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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Sep 01. 2020

칼다 기차의 추억

프란츠 카프카 전작 읽기 네 번째



                                                                 


 [칼다 기차의 추억]에는 총 9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중 ‘학술원에의 보고’는  황금 해안에서 인간들에게 생포된 후 지난 5년간 인간 세상에서 생활하던 원숭이 피터가 원숭이로서의 과거에 대한 보고를 하는 내용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놓고, 모든 고집을 포기하는 것(P49)"통해 인간 세계에 속하는 길을 발견했다. 피터가 처음 갇힌 “그 우리는 전체적으로 똑바로 서 있기에는 너무 낮았고, 앉아 있기에는 너무 폭이 좁았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떨리는 무릎을 안으로 구부린 채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P53)” 편히 앉을 수도 설 수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그 우리는 마치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하는 이방인의 위치를 떠올리게 한다. 유럽인의 세계에서도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이방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카프카의 존재가 그러하지 않았을까? 


 “ 그런 모든 것들 속에서도 오직 한 가지 느낌만은 있었는데, 그것은 출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P54). 나는 출구가 전혀 없었지만, 나 스스로에게 출구를 마련해 줘야만 했습니다. 출구가 없으면 나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중략)... 나는 내가 이해하는 출구의 의미를 사람들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나는 그 단어를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일반적이고도 가장 완전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말입니다.(P55-56)” “지금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내가 살기를 원한다면 출구를 발견해야 하지만 그 출구는 탈출을 통해서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적어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P58)”


그 우리 속에서 피터는 간절하게 출구를 원했다. 만약 피터가 자유를 원했다면 우리를 탈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유보다는 계속해서 살아나갈 수 있는 길, 즉 출구가 필요했다.

출구는 현재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나가는 문이 되면서 동시에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는 입구이다. 

피터는 우리를 탈출하여 자유를 얻는 것보다 인간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 속에 갇힌 피터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애초에 그가 원한 이름이 아니다. 인간들에게 가장 익숙했던 원숭이의 이름이며, 그가 인간에게 붙잡히게 된 상황에서 입은 상처를 이유로 빨간 피터라 부른다. 이 얼마나 무신경한 짓인가. 

피터는 거울을 볼 때마다 빨간 상처를 마주 보게 되고,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신의 이름의 기원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낙인찍힌 이. 


원숭이를 버리고 인간이 되는 길을 출구로 선택하였다고 하지만, 애초에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는 살기 위해 그렇게 ‘슬쩍 사라진다는 (P66)’ 선택을 하게 된다.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그가 한 행동들은 하나같이 의미 없는 일들이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손님이 오면 신분에 맞게 접대하고…. 가장 인간적이라고 볼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 들인 지…


피터는 “그것이 노력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더불어 나는 어떠한 인간의 평가도 원하지 않습니다.(P67-68)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나의 평가도 불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경험을 하지 못했던 내가 감히 그를 평가할 수 있을까? 아니 이 사회에 섞여 들기 위해서, 내가 하고 있는 쓸모없는 일들을 생각해 보면 애초에 평가할 자격이 없을 수도 있겠다. 


신사 여러분, 여러분도 이런 종류의 것을 체험한다면 여러분에게 원숭이 기질이 남게 되고, 그러면 여러분이 갖고 있는 원숭이 기질이 나에게 남아 있는 나의 원숭이 기질에 비해 더 미미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원숭이 기질은 여기 땅 위를 걷는, 위대한 아킬레스든 작은 침팬지든, 모두의 발꿈치를 간지럽힙니다. (P49-50)


결국 우리는 모두 피터와 다를 바 없다. 카프카는 이를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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