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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Dec 19. 2019

다시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는 길

영화 <퍼스널 쇼퍼> 리뷰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

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라스 에이딘거, 시그리드 부아지즈, 앤더스 다니엘슨 라이



모린은 죽은 이의 영혼을 보는 사람이다. 같은 심장 기형을 지니고 심장마비로 먼저 죽은 쌍둥이 오빠 루이스로부터의 신호를 기다리며 유명인 키라의 퍼스널 쇼퍼로 일한다. 모린은 금기를 깨는 것을 욕망한다. 금지되었기에 키라의 옷을 입어보고 싶어 하고, 모르는 사람이 보내온 문자에 답을 하며 그가 시키는 대로 호텔에 간다. 살아있는 자가 사후 세계를 알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큰 금기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루이스의 신호를 기다리는 일에 열중하는 것인지 모른다. 


영화를 마지막까지 보고 나면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시작부터 끝까지 매 순간 그 존재를 상기시키고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루이스는 말 그대로 유령이라 그 형체가 명확하지도 않고 한 번의 대사도 없다. 키라의 경우도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단 한번, 그러나 그 순간에도 모린과는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모린은 편지나 전화를 통해서 키라와 소통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야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모린의 연인인 게리는 마지막까지 그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스카이프 화면 너머 그의 얼굴은 흐릿하고 투명하게 비치는 유령 같은 모습이다. 이처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치 유령처럼 그려져 있다.


영화의 시작 부분, 모린은 루이스가 살던 저택에서 그의 영혼이 보내는 신호를 기다린다. 저택은 신혼부부 둘이 살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고풍적이다. 또한 집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망설임 없이 야외 테라스로 가는 문을 찾아서 여는 모린은 그 공간이 아주 익숙한 것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 모린과 루이스가 함께 살았던 저택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이 독특한데, 모린의 뒤를 따르는 시선이 마치 루이스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카메라의 시선을 따를 수밖에 없는 관객은 마치 유령이 된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모린의 문자 메시지를 비스듬히 보여주는 시선, 모린의 어깨너머로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을 보여주는 시선, 키라의 집에서 옷을 입어보는 장면에서의 카메라 이동은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 즉 유령의 것으로 보이게 된다. 이러한 카메라의 시선은 모린의 옆에 있는 루이스의 영혼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영혼은 강하게 부각되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존재는 희미하게 희석된다.


엔딩 장면까지 보고 나면 모린이 정말 찾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키라 살인사건에 연루되었던 모린은 루이스의 영혼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고 연인 게리를 만나러 ‘오만’으로 떠난다. 그녀가 게리를 만나러 가는 여정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를 안내하는 흰옷과 터번을 두른 남자도 현실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마치 사후세계처럼 보이는 그곳에서 루이스가 보낸 신호를 받고 더불어 자신이 진짜 찾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녀는 루이스의 신호를 기다린다고 말했지만 실은 잃어버린 자신의 영혼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 라라의 집 정원에 앉아 있던 모린은 등 뒤에 루이스가 나타나서 컵을 깨트려서 신호를 보내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의문스러운 모든 대상에게서 ‘루이스’를 찾지만 정작 진짜 루이스가 보낸 신호는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모린의 말에 따르면 ‘끌림’이 부족했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그녀가 진정 찾고 싶었던 것은 루이스가 아닌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모린과 루이스는 단순한 남매 이상의 관계였을지 모른다. 더욱이 루이스와 모린이 쌍둥이라는 설정은 이를 더 강조한다. 쌍둥이는 서로의 영혼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머니가 부재한 상황에서 둘은 더욱 단단하게 결속하였을 것이다. 모린은 루이스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그를 닮고자 했던 것 같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잃은 채 살아왔던 모린은 루이스를 잃고, 그녀가 되고자 했던 키라 마저 죽고 난 뒤에야 자신이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엔딩 장면에서 유령과의 대화 부분은 단단히 결속된 루이스와 모린의 영혼을 다시 보여준다.  

모린의 질문에 루이스가 먼저 대답했다.


“루이스, 여기 있어?” 쿵(yes)

“날 기다렸어?” 쿵(yes)

“안식을 찾았어?” 쿵(yes)

“고마워”


그토록 기다렸던 루이스로부터의 신호를 받았으나 그녀는 여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질문을 한다. 자신이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불안한 상태야?” 쿵(yes)

“나랑 장난해? 해치려는 거야?” 쿵쿵(no)

“도대체 누구야? 누구냐고?” (무응답)

“루이스 너야?” (무응답)

“아니면 나?” 쿵(yes) 


안식을 찾은 루이스의 영혼과 달리 여전히 불안한 상태인 그녀의 영혼과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화이트 아웃되며 영화가 끝난다. 영화 속에서 블랙아웃 쇼트가 자주 등장한다. 모린이 중요한 정보를 확인하고자 하는 순간 영화는 급작스럽게 블랙아웃 되는데, 저택의 벽에 그려진 십자가 표시가 전에도 있던 건지 질문하는 장면, 처음 호텔에 방문한 뒤 호텔의 예약자가 누구였는지 확인하는 장면 그리고 키라가 죽은 뒤에 받은 문자메시지와 호텔 키를 받는 장면 등이다. 그 정보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확장성을 위한 의도적인 생략일 수 있다.

