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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Sep 29. 2020

변신

[프란츠 카프카 전작 읽기 여섯 번째]

변신

                                                                                   

                                                                                                  [칼다 기차의 추억 중]                 

                                                                                           프란츠 카프카, 이준미 옮김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침대에 있는 자신이 엄청나게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족들은 벌레로 변한 그를 돌보면서, 더 이상 직장에 나갈 수 없는 그레고르를 대신하여 돈을 벌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놀라게 한 그레고르에게 사과를 던져 상처를 입힌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빈방에 하숙생을 들인 어느 날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 소리에 이끌린 그레고르가 자신의 방을 빠져나오고, 이를 발견한 가족들에 의해 다시 상처 받고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둔다. 그레고르가 죽은 다음날 남은 가족들은 교외로 여행을 떠나고, 따뜻한 햇살 속에서 밝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그레고르는 갑자기 해충으로 변했으나,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출근을 준비하려고 한다. 의무감 속에서 직장과 집을 반복하던 그전의 삶은 벌레로 변한 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보인다. 벌레의 모습이라는 외피를 입었지만, 여전히 동생을 아끼고 음악을 사랑하는 그는 여전히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가족들에게는 그의 진짜 모습보다는 벌레라는 외부의 모습이 그에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게 한다. 


그레고르가 믿었던 가족들이 그를 대하는 모습과 주변인인 하숙인과 가정부가 그를 대하는 모습이 비교되는데, 가족의 경우는 더 가차 없고 그를 외양을 혐오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그를 들여다보는 남(하숙인과 가정부)들과는 다른 그들의 태도는 일반적인 가정 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가혹해지고 무자비한 태도를 갖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카프카의 불행한 가정사를 알고 나서 읽는 [변신]은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권위적이고 늘 카프카가 못마땅했던 그의 아버지는 섬세한 카프카의 정신에 큰 상처를 남겼고, 그의 작품에는 늘 아버지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뒤에 병상에 힘없이 누워만 있던 그의 아버지는 “마치 은행 협회의 사환이 입는 것 같은 금단추가 달린 몸에 꼭 맞는 푸른 제복을 입고서(P137)” 그레고르를 벌하기 위해 사과를 던진다. 아버지의 제복은 수년 동안 그레고르에게 기생하며 애벌레처럼 살던 삶을 청산하고 드디어 입게 된 곤충의 허물처럼 보인다.     


“아버지를 침대로 인도한 어머니와 여동생이 거실로 돌아와 방금 전까지 하던 일을 내버려 두고 서로 뺨이 맞닿을 정도로 바싹 다가앉아서는, 어머니가 그레고르의 방을 가리키며, “그레테, 저기 저 문 좀 닫아라.”라고 말하고, 어둠 속에서 둘이 눈물을 흘리거나 혹은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식탁만을 응시할 때면, 그레고르의 등에 난 상처가 마치 새로 생긴 것처럼 아파 오기 시작했다. (P145-146)”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상처는 미처 아물기도 전에 새로운 상처가 되고, 카프카의 어머니는 안전한 보호막이 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저 그의 당장의 생명을 지연시키는 것 정도만 가능했을 뿐.


“저것을 치워야만 해요.” 여동생이 소리쳤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아버지. 아버지는 저것이 오빠라는 생각을 무조건 버리도록 노력해야만 해요.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믿고 있었던 것이 바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도대체 어떻게 저게 그레고르일 수가 있어요? 만일 그레고르라면, 인간들이 자기 같은 동물과 공동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떠나갔을 거예요. 물론 그렇게 되었다면 오빠를 잃은 것이지만, 계속해서 살 수 있고 명예 속에서 오빠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을 거예요. (P163)


그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문짝이 황급히 닫혔고 빗장이 단단히 걸려 그대로 차단되었다. 뒤에서 들리는 갑작스러운 소음에 그레고르는 발이 접질릴 정도로 깜짝 놀랐다. 그렇게 급하게 서두른 사람은 바로 여동생이었다. 그녀가 이미 그때 일어나서 기다리고 서 있다가 발 빠르게 앞쪽으로 튀어나갔기 때문에 그레고르는 그녀의 기척조차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돌리면서 “드디어 됐어요!”라고 부모를 향해 소리쳤다. 
“그럼 이제는?” 그레고르는 스스로에게 묻고는 어둠 속을 둘러보았다. 그는 이제 자신이 전혀 꿈적거릴 수도 없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그것에 대해 그는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가느다란 이 다리들로 실제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 기이하게 여겨졌다. (P165~166)


가족에게 버림받은 그가 선택한 길은 스스로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레고르의 마지막과 카프카의 짧은 생이 겹쳐지면서, 변신은 그저 한 사람이 벌레로 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진짜 모습은 보지 않고, 자신들이 기대한 모습과 다르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로 읽게 된다.  

내가 원하는 부모의 모습, 자녀의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난받고 상처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결국 그레고르를 벌레로 변하게 한 것이 누구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그를 벌레로 본 것이 먼저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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