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닉스] 리뷰
한국 개봉: 2021.7.22.
감독: 크리스티안 펫졸트
출연: 니나 호스(넬리), 로날드 제르펠드(요하네스(조니)), 니나 쿤젠도르프(레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넬리는 얼굴에 큰 총상을 입어서 성형 수술이 필요하다. 의사는 아름다운 여성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비슷한 얼굴로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하지만 넬리는 ‘예전 얼굴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답한다. 그녀가 말하는 예전의 얼굴이 외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가 어디서 읽었다고 말하며 언급한 수용소의 생활은 넬리의 이전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다. 조니의 기억 속 넬리는 몸에 잘 맞는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우아하게 걷는 여인이었다면, 지금의 넬리는 무자비한 폭격으로 인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무너진 건물과 같다. 쌓여있는 벽돌을 보면 거기에 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만, 원래 어떤 모양의 집이었는지는 벽돌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다. 넬리는 자신의 예전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고 싶어 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흐릿한 옆모습뿐이다.
그녀는 남편이 기억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에 기대어 스스로를 복구하고자 한다. 수용소에서의 힘든 시간 동안 남편과 다시 만나고 싶다는 희망으로 견뎌냈던 넬리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 옆에 있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 동일한 필체, 예전처럼 머리를 염색하고 즐겨 입었던 스타일의 옷과 화장을 한 넬리는 달라진 얼굴을 빼고는 모두 이전과 같을 텐데, 남편 조니는 그녀에게 자신의 아내와 같아지려면 한참 더 연습이 필요하다며 타박을 한다. 남편이 기억하는 넬리의 모습은 그녀의 진짜 모습과 얼마나 닮아 있는 것일까? 누군가를 온전하게 기억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넬리가 기억하던 남편 조니의 모습, 그리고 조니가 기억하는 아내 넬리의 모습은 각각 그들의 원래 모습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상대방을 내가 보고 싶은 모습으로만 보려고 하기 때문에, 넬리가 죽었다고 믿는(어쩌면 죽었기를 바라는) 조니에게는 넬리가 보이지 않았다.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의 모습만을 기억하고자 하는 넬리에게는 자신을 배신하였으며, 이제는 그녀의 재산까지 차지하려고 하는 조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넬리가 원했던 것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따뜻한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준비해주는 남편 곁으로 돌아가는 것.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싶은 그녀는 자신이 예전에 신던 신발을 알아보고 조니에게 그 신발에 얽힌 추억을 물어보는데, 조니는 자신의 잘못을 상기시키는 과거의 일들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자신의 아내와 닮은 그녀의 모습에 불쾌해한다.
결코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둘의 모습을 보면서, 한번 무너진 관계도 재건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고자 하는 넬리가 성공하여 시간을 되돌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불가능한 일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과거의 넬리와 지금의 넬리가 달라진 것처럼 조니 역시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넬리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무대를 위해 기차를 탄다. 붉은 드레스와 짙은 화장을 하고 높은 구두를 신은채 수용소에서 돌아오는 넬리를 연기하는 넬리는 그녀의 현실과 조니가 꿈꾸는 이상과의 괴리를 느끼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 내내 긴 옷을 걸치고 팔을 보여주지 않던 넬리는 엔딩 장면에서 피아노를 치는 조니 옆에서 노래를 부를 때 팔을 걷어 올린다. 계속 옆에 있었으나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지 못하던 그는 그녀의 노랫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눈을 뜨고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을 똑바로 바라본다. 당혹함과 죄책감이 뒤범벅된 얼굴은 그제야 그녀의 팔에 새겨진 수감번호를 발견하고, 피아노를 멈춘다. 피아노가 멈추며 그들의 연극은 끝났지만, 그녀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이미 너무 늦었다’는 노래 가사는 조니에게 전하는 그녀의 마음.
이미 일어난 일들은 되돌릴 수 없고,
모든 것이 달라진 그곳에서,
비록 그곳이 폐허뿐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