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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Aug 06. 2021

과거로의 여행

영화 [해안가로의 여행] 리뷰


개봉: 2015.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아사노 타다노부(유스케), 후카츠 에리(미즈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3년 동안 실종 상태이던 남편 유스케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왔다. 바다에 빠져 죽은 뒤 몸은 게가 먹어치워 없어졌으며 이젠 유령의 모습이다. 그는 좋은 곳이 있다며 함께 가자고 하고, 아내 미즈키는 선뜻 동행한다. 여행은 각자가 꾸린 작은 가방 두 개와 함께 시작된다. 그들의 여정은 마치 게임의 퀘스트처럼 각 단계별로 주어진 미션을 모두 겪어내고 나서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되돌아가기 위한 여행

첫 번째 방문지인 신문보급소에서 유스케는 고장 난 컴퓨터를 고치는데 실패하고, 결국 해체해야 한다며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는 “그래도 제 몫은 다했다”라고 말하며 바닥에 놓인 컴퓨터를 내려다보면서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신문 보급소 주인은 “이제 갈 때도 됐다며” 유스케의 옆에 서서 함께 내려다보는데, 그들의 모습은  마치 장례식에서 애도의 마음을 표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앞서 컴퓨터를 내려놓는 장면이 있었기에 그들이 언급하는 대상이 고장 난 컴퓨터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왠지 그들의 말은 자신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런 둘 사이에서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즈키는 화난 목소리로 끼어들며,  “새 컴퓨터를 사면 된다”라고, “컴퓨터 없이도 배달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묻지만, 둘은 그녀의 항변은 무시하고 컴퓨터를 위한 ‘송별회’를 하기로 한다. 이렇게 여행 초반의 미즈키는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여행을 통해 겪은 사건들을 통해 자신만의 애도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바로 이 여행의 목적 일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죽은 유스케가 걸어서 미즈키에게 돌아왔음을 생각하면, 해안가로 가는 그들의 여행은 유스케가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여행은 앞으로 나가감과 동시에 과거를 향하는 여행이다. 유스케가 걸어왔던 길을 따라 도움받았던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은 유스케의 과거와 미즈키의 미래가 교차되는 기묘한 순간들의 모음이다.  그들이 어떤 부부 사이였는지는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유스케가 외도를 하고 있었다는 것과 미즈키가 ‘나를 원망하냐고’ 묻는 장면에서 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큰 갈등이 아니었을지라도 어느 정도 서로에게 냉담하고 무관심해져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그들이 이 여행을 통해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유스케는 과거에 마무리하지 못한 인연을 미즈키와 함께하며 정리할 수 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바다이지만, 카메라는 그들이 도착한 바다의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파도 소리, 새소리, 그리고 아름답다는 미즈키의 말만으로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남편이 떠나고 그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쓴 백 장의 기원문을 태운 미즈키가 뒤돌아서는 순간에서야 우리는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바다는 상상 속의 그것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다. 그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작고 심심한 어촌마을 중 하나일 뿐이다. 사후 세계로 되돌아간 유스케와 남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한 미즈키에게 가장 알맞은 풍경이다. 

카메라는 왜 바다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을 지연시킨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그들이 도착한 바다는 그렇게 흔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이 도착한 장소 그 자체보다는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에 의미를 둔 것은 아닐까. 




사람과 유령의 경계

이 영화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경계를 거부하고 있다. 보통 유령은 육체가 없기 때문에 가볍게 움직이고 원하는 곳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어쩌면 인간과 유령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육체가 있고 없음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유령들은 육체가 존재한다.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걷거나 전철을 타야 하고, 함께 밥을 먹거나 신문을 배달한다. 

신문 보급소에 방문한 첫날 유스케와 미즈키는 방에서 신문 보급소 주인도 유스케처럼 유령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때 닫힌 방문 밖으로 그가 걸어가는 발소리가 들린다. 삐걱거리는 발소리는 한참 지속되며 긴장된 표정으로 방문을 바라보는 둘의 얼굴에서 유령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잠시 후 화면은 지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걸어 오르는 신문 보급소 주인의 모습으로 전환되면서, 소리로만 존재하던 유령의 신체가 우리의 눈앞에 제시된다. 마치 CCTV 화면처럼 보이도록 촬영된 장면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모습은 유령이라기보다는 생활에 지친 노인의 모습이다.       

유스케가 맨 처음 등장했을 때 그는 어둠 속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났으며, 한순간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할 때도 어두운 거실 소파에 앉은 채로 나타난다. 외모는 죽기 전과 동일하지만 특이한 점은 집안에서 구두를 신고 있다는 것이다. 좌식 생활을 하는 일본에서 실내에서 구두를 신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 이를 매번 지적하던 미즈키는 결국 “괜찮아, 뭐든 다 상관없어”라며 유스케를 껴안는다. 이후 그는 더 이상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다. 여행을 가기 위해 갈아입을 옷을 챙겨야 하는 보통의 사람일 뿐이다. 서로의 다른 점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유스케는 유령이 아닌 보통 사람이 된다. 




문제의 해결과 관계의 병합

영화 속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그들의 잠자리 모습이다. 그들은 집에서 출발 해  해안가로 가는 여정에서 여러 장소를 방문하고 잠을 자는데, 그들의 잠자리는 둘의 관계에 따라 점차 달라진다. 유스케가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아침, 미즈키는 혼자 침대에 잠들어 있다.  유스케가 여전히 집에 함께 있는 모습으로 보아 그날 밤 둘은 함께 있었지만 같은 침대에서 자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는 신문 보급소에서의 밤이다.  1인용 침대 두 개를 각각 차지하고 누웠다. 미즈키가 망설이며 등 돌리고 누운 유스케에게 손을 뻗지만 냉담한 거절이 되돌아온다. 차가운 흰색의 침대 프레임만큼 경직되고 어쩐지 껄끄러운 분위기다. 만두 집에서의 세 번째 밤에는 가게 한편에 1인용 작은 이불 두 개를 깐다. 테이블을 한쪽으로 밀고 좁은 공간에 깔아 둔 이불은 둘의 관계가 조금 더 가까워진 것처럼 보이게 한다. 마지막 마을에서는 드디어 2인용 침대에 함께 잠들 수 있게 된다. 떠날 때가 가까워진 것을 느낀 유스케는 미즈키와 마침내 부부 관계까지 한다. 서로를 더 이해할수록 가까이 다가가고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별할 수 있게 된다. 


영화 속 유령들은 미처 내려놓지 못한 마음의 짐, 후회, 미련으로 인해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스케는 어째서 3년이 지난 시점에 되돌아온 것일까? 나와 같은 의문을 품었던 미즈키는 등을 돌리고 누운 유스케에게 묻는다. “당신은 왜 돌아왔어?” 그의 대답은 “사랑해”.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오랜 기간 기약 없이 기다리게 만들었던 것,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되돌아온 것이다. 그들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얻게 되는 것이 영원한 이별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결국 모든 것을 떨쳐내고 새로운 결심을 한 표정으로 되돌아서는 미즈키의 모습을 보면, 해안가로의 여행은 제대로 된 이별 여행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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