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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Mar 06. 2021

Not in service

영화 [판타스틱 소녀백서] 리뷰


개봉: 2002.06.21.

감독:테리 즈위고프

출연: 도라 버치(이니드), 스칼렛 요한슨(레베카), 브레드 랜프로(조쉬), 스티브 부세미(시모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니드와 레베카는 고교 단짝 친구이다. 졸업 후 학위를 따기 위해 대학에 가거나 자신의 적성에 맞춰 연기자 스쿨에 가는 친구들과 달리, 둘은 특별한 계획 없이 집 주변을 서성이거나 친구인 조쉬를 골탕 먹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들이 세운 유일한 계획은 함께 집을 구해 독립하는 것. 그런데 직장을 구해 돈을 벌면서 차근차근 준비하는 레베카와는 달리 이니드는 계속 어정쩡한 생태이다. 


[출처: 네이버영화]



신문의 구인광고에서 ‘우연히 마주친 호감 있는 여성을 찾는 글’을 발견한 둘은 광고를 게재한 사람에게 장난 전화를 건다. 그렇게 시모어를 만난 이니드와 레베카는 그를 스토킹 하면서 사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내고 그의 집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단순히 장난으로 그친 레베카와 달리 이니드는 점점 시모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절친인 레베카보다 시모어에게 속마음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 


이니드가 자신보다 두배나 많은 나이에 한참 뒤떨어진 패션 센스, 허리에 복대까지 찬 시모어에게 끌리는 이유는 뭘 까? 


[출처: 네이버영화]


(지긋지긋하게 느껴졌을 테지만) 졸업 후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게 된 이니드는 학교와 사회의 중간에 있다. 심리적인 위치뿐만 아니라 미술에서 낙제함으로써 실제로도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영화 속 이니드의 그림 실력을 보면 어째서 낙제를 했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지만) 졸업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아빠는 이니드가 마녀 같다고 부르며 싫어했던 여자와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어쩔 수 없이 재수강한 미술 수업에서 선생님은 그녀의 그림을 가벼운 기분 전환 정도로 취급하며, 논쟁 거리가 될 수 있는 과감한 시도를 하라는 조언을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이니드는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를 탄탄하게 구축한 것으로 보이는 시모어에게 관심이 생긴다. 더군다나 그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그녀의 의견에 따라 준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가득한 나만의 공간, 변함없는 모습으로 내가 원하는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들, 그런 것들이 바로 그녀가 바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의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이니드는 그런 변화의 두려움 앞에서 한발 내 딛기보다는 망설이며 뒤로 물러서는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때때로 눌러야 하고, 세상의 기준에 동화되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모어의 방에는 오래된 레코드와 사진이 가득하다. 그곳에서는 과거가 마치 현재 같고, 내가 원하는 어떤 순간이 계속해서 지속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의 절친과 여전히 가까운 사이이며, 함께 사는 아빠가 ‘펌프킨, 허니’라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순간이 영원하게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 비해 여느 십 대들과 마찬가지로 이니드가 구축한 세계는 연약하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다가도 뒤늦게 자신을 보고 있는 레베카를 발견하고 당황하며 ‘언제부터 자기를 지켜봤는지’ 캐묻는다. 자주 가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만난 친구들이 그녀의 머리색을 보고 ‘펑크록의 시대는 갔다’며 핀잔을 주자, 화를 내며 대꾸를 하려고 하지만 이도 여의치 않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다시 검은색 머리로 되돌아 간다. 세상 지겨운 표정으로 미술 수업을 듣고 있으면서도 선생님이 자신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자 두 눈이 반짝거린다. 주변 사람의 평가로 만들어 놓은 세계는 연약할 수밖에 없다. 남들에게는 괴짜로 보일 수 있지만 자신만의 단단한 세계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시모어에게 이니드가 매력을 느낀 지점이 어쩌면 그런 부분일 수도.



[출처: 네이버영화]



늘 같은 벤치에 앉아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노만’은 어쩌면 이니드의 정신세계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선 이용자가 줄어서 또는 다른 경로로 변경되면서 버스의 노선이 바뀌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어떤 이유로든 서비스가 종료되어 오지 않는 버스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외부의 환경 변화와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노만은 마치 세상의 변화 같은 것은 모르겠다는 듯이 ‘Not in service’라고 적힌 벤치를 깔고 앉아 있다. 이제 더 이상 어리광이 통하지 않는 어른의 세계로 한발 들어서야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 나를 먼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영화 속 남자들은 줄 창  이니드와 함께 있는 레베카에게만 말을 걸고 이니드는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이니드의 모습과 노만의 행동이 겹쳐지는 지점이다. 


남들이 보면 전혀 쓸모없을 것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둘은 유사하다. 그러나 결국 노만은 기다리던 버스에 탑승한다. 그럼으로써 의미 없어 보이던 그의 행동이 의미를 갖게 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니드도 다음날 같은 자리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 탑승한다. 노만이 기다리고 있을 때는 선명하게 보이던 ‘Not in service’라는 글이 이니드가 기다리는 순간에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어두워진 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벤치에 홀로 앉은 이니드만을 따뜻하게 비춰주는 조명은, 그 순간 그녀를 주인공으로 보이게 한다. 레베카의 옆을 지키는 친구, 시모어의 애인, 즉 누군가의 옆을 지키는 조연이 아니라 이제 혼자서 빛나고 있다.  


이니드가 가는 길이 어디로 연결될지는 모르지만, 드디어 자신의 인생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그 발걸음이 그녀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첫발이었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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