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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Mar 07. 2021

있는 줄도 몰랐던 기억을 펼치는 순간

[어린이라는 세계] 서평


저자: 김소영







누구나 어린이였던 시절이 있다. 길에서, 식당에서, 마트에서 눈만 돌리면 어디서나 어린이들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이들은 쉽게 대상화되는 존재이다. 하나하나의 특별한 고유성은 쉽게 무시된다. 육아 서적을 펼쳐보면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의 발달 단계가 각 개월 수마다 적혀있고, 내 아이가 그 범위에서 벗어나면 부모들은 불안해진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고, 몇 살에는 어떤 학원을 다니기 시작해야 하고,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두 정답지가 정해져 있다. 누가 정해 놓은지도 모르는 기준에 맞춰서 아이의 손을 잡아끌다 보면 ‘이게 아닌데’ 하는 순간이 찾아 오지만, 꽉 짜여 있는 스케줄은 잠시 머뭇거릴 틈도 주지 않는다. 지금 멈추면 안 될 것만 같은, 옆에서 달리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에 쉽게 압도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린이의 세계는 어른의 눈으로 그린 미숙하고 단순한 세계이다. 


그러나 김소영 작가가 그리고 있는 [어린이라는 세계] 우리의 예상보다 아주 복잡하고 고차원적이다. 그렇지만 쉽게 놓칠 수 있는 세계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보아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일들이다. 사전 정보 없이 불쑥 던지는 아이의 엉뚱한 말도 곰곰이 들어보면 그 나름의 이유와 논리가 있다. 다만 아이가 하는 말을 오랜 시간 주의를 기울여서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어른들이 부족할 뿐.


작가는 아이들과 함께 할 공부방을 만들면서, 아이의 시야에서 공간을 살폈다. 여기에서 ‘시야’라는 것은 비유적인 의미뿐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이 포함된다. 아이에게 그곳이 어떻게 보일 지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준비했다. 저자는 어린이의 시야에서 보는 세상이 어떨지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준다. “만일 어린이가 보는 방식으로 보고 싶다면 내가 작아지는 것보다 주변의 모든 것이 커진다고 상상하는 쪽이 낫다. 길을 걷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누군가의 허벅지나 허리가 있다. 버스 타이어의 지름이 내 키만 하다. 손을 씻으려면 세면대에 겨드랑이까지 걸쳐야 한다. 마트 계산대에서 내 물건이 제대로 처리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P200-201).” 


조금 과장해서 상상해 보면 거인나라에 간 걸리버의 심정이 아닐까? 아이들이 거리를 걸을 때 금방 주의가 흐트러지거나 느려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물론 어른이 한걸음 걸을 때 아이는 두세 걸음을 걸어야 속도를 맞출 수 있다는 건 차치하고 말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어린이가 일으키는 말썽, 장난, 사고의 많은 부분은 어린이가 작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중략) 어린이에게는 성장할 공간이 필요하다. 공공장소에서도 어린이는 마땅히 ‘한 명’으로 대접받아야 한다. 어린이라는 이유로 배제할 것이 아니라 어린이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쪽으로 어른들이 지혜를 모으는 게 옳다.(P202-203)”


노 키즈존에 대한 이야기가 매일 기사화되는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들 이후 나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식당에서 카페에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둘째가 돌 무렵이 되었을 때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하였는데 기저귀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어린아이가 있으니 방으로 안내되었는데, 부풀어 터질 것 같은 기저귀를 차고 있는 아이를 어찌할 수 없어서 거기서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우리 가족만 있는 공간이었고 깨끗하게 뒤처리를 하였으며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았음에도 한동안 죄책감을 느꼈다. 나도 뉴스 기사에서 떠들어 되는 ‘맘충’이 된 것 만 같았다. 아직 어려서 음식을 먹을 때 흘리는 아이를 데리고 외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아이가 먹은 주변과 바닥을 물티슈로 박박 닦아 내곤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부모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행동인 것 같이 느껴지는 시절이었다. 그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무언가 가슴이 답답하고 울컥한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나다가, 이 책의 한 구절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


‘얌전한 어린이’를 선별해서 손님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 자체가 혐오이고 차별이라는 데에 어떤 논의가 더 필요한 걸까? 돈을 내고 사용하는 공간에서조차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면 무엇이 차별인가.’ ‘세련된 노인’이나 ‘깨끗한 남성’,’ 목소리가 작은 여성’만 손님으로 받는다고 하면 당장 문제라고 할 것을, 왜 어린이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차별하는 걸까? 중요한 차이가 있긴 있다. 그들에게는 싫은 내색을 할 수 없고, 어린이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 있는 엄마에게는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약자 혐오이다.(P211)



책을 읽는 내내 어린이를 너무나 사랑하면서도 “어린이를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으려고 노력(P149)”하는 저자의 마음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이 쓴 편지나 카드에 “사랑하는 김소영 선생님께”라고 쓴 것을 보면 갑자기 심장이 확 커지는 것(P151)” 같으면서도 “어린이는 이성으로 가르친다! 어린이는 이성으로 …… 사랑은 관용어구 …...태권도 사범님 …… 어린이는 이성으로!(P151)”를 외치고 있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는 저자의 마음이 참 사랑스럽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주변의 어린이들 뿐 아니라 내가 잊고 있었던 나의 어린이 시절이 갑자기 펼쳐진다.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면서 왜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책을 펼치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린이 시절의 추억이 한 자락씩 펼쳐질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잊었을지 몰라도 어린이 시절이 없이 어른이 된 사람은 없으니까. 이렇게 나의 어린이 시절을 자세히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새 '어린이라는 세계'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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