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돌멩이]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독:김정식
출연: 석구(김대명),은지(전채은),노신부(김의성), 김선생(송윤아)
석구의 일상은 규칙적으로 반복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상의를 입고 제일 먼저 닭장으로 가서 밥을 주며, 방금 낳은 따끈한 달걀을 꺼내 온다. 손바닥에 로션을 듬뿍 짜서 이마, 볼 순서로 문지른다. 옷을 챙겨 입고 자전거를 타고 정미소로 출근하는 길에 노인정에 신발장 위에 달걀을 올려 둔다. 그 달걀은 마을 노인들의 점심이나 간식이 될 것이다.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 옆에 잠시 앉아서 사과도 한입 빼앗아 먹고, 유치원 버스 뒤를 따르며 요란한 인사를 마친 후 저수지 옆길을 지나 울창한 가로수길을 지나면 그의 일터인 정미소가 나온다. 정미소에서 나락을 받고 정확하게 계산해서 돈을 받은 뒤 능숙하게 기계를 돌린다. 8살 지능으로 이렇게 혼자 생활하게 되기까지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그리고 이런 반복된 일상이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석구의 모자에 대한 강박, 심리적인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은 그에게 자폐 성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자기 나름의 정해진 규칙과 순서가 있고, 그 규칙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석구는 마을 저수지에서 돌을 던져서 물 수제비를 뜬다. 돌이 수면을 스친 지점을 중심으로 물결이 일어나고 점점 퍼져 나간다.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던 수면이 일렁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늘 똑같던 그의 삶이 은지의 등장으로 파문이 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둘의 우정이 계속되며, 주변에서 그 석구를 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진다. 이 시점에 카메라의 시선도 미묘하게 달라진다. 때마침 석구는 여자의 몸과 성적 자극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는 석구와 뒤에 앉은 은지의 친밀한 모습이, 카메라가 무심히 훑고 지나가는 은지의 짧은 치마 아래로 보이는 맨다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쉼터 앞 자전거에서 은지를 안아서 내려주는 석구의 모습을 내려 다 보는 김 선생의 시선이 그 순간 나와 일치하며, 내 마음속에 석구를 향한 의심이 확 올라온다. 순진한 석구의 모습, 둘의 우정에 대해 흐뭇하게 보고 있던 그 순간 갑작스럽게 태세가 전환된다. 의심은 마치 아침 안개처럼 스물스물 퍼져 나가고 곧이어 마을 전체를 뒤덮는다.
동네에서 조금 모자라지만 마음씨 착한 총각이었던 석구는 순식간에 성폭행범으로 낙인찍히고, 어딜 가나 그 꼬리표가 따라온다. 폐쇄적인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석구는 똑같은 일상을 살아나가야 한다. 그가 지금껏 배운 것, 살아남기 위해 배운 것은 그것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달걀을 모으고, 다친 손으로 로션을 바르고, 내가 왔다며 자전거 벨을 찌릉찌릉 울린다. 세상이 그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지만, 바뀐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배우지 못한 그는 그저 전과 똑같이 할 수밖에… 사람들의 달라진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는 답답한 마음에 가슴만 두드릴 뿐이다.
이렇게 카메라는 다시 시선을 바꾼다. 마을 사람들의 괴롭힘을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치 이제는 석구를 어떻게 볼 거냐고 묻는 것 같다. 은지에 대한 그의 순진한 마음, 우정을 보여주며 이래도 그를 의심할 수 있냐고 묻는다. 노신부의 생각처럼 장애가 있는 석구를 측은한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지, 김 선생의 생각처럼 때로는 악의 없는 행동도 죄가 될 수 있으니 그의 행동을 의심해야 하는 것인지... 이렇게 관객들의 마음도 뒤흔들어 놓는다.
마을 사람 모두에게 버림받은 석구는 결국 은지와도 이별하고, 늘 돌을 던지던 저수지에 은지가 그랬던 것 처 럼 발을 담근다. 이제 카메라는 석구의 시선을 보여준다. 그의 발끝에 모여드는 작은 물고기들, 모두가 곁을 떠난 곳에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석구는 다시 한 발을 내딛는다. 그러나 가까이 가려할수록 더 의지할 곳 없는 물속에서 중력마저 잃은 그는 그저 황망할 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어떻게 해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그 길을 모르는 그는 그저 흔들리는 눈빛으로 갈길을 잃고 멈춰서 있을 뿐이다.
영화 속 하나의 사실을 보는 여러 시선들.
그리고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얼마나 달리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지, 나는 과연 어떤 시선으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과연 나는 엔딩 장면에서 갈 곳을 잃은 석구를 향해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