄코의 뒷모습이 마치 그 고양이 처럼 보인다. 그리고 유키가 세상을 떠난 그날,  아키라가 뒤늦게 계단을 뛰어 올라갈 때 집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고양이의 모습은 추락한 유키를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속에서는 유키가 추락하는 장면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바닥으로 떨어져 깨진 유키의 화분 그리고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막내 유키는 생일날 엄마가 꼭 올거라며 역으로 마중을 나가자며 고집을 부린다. 어린아이 답지 않게 늘 조용히 혼자 놀고 얌전한 아이가 이번에는 여간해서는 고집을 꺽지 않는다.  결국 역으로 마중을 나가기로 하고 외출을 하는데 유키는 아키라가 골라준 운동화 대신 소리나는 슬리퍼를 신는다고 한다. 늘 유령처럼 집안에만 갇혀서 생활하던 유키의 첫 외출, 유키는 걸을때 마다 소리가 나는 신발을 신고 오지 않을 엄마를 기다리러 나간다. 

유키의 발걸음마다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나에게는 “엄마 나 여기있어. 내가 여기 있어”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렸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기에 더 오래 기억되고 마음에 남는다.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엄마 없이 보내는 겨울과 봄 그리고 여름 아이들은 이제 전기도 수도도 모두 끊긴 집에서 생활하기 위해 공원으로 외출을 한다. 엄마가 부재한 상황에서 엄마가 세워둔 금기는 무용하다.

그때 발견한 하수구에서 자라난 잡초.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아도 잡초는 있는 힘껏 자라서 꽃을 피우고 씨를 맺었다. 아이들은 ‘누가 버렸을까? 불쌍하다’면서 씨를 따서 화분에 옮겨 심고 물을 준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면서도 꽃을 피운 잡초는 마치 영화속 아이들의 모습 같다. 아이들은 처해진 환경이 어떠하든지 자란다. 키가 크고 변성기가 오고 이성에도 눈을 뜬다.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세상에는 이름이 없는 아키라는 다른 아이의 이름을 가슴에 달고 서야 공을 던지고 운동장을 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아키라가 잠깐의 행복과 자유를 느꼈던 그때 유키는 세상을 떠난다. 유키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아키라는 마지막으로 유키에게 비행기를 보여주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유키의 마지막 외출이 바로 영화의 첫 장면과 이어지게 된다. 유키는 처음 집에 왔을때 처럼 아무도 모르게 캐리어에 담겨서 집을 떠난다. 이제는 더이상 소리 낼 수 없는 신발을 신고서...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영화는 엔딩까지 잔잔하게 그저 묵묵히 바라본다. 아이들의 딱한 처지를 불쌍하게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그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 갔는지 한발 떨어진 곳에서 지켜볼 뿐이다. 유키가 죽고 여전히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보석’같은 아이들은 계속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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