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열리는열두 번의만남, 이진순, 문학동네, 2018
2012년부터 만 6년 동안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이진순의 열림’이라는 제목으로 인기리에 연재된 122개의 인터뷰 가운데 가장 화제가 되었던 12개의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평소에 인터뷰로 엮은 책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짧은 인터뷰에서 그 사람의 인생이 진정으로 드러나기 힘들 뿐 아니라, 이리저리 엮인 글들은 제자리를 잃고 떠다니기 마련이라.
그러나 이 책의 프롤로그는 나에게 기대감을 주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 가운데 누가 제일 훌륭하던가요?”라는 질문에 “그렇게 훌륭한 인물은 세상에 없어요.”라고 대답했다는 작가의 말. “누구의 인생도 완벽하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방은 있다. 삶의 어느 길목에선가 자신의 가장 선량하고 아름다운 열망을 끄집어내 한순간 반짝 빛을 밝히는 건, 위대한 영웅들의 높이 치켜든 불멸의 횃불이 아니라 크리스마스트리의 점멸등처럼 잠깐씩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짧고 단속적인 반짝임이라고 난 믿는다. 좌절과 상처와 굴욕이 상존하는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광채를 발화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순간을 담고 싶었다.”라는 작가의 말은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떤 질문으로 인터뷰를 할까?
처음에는 큰 기대 없이 책을 펼쳐 들었으나 순간순간 푹 빠져들어 읽었고, 12개의 인터뷰 하나하나가 다 의미 있게 다가왔다. 또한 중간중간 마음을 푹 찌르고 들어오는 글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모든 인터뷰가 나름의 울림이 있었으나 그중 두 가지 인터뷰를 꼽아본다.
‘아픈 이야기를 아프게 들어주는 사람(구수정)’ 의 인터뷰에서 한 베트남 할머니와의 일화가 그것이다.
“난 한 명만 죽었는데, 얘기해도 되겠냐?”라고요. 그 한 명이 할머니의 유일한 아이였어요. 그 상황이 너무 화가 나서 또 할머니한테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당신한텐 그 하나가 전부인데 왜 말을 못 해? 왜?”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어요. 나도 모르게 신발짝을 벗어서 땅을 치면서 엉엉….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중한 자식 잃었으나 얘기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할머니와 모든 사람들의 아픈 사연을 다 듣고 싶으나 물리적인 한계로 가슴을 치는 구수정 님의 마음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손아람 작가의 인터뷰(원시적 감각의 힘)도 인상 깊었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사라지고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이 글은 한줄기 희망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이 세상을 다시 따뜻하게 바꿀 수 있는 하나의 힌트가 아닌가 싶다.
전 정치나 사회, 이 세계의 구조 따위에는 관심이 없던 십 대 시절을 보냈습니다. 언어보다는 수학을 믿었고 인간의 희망보다는 과학의 예언에서 필연성을 보았죠(...) 제 태도를 바꿔놓은 건 그 어떤 책이나 이론이 아니라 제가 만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 그들의 행동, 그들의 감정, 감동과 부채의식 등, 사람은 아는 만큼이 아니라 느끼는 만큼만 바뀝니다. 오늘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인간에 관한 모든 정치적 의제는 사악한 적이 아닌 무관심과의 싸움입니다. 무관심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압도적인 옮음으로? 냉철한 논리로? 우아한 지성으로? 저는 차라리 유머, 눈물, 분노, 연민, 매력 같은 원시적인 감각의 힘을 믿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혐오에 절망하고 관심을 끊는 것이 어쩌면 그 누군가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럴수록 더 한발 가까이 다가가고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워낙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 때문에, 이 책 속의 모든 인터뷰가 다 마음에 와닿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마음에 오랫동안 새기고 싶은 인터뷰는 하나씩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