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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May 07. 2021

로맨스 없는 로맨스 조

영화 [로맨스 조] 리뷰


개봉: 2012.03.08.

감독: 이광국

출연: 김영필(로맨스 조), 신동미(다방 레지), 이채은(초희),

이다윗(어린 로맨스 조), 조한철(이감독)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민방위 훈련’이라는 것을 했었다. 정해진 시간 동안 불을 모두 꺼야 하니 깜깜한 방 안에서 달리 할 일이 없는 우리는 가운데 이불을 놓고 둘러 않아서 돌아가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다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르고, 그렇게 한마디 한마디 보태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었다.


 영화 [로맨스 조]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살을 붙인 것인지 헷갈리게 하다가 종국에는 이야기 전체가 누군가의 머릿속 상상으로 보이도록 한다. 어쩌면 무엇이 사실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한다는 ‘행위’,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이야기는 여러 겹으로 덧 씌워져 있어서 그 이야기가 누구의 기억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면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시골 여관에 온 이 감독에게 커피를 타주며, ‘로맨스 조’에 대한 이야기를 맨 처음 꺼낸 다방 레지(신동미)는 그녀가 우연히 만났던 한 남자(로맨스 조)의 첫사랑 이야기를 전달한다. 로맨스 조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이 감독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기억 필터가 한번 작동하였을 것이고,  그 첫사랑 이야기는 로맨스 조의 기억 속 이야기 이므로 그의 기억 필터도 작동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야기는 사람의 입과 입을 거치면서 어쩌면 새로운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로맨스 조 스틸컷]


 다방 레지의 입을 빌어 설명하는 로맨스 조의 기억은 한 소녀(초희)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로부터 시작한다. 그와 그녀의 이야기 속 세계의 시작은 바로 거기서부터이다. 그러나 초희의 아들이 기억하는 이야기는 조금 더 앞선 시점에서 시작된다. 소녀는 새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가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명확히 아는 것처럼 발걸음에 거침이 없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체육복을 꺼내 바닥에 깔고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손목을 긋고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다 기절한다. 아마 그녀의 기억은 거기까지 였을 것이다. 그녀의 빈 기억을 채우는 것은 어린 로맨스 조이다. 지혈을 하고 피 흘리는 그녀를 업고 병원으로 달린다. 이 일을 계기로 급속도로 가까워진 둘은 함께 가출을 하지만, 가출 첫날 그는 초희를 홀로 두고 되돌아온다. 이렇게 두 사람의 기억으로 이어 붙인 이야기는 풋풋한 첫사랑으로 보인다.


  우리는 두 번째 초희의 아들의 이야기가 로맨스 조의 친구가 만든 영화 시나리오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전혀 관련 없는 두 이야기를 이어 붙여서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낸다. 물론 로맨스 조의 부모님이 등장하여 그가 고등학생 시절에 하룻밤의 가출을 했던 적이 있었다는 언급을 하면서 그의 사랑의 도피에 신뢰감을 부여 하지만, 그 두 사건을 연결하는 것은 이야기를 듣는 우리의 생각일 뿐 그의 가출 사건이 초희와 연결된 사건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듣는 우리는 자꾸만 이 이야기와 저 이야기를 짜 맞추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어 진다. 즉 조각조각 나누어진 이야기를 하나의 서사로 엮어 내고자 하는 관객의 열망이 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힘이 된다. 그러한 관객의 욕망을 잘 들여다보고 그 욕망을 가운데 두고 만든 영화가 바로 [로맨스 조]인 것이다.


[영화 로맨스 조 스틸컷]


 다방 레지가 읽고 있던 ‘마담 보바리’가 가출한 로맨스 조와 초희가 투숙한 모텔의 냉장고 속에서 발견되고, 어린 로맨스 조가 찾고 있던 토끼는 성인이 된 뒤 초희를 만났던 산을 다시 오른 로맨스 조에게 발견된다. 이리저리 이야기를 짜 맞추어 서사를 연결해 보려는 관객에게, 느닷없이 나타난 경찰관은 로맨스 조의 신분증을 체크해 보더니, ‘없는 사람’이라며, ‘이야기 속 세상에서 빠져나온 것 같으니 얼른 되돌아 가라고’ 재촉한다. 관객이 자신도 모르게 사실로서 구축하고 있던 영화 속 세계를  현실 세계로부터 단박에 잘라내는 말이다. 로맨스 조가 이야기 속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우리 또한 이야기 속 세계에서 빠져나와 현실 세계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이러한 엔딩 장면에 앞서, 이와 비슷한 대사를 들은 적이 있다. 자살에 실패한 뒤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로맨스 조를 우연히 발견한 다방 레지가 그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자, 그는 ‘저쪽 세상’에서 왔다고 대답한다. 이쪽이 아닌 저쪽의 세상, 현실이 아닌 이야기 속의 세상.  그리고 이어서 첫사랑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자, ‘왜 이야기를 해야 하냐고,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는 나는 왜 죽어야 합니까’라고 되묻는다. 영화(이야기) 속 주인공은 이야기가 있어야만 존재할 가치가 있고,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면  존재의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타낸 말이다. 할 이야기가 없는 존재는 화면(지면)에 등장하지 않을 것이고 그가 이야기 속에서 죽었던 죽지 않았던, 관객(독자)에게 보이지 않는다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이기 때문이다.    


[영화 로맨스 조 스틸컷]


로맨스 조는 로맨스가 있어야만 존재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끝나버린 첫사랑은 이미 완결되었기에 더는 덧붙일 이야기가 없다. 초희를 만났던 장소를 배회해본들 더 이상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이야기의 세상에서는 ‘로맨스가 없는 로맨스 조’는 이미 죽은 존재이다. 더군다나 영화는 정해진 상영시간이 있으므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도 시간이 다 되면 어쨌든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  영화 엔딩 장면에서 초희의 아들은 “할 이야기가 있긴 한데, 시간이 다 된 것 같아요. 좀 지나면 알 거예요. 그럼 전 갈게요.”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발랄한 음악사이로 흰 토끼가 폴짝거리며 신나게 뛰어가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면,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더 이상은 알 길이 없다. 그저 로맨스 없는 로맨스 조의 당황한 얼굴만 눈앞에 아른거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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