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랑코포니아] 리뷰
감독:알렉산더 소쿠로프
출연: 루이스 도 드 렝퀘셍, 빈센트 네메스, 베냐민 우체라트, 요한나 코르탈스 알테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거친 타이핑 소리, 소음 그리고 누군가의 전화 통화로 시작한다. 대서양 어디쯤을 항해하고 있을 더크 선장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자신이 찍는 영화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잠시 후 미술관의 물품들을 실은 배의 선장인 더크와 교신에 힘겹게 성공하는데, 더크는 영화 제작이 완료되었냐고 묻고, 알렉산더는 “작업은 거의 끝나가는데 영화가 성공할 것 같지 않다. 책에 파묻혀서 혼자 떠들고 있다.”라고 대답한다. 그가 언급한 영화가 바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영화 임이 틀림없다.
영화 사이트의 줄거리를 보면
“1940년, 독일군에 점령당한 파리. 전쟁의 한가운데서 예술품 약탈로 악명 높은 나치에 맞섰던 두 남자가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관장이자, 모나리자를 나치로부터 지켜낸 ‘자크 조자르’와 나치 당원이었지만 예술을 사랑했던 ‘프란츠 볼프 메테르니히’ 백작. 적으로 만났지만 루브르의 예술품을 지키기 위해 협력자가 된 두 남자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라고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영화를 끝까지 보더라도 두 남자가 어떻게 협력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자세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둘의 첫 만남은 영화 초반에 잠깐 보여주지만, 실제로 둘의 활약은 영화가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감독의 재현으로 그려진다.
둘의 활약을 보기 전에 우리는 루브르의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어떤 경위로 프랑스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긴 설명을 들어야 한다. 루브르와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나치 침략 당시 처참한 모습과 대비되는 루브르의 모습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한다.
영화 속에는 당시의 프랑스인들의 모습이 담긴 자료 영상이 포함되어 있는데, 영상 속 프랑스의 모습은 독일에 점령당했다는 것 외에는 그전과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 인들은 여전히 주점에서 술을 마시며 흥겹게 떠들고, 프랑스 여성들은 독일 군인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그리고 독일인들에게는 프랑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존재한다는 알렉산더 감독의 내레이션과 박물관 안을 배회하는 ‘마리안느’와 ‘나폴레옹’의 유령의 모습은 알렉산더가 생각하는 그 이유를 짐작해 보게 한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받은 느낌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중간지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역사적 자료를 보여주다가 갑작스럽게 감독의 상상으로 재현 한 장면이 끼어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 러닝타임 내내 어쩌면 지금도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을 것 같은 선장 더크와의 교신. 중간중간 우리가 보고 있는 영화를 편집하고 있는 감독의 뒷모습이 자꾸만 끼어든다. 오디오는 감독이 영화를 편집하고 있는 현재와 과거의 사료와 감독이 상상으로 구현한 재현 영상 위로 계속 겹쳐진다.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지대쯤인가? 하는 생각을 할 무렵, 영화 속 배경 음악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영화에서 제시하는 자료 영상들을 대부분 소리가 없다. 사진이거나 무성 영상이다. 그러나 감독이 그 사진의 어떤 부분을 클로즈업하는지 그리고 어떤 배경음악을 추가했는지에 따라 관객이 받을 수 있는 느낌은 매우 달라진다. 감독은 슬픈 음악을 배경으로 루브르에 마치 전쟁 포로처럼 사로잡힌 예술품을 하나씩 찬찬히 보여준다. 루브르의 이집트관에 이르러 카메라는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하여 수탈한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파라오의 관을 지나쳐서 파라오의 미라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알렉산더는 죽고 난 뒤 먼 루브르까지 와서 영원히 잠들지 못할 그 영혼을 깨우듯이 미라가 누운 유리관을 두드려 본다. 카메라는 미라의 얼굴을 거쳐 목, 가슴께까지 이동하며 잠시 머무른다. 섬뜩한 느낌을 주는 이 장면이 유독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이러한 장면들이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면 이영화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로 한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논픽션을 가장한 픽션 영화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무수히 많은 예술작품들이 나폴레옹이 벌인 전쟁의 전리품으로 수집되었다. 아마 그 과정에서 루브르에 수집된 것 이상의 예술품이 바닷속에 수장되었을 것이다. 그 대가로 루브르는 지금의 명성과 존경을 얻을 수 있었고, 나치의 침략과 강탈에서도 안전할 수 있었다. 알렉산더는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그래도 루브르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프랑스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가장 대표적인 두 인물 ‘마리안느’와 ‘나폴레옹’은 영화 속에서 유령처럼 루브르를 떠돈다. 프랑스의 정신인 ‘마리안느’와 프랑스의 육체인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강한 목소리로 루브르 속 자신의 지분을 주장한다. “나야, 내가 한 거야, 모두 나야. 나 없이는 아무것도 없어." 아마도 나폴레옹의 시선이 닿는 어느 곳이든 그의 전리품이 보이는 것 같다. 영화 속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 “ 작품의 기원은 전 세계이지만, 어디에 놓일지는 오로지 전쟁이 결정하지.” 그에 비해 마르안느는 그저 “자유, 평등, 박애”라는 말만 중얼거릴 뿐, 그녀에게 나폴레옹을 쫓아낼 수 있는 힘은 없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알렉산더는 이렇게 말했다. “손은 머리보다 훨씬 똑똑하다. 머리보다 더 빨리 뭔가를 만들어낸다.” 아마도 지금의 프랑스의 명성과 루브르의 위대함은 마리안느 보다는 나폴레옹에게 더 빚지고 있는 듯하다. 아마 프랑스인들이 지금의 프랑스를 만든 것은 마리안느의 정신이라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 속 루브르에서는 그 말은 오답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