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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Apr 18. 2021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봄날의책)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서는 환자의 세계만이 아니라 그를 보호하는 보호자라는 자리에 대해서 다시 정의하고, 젊고 아픈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치매 이후의 삶이 어떠한지 이야기하고 있다. 각 장마다 다루는 주제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각을 담고 있다.


첫 번째 장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 받기’에서는 돌봄의 주체를 ‘시민’으로 확장하였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우리에게 환자와 그를 돌보는 보호자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아마도 아픈 남편과 그를 돌보는 아내, 또는 자녀 등 환자와 그의 가족을 보호자로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가족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우는  ‘독박’ 구조가 위기를 불러온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돌봄은 가족의 바운더리를 넘어 시민으로 재위치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 내 돌봄의 약 80%를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 불균형이 당연시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또한 ‘좋은 돌봄의 기준이 ‘가족 같다’는 말로 설명되는 한,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소중한 관계와 도움들을 제대로 존중할 수 없고, 새로운 종류의 돌봄 관계를 발명해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P45)
 오히려 우리에겐 돌봄의 장면에 ‘머무르게’ 해줄 철학, 방법, 기술이 필요하다. 돌봄은 희망할 만한 것, 머무를 만한 것, 마땅히 배워야 하고 깊이 경험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다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시민으로서 사회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돌보는 실력과 돌봄 받는 실력 둘 다를 키워가야 한다. ‘시민적 돌봄’이라는 단어는 그러한 변화를 위한 하나의 축이 될 수 있다. 돌봄이 시민의 개념, 시민의 책임, 시민의 권리, 나아가 시민들 사이의 관계 양식으로 통합된 사회는, 적어도 지금처럼 두렵고 불안한 사회는 아닐 것이다.(P78-79)
이 모든 돌봄의 시간, 돌봄을 주고받았던 관계는 ‘나’이 일부다. 각자, 혼자 알아서 하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짐이고, 또한 힘이다.(p80)


두 번째 보호자라는 자리에서는 보호자로 사는 삶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환자와 세상의 중간에 위치하여, 환자의 시간으로도 세상의 시간으로도 살아야만 하는 그러기에 몇 배는 바쁘고 힘들 수밖에 없는 보호자의 위치에 대해 설명하고, 환자와 보호자 또한 인간관계의 하나로 접근하고 있다. 

이렇게 보호자는 환자와 함께 ‘다른 시간’을 산다. 그러나 보호자는 또한 완전히 고립되지 않도록 막고 버티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픈 사람의 고독한 시간에 함께 머무는 동시에, 안 아픈 사람들의 사회적 시간에도 머물러야 한다는 것, 그 두 세계와 두 시간을 오가며 조율하고  중재해야 한다는 것에 또 한 겹의 어려움이 있다. (P98)
그렇게 24시간이 36시간처럼 느껴지는 매일매일이 지나는 동안 보호자는 ‘내 인생’이라는 시간을 잃는다. 과거는 아득하고, 현재는 정신없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점들을 생각하다 보면, ‘수발은 수동적인 시간’이라는 표현은 기묘한 느낌이 든다. 보호자는 한시도 ‘수동적’으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호자는 ‘능동적으로 수동적인 시간 살기’라는 비문(非文)을 산다.(P99)
건강한 사람은 몸을 잊는다. 아픈 사람은 몸을 잊을 수 없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몸을 잊어야만 한다. 너무 시간이 없고, 너무 정신이 없고, 너무 할 일이 많고, 너무 안타깝고 슬프기 때문에.(P106)


세 번째 ‘병자 클럽’의 독서에서는  아픈 사람이 질병 이야기를 읽는 것의 의미를 설명한다.  

환자들이 다른 사람이 쓴 투병기를 읽어 어떻게 위로받는지 질병에 있어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있다. ‘외상적 경험을 쓰고 전함으로써 그 경험에서 회복하는 것이다.’

