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 더 하우스] 리뷰
개봉: 2013.07.04.
감독: 프랑소와 오종
출연: 파브리스 루치니(제르망), 어니스트 움하우어(클로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쟝),
엠마누엘 자이그너 (에스터), 바스찬 유게토(라파), 데니스 메노쳇(라파 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방송시간을 놓친 드라마를 언제든지 원할 때 다시 볼 수 있고, 완결이 날 때까지 미루어 두었다가 하룻밤에 정주행을 하는 시대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옛날에는 드라마 본방 사수가 중요한 일이었다. 인기 있는 드라마의 시작 시간에 맞추어 모든 일과를 마치고 거실 TV 앞에 앉아서 집중해서 보는데, 한참 중요하고 결정적인 장면을 보면서 ‘설마 여기서 끊지 않겠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다음 시간에...’라는 자막이 뜨면 다시 일주일을 기다릴 생각에 애가 탔었다. 계속해서 다음 회차를 시청하게 만들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
[인 더 하우스] 속 클로드의 소설도 마찬가지다. 절묘한 순간에 이야기가 끊기고 “(다음 시간에 계속)”이라는 말로 이어진다. 이 소설을 계속 읽고 싶은 제르망은 위험을 감수하고 무리한 선택을 하게 된다. 클로드가 소설을 계속 쓰기 위해서 ‘수학 시험지’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처음에 코웃음을 치던 제르망은 어느새 시험지를 훔치기 위한 장소와 시간을 엿본다. 영화를 보는 나도 어느새 ‘제르망이 어서 시험지를 훔쳐 내어야 클로드가 쓴 다음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제르망의 부도덕한 행동을 마음으로 부추기고 있었다.
내가 그리고 제르망이 클로드의 소설에 이끌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소설의 어떤 점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일까? 평범하고 화목해 보이는 한 집안의 내밀한 사정을 파고드는 클로드의 글은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다. 클로드가 쓴 글을 읽을 때 나오는 음악 또한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며 그의 글의 일부가 된다. 라파의 집은 처음에는 글의 소재를 찾기 위한 관찰의 대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욕망의 대상이 되어간다. 클로드는 라파의 집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하고, 라파의 가족 구성원은 각자의 방식으로 클로드를 욕망한다. 클로드는 라파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 그리고 연인, 라파의 아버지에게는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 에스더에게는 지금은 잃어버린 로맨스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각자의 욕망을 담은 클로드의 글 또한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 시험지를 훔쳐내서라도 계속 글을 읽고 싶은 제르망에게, 그리고 글의 내용이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하면서도 “클로드가 그 생각은 못하나? 라파 아빠 컴퓨터 열어보면 재밌을 텐데, 놀라운 것이 나올 텐데”라고 말하는 쟝에게, 분명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클로드의 글을 읽는 것은 멈출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 영화는 ‘인 더 하우스’라는 제목처럼 대부분의 사건이 라파의 집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제르망과 쟝은 주로 그들의 집에서 클로드의 글을 읽는다. 클로드의 집은 영화의 끝 무렵에 잠깐 등장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하반신 마비인 아버지를 돌보는 모습으로 그의 고단한 삶을 짐작하게 한다. 아주 짧게 지나간 장면이고 영화 스토리상 필요 없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이 준 인상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클로드가 관찰한 라파의 시간들과 클로드 자신의 시간은 얼마나 다를까? 클로드가 잠든 라파 부모님 사이에 누운 장면과 하반신 마비인 아버지를 양팔로 껴안고 힘겹게 일으켜 휠체어에 앉히는 장면이 겹쳐져 보였다.
결국 클로드는 라파의 집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잃은 제르망은 그의 곁에 남았다. “‘어떤 집이든 틈이 있기 마련, 방법만 찾으면 간단하죠” 클로드가 찾던 빈틈이 있는 집은 라파의 집이었나, 아니면 제르망의 집이었나. 라파에 대해 쓴 글은 어쩌면 제르망의 집에 들어가기 위한 구실이 아니었을까?
“성공적인 엔딩, 의외의 결론이지만 대안은 없다.”라는 제르망의 말처럼, 이 영화에서 이보다 나은 결말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