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리어스 맨 리뷰]
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마이클 스털버그(래리), 리차드 카인드(아서), 프레드 멜라메드(사이), 사라 렌릭(주디스)
아론 울프(대니), 제시카 맥매너스(사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래리는 종신 재직권 심사를 앞두고 그를 모함하는 익명의 투서를 받았다. 그의 아내 주디스는 오랜 친구인 사이와 바람이 나서 종교적 이혼인 ‘겟’을 원하고, 아들은 마리화나를 피우며 사고를 치고, 딸은 머리 감기에 집착하며 성형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 돈을 슬쩍한다. 그리고 그의 동생은 아직 독립하지 못하고 그의 집에 얹혀살며, 도박 혐의로 구속되는 등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중첩된 문제들로 골치가 아픈 그는 인생의 위기에서 지혜를 얻기 위해 세명의 랍비를 찾아간다.
과연 래리는 랍비를 만나서 그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까?
물리학 교수인 래리는 모든 질문에는 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물리학에서도 수학식만 알 수 있으면 기나 긴 계산 과정을 거치더라도 결국 어떻게든 답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에게 이런 고난이 찾아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답을 찾고자 한다.
TV 안테나를 고치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는 래리의 모습은 마치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를 타는 것처럼 촬영되어 있다. 사실은 지붕에 사다리를 걸친 것이지만 카메라는 지붕은 제외하고 하늘과 사다리의 끝 만을 보여주면서, 래리가 마치 하늘로 연결된 사다리를 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 장면은 어떻게 해서 든 하늘의 뜻을 알고자 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지붕 위에 올라가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조정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알 수 없는 하늘의 소리를 듣기 위해 열심히 주파수를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이라도 하솀의 뜻에 가까워지려는 그의 노력에 신은 다른 쪽으로 응답을 준다. 옥상에 올라서 우연히 보게 된 옆집 샘스키 부인의 나체. 뜨거운 태양 아래에 자연스레 놓인 그녀의 몸. 담배를 피우는 우아한 손짓. 래리는 주차장을 언급하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하던 스캇 랍비 보다 샘스키 부인에게서 더 많은 지혜를 얻은 것 같다. 최악의 상황에서 “자유를 즐기셨나요?”라는 그녀의 말은 래리에게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주게 된다.
래리의 사무실의 전화는 끊임없이 울리는데, 어떤 전화는 그에게 연결되고 다른 전화는 연결되지 않거나 불완전하게 연결되고(도중에 끊기고), 어떤 경우는 의도적으로 연결이 지연된다. 그러한 연결의 지연으로 인해 인식의 지연이 발생하게 되고, 결국 전화가 연결되기 전까지는 이미 발생한 사건이 래리에게는 통지되지 않음으로써 그는 사건의 발생 자체를 알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 마치 그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설명했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말이다.
(상자 속 고양이가 살아있을 확률도 죽어 있을 확률도 50퍼센트, 즉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고양이는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 있는 상태가 중첩된 상태에 있으며,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 고양이는 살아있는 상태나 죽어 있는 상태 중 하나로 확정된다.)
결국 주디스와 이혼 문제가 해결된 것은 랍비의 지혜가 아니라, 우연한 자동차 사고로 그녀의 연인인 사이가 죽게 되면서이다. 아들 대니의 성년식인 바르 미츠바를 무사히 마친 부부는 서로 화해를 하는 것으로 보이고, 래리가 만나고 싶었던 마샥 랍비를, 성년식을 마친 대니가 만나서 그가 영화 초반 빼앗겼던 라디오를 되찾게 된다. 마지막으로 종신 재직권 심사까지 통과되면서 래리가 골치 아파했던 모든 문제가 한순간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다시 불길한 전화가 걸려온다.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안심하던 순간에 검은 먹구름과 함께 토네이도가 몰려오는 것처럼.
오프닝 시퀀스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 한 영상과 함께 등장했던, 랍비 라쉬의 말은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단순하게 받아들여라
당장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생각하면, 현재의 대처 방법을 복잡하게 고민해 본들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오늘 일어난 일은 일어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뿐. 때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다. 오늘 내게 일어난 일은 특별한 신의 의도가 담긴 일이 아니며, 그 속에서 다른 의미를 찾으려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노력 일 수도 있다. 내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