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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Aug 18. 2020

소송

프란츠 카프카 전작 읽기 세 번째

소송 


                                                          프란츠 카프카|권혁준 옮김 [문학동네]



요제프 K는 서른 살의 생일날 아침 그의 침대에서  체포되었다. 죄목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소송의 절차가 시작된다고 통보받는다. 그는 바로 그 주 일요일에 법원에 출석하여 첫 심리를 받는데, K의 발언에 의해 그 자리는  K의 죄가 아닌 법원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자리가 된다. K는 자신의 변호를 위해 법원 정리의 아내, 변호사, 레니(변호사의 가정부), 화가, 상인 블로크를 차례로 만나서 도움을 구하려고 하나, 마땅치 않다. 이렇게 일 년 여의 시간을 허비 한 뒤 그는 사형이라는 최종 판결을 받게 된다.


독자들은 책을 끝까지 읽는다 하여도 요제프 K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은 첫 장(K가 체포되고 소송이 시작되는 지점)과 마지막 장(K가 사형당하는 순간)이 먼저 쓰이고 나머지 장들은 서로 느슨하게 연관되게 써 내려가는 방식으로 작성되었다고 한다. 즉, K의 죄가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최종 판결을 받게 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가 스스로를 어떻게 변호한다고 하여도, 결국 사형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책 속에서 심리 절차는 첫 번째 심리,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또한 그 심리 중에도 그의 죄에 대한 논의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그의 죄가 무엇인지, 소송의 절차나 과정이 어떤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소송이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최종 판결만이 의미를 가진다.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러므로 소송의 과정 자체는 형식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K가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행동들은 마치 ‘법 앞에서’에서 시골사람이 문지기가 그를 통과시켜 주기를 바라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과 같다. 소송의 절차는 애초에 그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죄를 증명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소송’이라는 외형에 사로잡혀 그의 소중한 일 년을 낭비하게 된 것이 아닐까. 

만약 그가 승소를 위해 권력이 있는 변호사와 인맥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첫 심리에서처럼 법원 그 자체의 부조리를 더욱 파헤쳐 나갔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결론은 같았을 것이다. 

K의 주변 모든 것들은 다 법원과 관련이 있었으니까. 내가 살고 있는 세상 전체를 파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세상이 부조리하다면, 그 세상 속에서는 오히려 내가 비정상으로 보일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카프카의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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