그에 비해 화이트 아웃으로 끝나는 엔딩 장면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무대에 서 본 사람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조명이 자신을 비추는 순간 주인공은 순간적으로 화이트 아웃을 경험한다. 모린이 자신의 욕망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이제 무대 위에 주인공이 되었기에 화이트 아웃으로 엔딩을 맞는 것이다.




엔딩 장면과 함께 엘리베이터 시퀀스는 그 해석에 대해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모린이 호텔에 들어오고, 방에 들어간 그녀가 가져온 보석을 꺼낼 때 문 쪽에서 딸각 이는 소리가 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빈 복도를 비추다 아무도 없이 열렸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과 호텔 로비의 자동 출입문을 보여준다. 그다음 장면은 329호에서 나온 잉고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가다 경찰에게 체포되는 장면이다. 그리고 호텔 로비의 문을 나서는 잉고의 뒤로 누군가가 따라 나가는 듯이 자동문이 다시 열린다.

이 시퀀스에서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는데 처음에는 그 느낌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본 뒤에야 내가 느낀 이질감의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모린이 호텔에 도착하기 이전의 장면까지 함께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

모린이 329호로 오라는 메시지를 받은 것은 새벽 2시경, 다음 장면에서 그녀는 이른 아침 휴대폰 유심 칩을 교환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모린이 호텔 로비로 들어서는데 이때 모린의 머리 위로 후광처럼 햇살이 비친다. 이른 아침에서 한 낮으로 시간이 점프한 것이다. 시간을 압축하거나 늘이는 것은 흔한 편집 기법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순서 또한 뒤섞일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잉고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두려움에 떨던 모린이 다음 장면에서 호텔로 들어설 때는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다. 방문을 여는 그녀의 모습은 빈 방임을 확실히 알고 있는 모습이다. 유심 침을 교체한 뒤 호텔로 오기까지의 시간 사이에 모린의 마음이 바뀔 수 있는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그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잉고가 호텔 로비로 나가는 장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잉고가 호텔을 나서는 시간은 오전 시간이다. 잉고가 나갈 때 거리의 풍경을 보면 약한 햇빛과 쌀쌀함에 옷깃을 여미고 일터로 급히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그림자의 방향이 이를 명확하게 알려준다. 그림자의 각도로 보아 잉고가 체포된 시간은 오전 11시경으로 보인다. 밤새 호텔에서 모린을 기다리던 잉고가 포기하고 호텔을 나서던 순간 모린의 신고로 대기하던 경찰에게 체포된 것이다. 즉 잉고가 체포되는 사건이 모린이 호텔에 도착한 사건 이전에 발생한 것이다. 

모린은 잉고가 경찰에 체포된 뒤에 잉고가 있던 방에 보석을 놓아두기 위해서 호텔로 들어선 것이다. 모린이 호텔로 들어서던 순간 머리 위로 비치는 햇살과 거리의 분위기가 오후 시간임을 나타낸다. 그 장면에서 그림자의 각도로 보아서 오후 2-3시 사이로 추측할 수 있다.

실제 사건이 발생한 순서대로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잉고가 방에서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릴 때 이미 루이스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잉고가 누르지 않은 쪽의 엘리베이터가 열렸으며(이후에 루이스가 혼자 이용했던 엘리베이터와 같은 것이다.) 그 장면에서 잉고의 옆얼굴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이 바로 루이스의 시선이다. 루이스는 잉고를 따라나가 그가 체포되는 장면을 지켜본 뒤 호텔에 머무르며 모린을 기다린다.

그 이후 모린이 호텔에 도착하고, 호텔에서 모린을 만난 루이스가 먼저 호텔을 떠나게 된다.

감독은 모린이 호텔에 도착한 이후에 잉고가 호텔을 떠난 것처럼 시간의 순서를 역으로 편집하여 관객들에게 혼란과 함께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었다.




중간중간 관객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 장면과 함께 충격적인 결말로 인해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한동안 생각에 잠기게 하는 영화이다. 어려운 영화도 여러 사람의 리뷰를 읽다 보면 유사한 큰 줄기가 있어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보는 사람마다 심지어 평론가들도 모두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계속 생각하게 만들고 여러 사람의 리뷰를 읽을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불친절하지만 잘 짜인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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