몸 하나만 남게 되는 세계의 수축이 아프다는 경험이라면, 이걸 알고 있는 내 몸 바깥의 누군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수축에 맞서는 힘이다. 알아주는 것은 세계와 이어지는 끈, 또는 산산조각 나려는 세계를 간신히 붙들어 매는 가느다란 끈이 될 수 있으며 고통을 줄여준다.(P158)


네 번째 ‘젊고 아픈 사람의 시간’에서는 누구나 건강할 것으로 기대하는 ‘젊은 사람’이 환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젊고 아픈 사람이 느끼게 되는 고통이 노년의 환자와는 다른 지점이 있다는 것은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였다. ‘아프다’는 현실이 ‘젊다’는 사회적 위치나 자각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구성되는 고통이,  ‘눈 앞에서 문이 닫히고’ 더 이상 세계에 속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외로움이 그들의 고통을 가중한다. 


젊고 아픈 사람의 고통 중 하나는, 자신은 ‘몸’이 되었는데 다른 사람은 몸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사실상 세상 전체가 몸이 없는 것처럼 돌아가고 있다는 데에 있다. 질병은 ‘사회를 위한 것이어야 마땅할 몸이 다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자신의 것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아픈 사람은 ‘세계로부터 빠져나온다.’ 젊고 아픈 사람이 누워있는 침대와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세상 사이의 거리는 까마득하게 멀다.(p184-185)
지배적 시간의 질서 안에서 살 수 없는 아픈 사람들에게 시간은 과거와는 다른 것이 된다. 질병은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강요한다. 아프면 삶이 중단되었다가 나으면 삶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며 사는 시간 역시 삶이다.(P199-200)


다섯 번째 치매,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에서는 치매 환자를 보는 우리의 관점을 바꿔준다.  

보통은 치매를 예방하려면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고, 어떤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 책에서는 치매를 어떻게 ‘준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한 예방법이 크게 효과가 없으니 그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또한 치매 환자를 단순히 격리(그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이유이긴 하지만)하는 것이 문제점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카페테리아에서 조심스럽게 쿠키를 반으로 나누고 빵부스러기를 냅킨으로 치우는 어머니를 보면서 항상 공평하게 식사를 분배하던, 어머니로서 자신을 돌보던 그녀의 몸에 밴 습관들을 발견한다. 누군가를 하나의 인격, 혹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인지능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과 내가 주고받는 제스처들에 대해 내가 기울이는 관심, 무의미해 보이는 그 사람의 몸짓들이 의미를 가지게 하는 관계와 돌봄의 제스처라는 것이다.(P221-222)
치매에 걸릴 준비를 하는 것, 혹은 내 주위의 누군가가 치매환자가 된 후에도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준비한다는 것은 치매가 예방되고 대비되어야 하는 불운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고 상상할 때에만 가능하다. (P242)


여섯 번째 시간과 노니는 몸들의 인생 이야기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조우하는 순간을 말한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막을 방법이 없고, 누구나 노인이 된다. 그렇지만 노인이 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일이고, 아픈 나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10대 시절의 젊고 건강한 나와 노년이 되어 병든 내가 여전히 같은 사람일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최고령이 되었다는 것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 세상 속에 낯선 존재로 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략) 그들이 사라지면서 그들과 공유하던 사회문화적 유행들, 관습들, 취향들도 사라지고, 그것들로 이루어진 ‘나’ 또한 조금씩 사라진다. 이 ‘나’의 사라짐에서 핵심은 ‘내가 나에게 낯설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디로 갔지?’ 나는 나를 잃고, 나를 찾아 배회한다. 치매에 걸린 사람들의 배회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이러한 배회가 깊어진 단계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P271)


책을 읽으면서 '보호자가 될 나' 그리고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는 환자가 된 나'를 떠올려 보았다. 나는 어떤 보호자가 될 것이며, 어떤 환자가 될 것인가. 보호자가 되는 것, 보호받는 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삶의 단계를 생각해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위한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을까? 노후 준비라는 것이 단지 노후에 수입이 없어도 생활할 수 있도록 돈을 모으는 것, 은퇴 이후에 즐길 수 있는 취미를 만드는 것 정도로 단순하게 정의되고 소비되는 사회에서는 환자도 보호자도 설 자리가 없다. 이 책을 통해 환자와 보호자의 자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진정 잘 돌보고 돌봄 받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아이가 있던지 없던지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고 노년이 될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이 꼭 한 번씩 읽어봐야 할 책이다. (그렇다, 결국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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