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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Jan 11. 2021

찬실(燦實)이는 복도 많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리뷰

감독: 김초희

출연: 강말금(이찬실), 윤여정(할머니), 윤승아(소피), 김영(배유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고 싶은 영화일을 하며 지내던 찬실은 함께 일하던 지감독이 갑작스럽게 죽자, 더 이상은 그녀를 찾아주는 곳이 없어 생계가 막막하다. 어쩔 수 없이 산동네로 이사를 하고 여배우 소피의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앞날을 고민한다. 


김초희 감독은 과거 Pd시절에 홍상수 감독과 함께 오랜 시간 영화를 만들어왔다. 당연히 홍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된다. 그 예상에 딱 들어맞게 마치 홍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보던 것처럼 남녀가 모여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역시 그렇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갑자기 술을 마시던 지감독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 바로 홍상수 감독을 연상시키던 지감독이 사망하는 것이다. 영화 시작부터 홍 감독을 단칼에 보내다니, 보통 영화가 아닌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누구나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이미지가 단번에 깨어졌다. 


[출처: 다음 영화]


[뒷산에 살리라] 영화 촬영 고사를 지낸 바로 그날에 지감독이 죽고, 갑작스럽게 실직자가 된 찬실은 그녀가 만들려 했던 영화 제목처럼 뒷산에 살러 간다. 찬실이 이사한 산동네는 차 한 대 들어갈 수 없는 좁다란 길을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찬실의 방에서는 여배우 소피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보이고, 도보로 출퇴근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도심지와 멀지 않아 보이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을 한참 오르기도 해야 하고, 집 마당 한편에 무심하게 널린 무청 시래기는 그곳을 도시와는 한참 동떨어진 공간으로 보이게 한다. 


[출처: 다음 영화]



이사 첫날 깐깐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그 방 아니야, 그 방에는 들어가지 마”라고 말하던 주인집 할머니는 사실은 딸을 가슴에 묻고 외롭게 살지만, 찬실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 내어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할머니의 딸 방에는 찬실이 힘들 때마다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심지어 어릴 적 좋아했던 배우인 장국영 귀신이 있다. 그는 아비정전 속의 장국영처럼 흰 속옷을 입고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찬실에게 누구보다도 따뜻한 말을 해준다. 그는 계속 찬실의 주변을 맴돌다가, 찬실이 어릴 적 장국영을 좋아했었다는 말을 꺼낸 뒤에서 야 말을 걸어온다. 찬실이 할머니의 한글 공부를 도와주고 난 뒤에 야 죽은 딸의 방에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관계는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내어 보인 뒤에 야 한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영이씨와의 관계처럼 자신이 원했던 방향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래도 Pd님에서 누나로의 한 발은 아주 큰 발전이 아닌가?


[출처: 다음 영화]


하고 싶은 영화 찍는 일은 못해도 찬실을 아침 일찍 일어나 산으로 운동을 가고,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마음에 담은 남자를 만나서 함께 도시락도 먹는다. 반지하도 아니고 네모나지 도 않은 이상한 방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 히 생각하기도 한다. 

영화를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책과 비디오를 버리려고 정리하고, 할머니가 쓴 시를 읽는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시를 읽던 찬실은 알 수 없는 눈물을 터트리고, 할머니는 그런 찬실의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어 준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할머니는 그 눈물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날 밤 찬실은 마음을 바꾼다. 


이미 지나간 세월은 되돌릴 수가 없다. 그 시간들은 사람에게 고스란히 흔적을 남긴다. 그러니 과거를 부정하다 보면 결국은 나 자신마저 부정하게 된다. 매일매일 애쓰며 살아온 찬실처럼 나도 그랬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원했던 모습은 아닐지 몰라도 지금 나에게도 내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밤새 우는 아이를 재우느라 아이를 업고 학교 운동장을 돌던 시간이,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뒤돌아서 나도 울면서 회사로 종종걸음 치던 시간이, 그러다 어느새 거울을 보면 흠칫 놀라는 나이가 되었다.  내 키만큼 훌쩍 자란 아이를 보고 내 나이를 꼽아보면서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싶다. 그래도 살아온 과거 그대로를 보듬어 안는 찬실의 모습이 좋았다. 그녀 곁에서 따뜻하게 지켜주고 힘을 주는 사람들이 좋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나도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이사 후 소피를 만나러 그녀의 집 아파트 입구를 걷는 찬실은 작은 계단 턱에 발이 걸려 잠시 비틀거린다. 그러나 이내 중심을 바로잡고 가야 할 길을 걸어 나간다. 잠시 흔들렸으나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일어난다. 찬실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인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처럼 별일 없이 심심해 보이는 영화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이 죽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랑도 하고 방황했다가 다시 길을 찾는 온갖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출처: 다음 영화]


영화의 마지막, 시나리오를 쓰다 잠든 찬실의 집을 소피가 방문하고 불을 켜보려고 했으나 전등이 나가서 불이 켜지지 않는다. 깜깜한 방 안에서 찬실이 문을 열고 한발 나갔을 뿐인데, 밖은 달빛이 환하다. 어둠을 스스로 밝히지 못할 때는 문을 열고 한발 나가기만 해도 빛을 찾을 수 있다. 


뒤이어 찬실의 집을 방문한 후배들과 함께 전등을 사러 나서는 길, 찬실은 손전등을 들어 후배들을 위해 길을 비춰준다. 후배들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불빛을 비춰주던 찬실은 달을 보며 조용히 소원을 말해 본다. 


“우리가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이 장면에서 손전등을 들고 소원을 비는 찬실은 달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찬실이 달처럼 보이기도 한다. 매일매일 달이 변하는 것처럼 세월이 가면 찬실도 달라질 것이지만, 이지러진 달이 다시 둥글게 차오르는 것처럼 찬실의 삶도 다시 행복으로 차오를 것을 나는 믿는다. 


영화의 엔딩 장면, 기차 터널 양쪽에서 반복되는 창문의 이미지는 마치 영화 필름처럼 보인다. 마침내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가면 눈 쌓인 들판이 펼쳐지고, 그 화면을 극장에 앉아서 보고 있는 장국영(귀신)의 뒷모습이 보인다. 영화가 끝나고 일어서서 박수를 치는 그의 뒷모습은 마치 미래로 간 그가 찬실이 만든 영화를 보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소피(騷避)처럼, 찬란한 열매를 맺을 찬실(燦實)이니까.

분명 그녀는 자신이 원하던 영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나는 그저 멀리 우주에서도 응원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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