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쟈 May 08. 2020

그것이 삶이다.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 리뷰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출연: 호세인 레자(호세인), 테헤레 라다니아(테헤레)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이다. 영화 촬영지였던 코케마을이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이었던 두 아이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무작정 길을 나선다. 이러한 여정을 담은 영화가 ‘그리고 삶을 계속된다.’이며, 이 영화 속에 신혼부부로 출연한 두 배우, 호세인과 테헤레의 모습을 담은 영화가 ‘올리브 나무 사이로’이다. 


영화의 촬영 방식은 아주 독특하다. 시작 부분에 감독이 관객을 향해 인사를 하고 배우를 캐스팅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형식으로 보았을 때는 촬영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보인다. 때로는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차 밖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 사이드 미러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쇼트는 마치  관객도 영화 속 자동차 조수석에 함께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다큐멘터리처럼 촬영 현장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지만, 중간중간 영화 촬영 대기 시간에 일어나는 테헤레와 호세인의 대화를 삽입하여 둘 사이의 일은 영화적 연출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관객은 어디까지가 영화적 연출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인지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영화를 촬영하는 것이 연출이고 호세인이 테헤레에게 구애하는 것은 현실인지, 혹은 영화 속 촬영 장면은 현실이고 호세인이 테헤레에게 구애하는 것은 연출인지, 혹은 그 둘이 모두 현실 또는 연출인 것인지...


영화 속에 출연한 배우들도 혼란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단지 영화 속 설정일 뿐인데, 호세인은 짝사랑하는 테헤레에게 그가 말하는 대사는 전부 감독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말하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변명한다. 

영화 촬영을 마친 후 스텝들이 어떻게 이동할지 옥신각신하는 사이 테헤레는 걸어가겠다며 길을 나서고, 호세인의 마음을 잘 아는 감독이 호세인에게 그녀를 따라가라고 눈치를 준다. 그녀를 뒤따르면서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쉬지 않고 설득하는 호세인과 아무런 대답 없이 계속 갈길만 걸어가는 테헤레.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그는 아무런 대답 없이 언덕을 오르는 그녀의 모습에 잠시 포기한 듯했다가, 결국 그녀를 뒤따라 달려간다. 잠시 뒤 카메라는 언덕 아래 올리브 나무 사이를 걷고 있는 그녀를 뒤 따르는 호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엔딩 장면은 언덕 위의 고정된 위치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앞서가는 테헤레 주위를 나풀거리며 맴도는 호세인의 모습은 마치 짝에게 구애를 하는 나비처럼 보이는데, 초록빛 잔디, 올리브나무와 함께 어우러진 그들의 모습은 자연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다.  


감독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일 수밖에 없음을, 그리하여 자연의 힘에 굴복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집을 짓고 사랑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일구어내는 존재임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현실과 픽션의 경계 선위에 있는 영화가 주는 혼돈 속에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들이 영화 속에서  촬영한 영화인 ‘그리고 삶을 계속된다’를 이어서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두 영화는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이 둘을 함께 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영화 속에서 지그재그로 난 길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는 이유로 지그재그 3부작으로 불리기도 하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와 ‘올리브 나무 사이로’ 난 길까지, 지그재그로 난 길을 제대로 한번 걸어볼 사람은 3부작을 함께 이어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감독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 자동차 위에 카메라를 고정하는 방식으로 촬영함으로써, 관객들이 지그재그로 난 길을  함께 걷게 만든다. 그 길은 우리네 인생과 비슷하다. 길이 없는 낭떠러지처럼 보였다가  조금 더 나아가면 다시 새로운 길이 보인다. 어떤 길은 너무 높아서 한 번에 올라갈 수 없어, 한참을 뒷걸음질 치게 만들지만,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길을 알려주거나 뒤에서 밀어주기도 한다. 또 어떤 길에선 처음 보는 사람을 함께 태우고 가기도 한다. 절망 속에서도 빨래를 하고 저녁을 준비하고 축구를 보기 위해 안테나를 설치하고, 구애를 하는 그것이 바로 삶이다. 


그리고 삶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어제의 적, 오늘의 동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